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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른거북 Dec 05. 2018

전학생

차가운 계절의 기억.

전학생이 왔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왜소한 체구의 아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는 새로운 어른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경계, 불안의 눈빛을 띠고 있었다.

보호자로 생각되는 어른, 학생 없이 비슷한 또래와 단둘이 앉아 담임교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날은 연간 10시간의 수영교실이 시작된 날로 교실 안에서는 다른 학생들이 담임교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도착한 버스를 타고 시간 맞춰 9시에 수영장으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1교시 시작 직전 전학 온 아이와 서둘러 교실로 들어갔다. 담임교사의 다급함을 아이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담임교사가 아이의 팔을 잡자, 아이는 교사의 손을 뿌리쳤다.


교사의 행동이 섣불렀을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아이의 눈빛을 눈여겨보았다. 하지만 그럴 새도 없이 서둘러 교실로 가기 시작했다. 교실로 가던 중에도 '낯설어서 그럴 거야.' '내가 처음이라서 그럴 거야.'라고 속으로 되뇌었지만 아이와 첫 만남은 교사 역시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아이와 함께 교실로 들어갔다.

평소 '전학생 놀이(=자신이 전학 왔다며 이름을 바꿔 불러달라는 놀이)'가 몇 차례 다녀간 우리 반에

진짜 전학생이 왔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엄청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반 학생들은 새로운 전학생을 보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남자 전학생.

학생들이 기다리던 남학생이었다. 곧이어 전학생을 향해 폭풍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어디서 왔어?"

"뭐 좋아해?"

"뭐 잘해?"

"무슨 과목 좋아해?"



아이들의 폭풍 같은 질문에 학생은 자신이 대답하고 싶은 질문에 몇 가지 답만 할 뿐이었다.

"저기 경상도."

"축구 좋아해."



담임교사는 학급의 친구들에게 전학생에게 이 도시는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낯선 장소이며 이 학교 역시 새롭고 어려운 공간임을 설명하였다. 학교 산책을 통해 친구에게 우리가 늘 가게 되는 장소를 설명, 안내해달라는 말과 여러분의 도움이 전학생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임을 신신당부했다.



날이 점점 차졌다.

따뜻한 바람이 불던 즘 전학 온 그 학생은 낯선 도시에서 두 차례의 계절 변화를 겪었다.

내 손을 뿌리치던 전학생은 이제 나를 보며 "선생님~"하며 고개를 빼꼼 내비치며 배시시 웃기 시작했고

복도 끝에서 나를 발견하면 두 손을 위로 향해 온 몸을 흔들며 인사하기 시작했다.



이 학교 생활이 익숙해진 전학생에게는 감히 어른이 짐작할 수 없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마음의 상처가 있었다.

늘 어두운 공간에서 형과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배가 너무 고파서 배고픔이 통증으로 느껴질 정도의 굶주림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 이외의 무수히 많은 아픔을 경험했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주린 배고픔에 학교에서는 늘 허겁지겁 밥을 먹었고

잠시 동안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보호자가 지치고 힘든 마음에 "너무 힘들어서 밥을 못주겠어."라고 말하자 눈물을 펑펑 쏟으며 불안해하던 아이였다.



학급 내에서 유행처럼 '샤프'를 가진 학생이 급격히 늘어나자 샤프가 너무 갖고 싶다며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보호자에게 "제발 하나만 사주면 안 돼요?"라고 어렵게, 조심스럽게 말하던 아이였다.

나는 그러한 자세한 내막을 미처 알지 못했다.

두 차례의 계절 변화 속에서 아이는 예전과 달리 안정감을 보였고 차분했으며 밝은 표정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전학생은 같은 반 학생에게 욕설로 가득한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욕설 카톡을 받은 학생의 학부모는 담임교사에게 전학생의 부모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정중하면서도 뼈 있는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이라고 했다. 이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아이들의 카톡 내용을 전달받은 담임교사는 전후 상황을 살펴보고 다음 날 연락드린다는 말을 끝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다음 날,

욕설 카톡을 받은 학생의 학부모가 어떠한 말씀도 없이 학교로 쫓아왔다.

학부모는 굉장히 정중하면서도 화가 나, 날이 선 상황이었고 해당 아이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하셨다.

아이가 느낄 심리적 불안감이 걱정되어 단둘이는 만날 수 없다고 죄송하고 설명했다.

학부모님께 아이와 잠시 이야기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드렸고 담임교사는 아이의 옆에서 함께 해당 학부모를 만났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쉽게 사용하지 않는 비속어를 가득 담아 친구를 향해 퍼부었던 아이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았으면서도,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실망스러운 마음이 있었지만 아이의 표정을 보자니 아이의 편이 되어주고 싶었다.



잠시 후 교실로 돌아와 물었다.

"이런 말들은 대체 어디서 들었던 거니?"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했다.

"형아요."

그 형아는 아이가 낯선 이곳에 왔을 때 자신과 함께 불안과 걱정을 경험한 그때 만났던 '비슷한 또래'처럼 보였던 그 아이였다.

형아로부터 들었던 그런 무지막지한 언어들은 아이가 느낀 자신을 가장 기분 나쁘게 하는 말들이었다.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는 형제이건데 형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던 아이의 마음이 정말 괜찮을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영어교실을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두워진 낯빛으로 수업시간을 갖 넘겨서 돌아온 아이를 불러 담임교사는 이야기했다.

"무슨 일 있었니?"

"영어 공책이 없었어요."



철렁했다.

그 아이에게 학교에서 준비해야 할 모든 준비물은 보호자에게 '사달라고' 부탁해야 할 어려운 준비물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의 표정에 교사의 감정이 지나치게 이입돼서였는지 아이의 그 표정과 말투가 '내가 영어 공책을 사 오지 못한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로 들려왔다.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말하기 힘든 자신만의 사정을 털어놓지 못해 이러한 상황을 자주 겪었을 것이다.


분명 그런 상황을 겪으며 억울하고 속상한, 서러운 마음 등을 복합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황급히 떨어지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담임교사는 괜찮다고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며 아이를 다독였다.



담임교사는 영어 공책을 만들어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는 공책을 받자마자 자신이 해야 할 영어 과제를 빠르게 시작했다.



리코더, 영어 공책, 알림장 등 아이가 학교를 다니며 늘 사용하는 사소한 물건들이 아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이의 마음이 쉽게 편안해지지 않을 거라는 마음이 들었다.

교사가 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한번 더 아이를 살펴보는 일.

아이의 감정에 집중하는 일.

그리고 아이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서 아이의 편이 되어주는 일.

그러면서도 마냥 아이의 편에 서서 아이의 모든 일들을 덮어줄 수는 없는 상황이 올 때면 마음이 무척 아팠다.


또 한 차례 조금 더 날이 추워지면 이제 그 아이는 또 다른 선생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지금은 그 아이를 만나고 다른 학년으로 올려 보낸 지 5년째 되는 날이다.

차가운 바람이 불 즘이면 한쪽만 쏙 들어가는 보조개를 보이며 수줍게 웃음을 건네던 그 학생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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