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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 Dec 02. 2018

행복은 어디에

어른의 행복과 아이의 행복

 2015년도에 새로운 아이들을 만났을 때, 나름의 목표라고 세운 것들이 몇 개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이 아이들의 '행복'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어른이 되어보니 내가 언제, 무엇을 하고 있을 때 행복한 지 아는 것은 정말 중요했다. 이는 진로와 관련된 부분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삶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 이기도했다. 


 교육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시작한 것과는 달리, 결론부터 얘기하면 나는 결국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일단 한 사람을 꾸준히 관찰할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6시간이었고, 그 안에 30명의 아이를 만나야 했다. 아이 한 명당 하루에 약 12분이 돌아가는 셈이다. 1년 수업일수가 약 190일이니 수학적으로만 계산해보면 38시간이다. 38시간. 생전 처음 보는 타인을 1박 2일도 안 되는 시간에 파악할 수 있겠는가? 내가 아이에게 갖는 애정의 깊이와 정도와는 관계없이 물리적인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어떤 아이들은 나와 그 12분마저도 상호작용하지 못했으며, 가능했다 하더라도 관찰한 내용은 매우 피상적이어서 내가 그들을 진정 '알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될 때가 있었다. 그러나 물리적인 시간 외에도 결정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고 생각한다.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늘 떠오르는 얼굴 하나가 있다. 동휘는 내가 두 해를 연속하여 가르친 아이다. 얼굴이 하얗고 볼살이 통통한 게 꼭 눈사람 같았다. 동휘는 명랑하고 긍정적인 아이여서 어디서나 인기가 많았다. 동휘의 싹싹한 성격 탓에 나는 그 아이와 제법 활발하게 상호작용을 했지만 함께 한 시간이 1년 6개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휘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좀처럼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는 유형의 아이였기 때문이다. 


 2016년의 7월, 여름 방학을 앞두고 아이들은 나와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다고 했다. 방학식날 선생님과 물총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버킷리스트를 이루기로 했다. 이른 아침부터 태양이 이글거렸던 한 여름이었지만 우리는 대운동장 위에서 물총을 쏘면서 내달렸다. 20년 만에 집어 든 물총은 어색했고 아이들 덕분에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흠뻑 젖었지만 그 속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목이 꽉 조이는 셔츠를 벗어던졌을 때의 느낌으로, 교사와 어른이라는 타이틀은 깡통에 구겨 넣고 멀리 발로 차 버렸다. 시원한 물방울이 여기저기서 불꽃놀이처럼 터져 나왔고 물보라와 작은 무지개가 여기저기서 반짝거렸다. 동휘가 멀리서 달려와 머리에 물을 뚝뚝 흘리고 있던 나의 팔을 붙잡더니 두 눈을 맞추고 말했다.


 "선생님, 행복해요."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여름날의 매미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동휘의 말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내 몸에서는 전율이 흘렀고 뭔가 울컥한 기분이 가슴께에서 올라왔다. 함께 시간을 보낸 지 1년 반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동휘가 언제 행복한 지 알게 된 것이다. 동휘의 행복은 의외로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었다.






 어른의 행복은 아이의 행복과 다르다. 어느 어른도 행복을 물총 놀이하는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어른의 행복은 아이의 행복과 다르게 물질이 기준이 된다.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모두가 꿈꾸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 남들이 우러러 볼만한 직장을 가지고 있거나 로또에 당첨되어 벼락부자가 되는 것. 혹은 태어나보니 건물주 더라 하는 물질적인 차원의 이야기들이야말로 어른들이 행복과 함께 떠올리는 장면들이다. KBS 다큐멘터리 <행복해지는 법> 취재팀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민 1,024명을 조사한 결과 행복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돈'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비싼 연봉, 멋진 차, 좋은 집을 행복이라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의 행복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부모들은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려 최선을 다 하고 있어도 아이가 만족스러워하지 않아 고민이라는 말을 한다. 자신은 아이에게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이 잘해주고 있는데, 아이는 여전히 불행함을 느끼고 있으니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른의 눈으로 아이의 행복을 찾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들의 행복한 순간을 찾는데 실패했던 이유와 같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으면 아이의 행복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다. 아이들에게는 어른의 눈으로 찾을 수 없는 행복의 순간들이 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여행을 가는 것, 우리 집 반려 강아지와 노는 것, 형이랑 라면을 끓여먹는 것, 엄마가 나랑 누워서 장난을 치는 것, 우리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안아주는 것, 선생님과 물총놀이를 하는 것과 같은. 


 나는 행복에 대해 얘기하는 현자들 중에서 살아보니 행복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거창하거나 물질적인 풍요에 있었다고 결론 지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사람이 인생을 살다가 어떤 궤도에 도달하면 행복에 대한 관점이 바뀌는 것 같다. 행복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가 알고 보니 이미 내 안에 있었더라 하는 진리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아이들이 현자다. 행복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글을 쓰는 나는 언제 행복한가? 바로 이런 귀여운 현자들 사이에서 이렇게 작은 깨달음을 하나씩 얻어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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