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하는 아이, 그로 인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다른 아이
과학 시간, 학생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석 장난감을 만들기 위해 직접 준비해온 물건을 꺼내고 있다.
“선생님, 저는 안 가져왔는데요?”
가져오지 않은 것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원우는 선생님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원우야 왜 준비물을 챙길 수 없었니?”
“깜빡했어요.” 평소에도 자주 깜빡하던 원우는 어떻게 해야 하냐며 선생님을 쳐다봤다.
“교실에 있는 물건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요.”
친구들이 가져온 물건은 사용할 수 없다는 것처럼 들리자 원우는 양팔을 포개어 고개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그런 원우를 보고 짝꿍 소이는 자신의 준비물을 건넨다.
“원우야, 이거 같이 쓸래? 나 많이 가져왔어.”
소이의 말에 원우는 고개를 들고 활짝 웃어 보인다.
자석의 원리를 사용하여 학생들을 제각각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준비한 물건들을 사용하여 장난감을 열심히 만드는 아이들 틈새로 갑자기 소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야, 네가 다 쓰면 어떡해. 내 건데!”
소이의 물건을 원우가 제멋대로 대부분 사용하자 소이는 화가 났다.
원우는 이런 소이의 말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너는 딴 거 쓰면 되잖아.”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은 친구에게 자신의 물건을 빌려 주던 소이는 되레 자신의 준비물이 친구의 준비물이 되어 어쩔줄 몰라하고 있다.
피구 리그전
오늘은 학년별 피구 리그전이 있는 날이다.
우리 반뿐 아니라 다른 반들과 모두 경기를 진행하는 것으로 남학생 경기, 여학생 경기, 남녀 혼합경기 총 3번의 경기를 하게 된다. 피구 전을 치르기 전 담임 선생님이 학급 아이들에게 여러 번 당부하는 말이 있다.
"비난하지 않기"
"탓하지 않기"
"양보하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
"즐겁고 재밌게 하기"
"이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
담임선생님의 말을 학생들은 병아리처럼 따라 하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설레는 마음과 긴장되는 마음을 가득 안고 체육관에 입실한다.
준비운동을 끝내고 학급 구성원이 한 팀이 되어 경기를 시작한다. 아이들의 눈빛이 승부욕과 경쟁심으로 변하고 있다.
"야, 패스!"
"야, 제대로 받아"
"옆으로 주고받게!!" 저마다의 전술을 사용하여 상대팀을 아웃시키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경기의 결과는 매 시간, 날마다 달랐다.
완패를 하는 날도 있었고 완승을 하는 날도 있었고, 2:1로 가까스로 이기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리 승패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도 학생들은 "우리가 O반을 이겼다!"며 좋아한다.
교실로 돌아온 학생들에게 담임교사는 묻는다.
"재밌었어요?"
"네, 재밌었어요." 대부분 이기고 돌아온 날 학생들의 반응이다.
"아니오, 재미없었어요." , "이제 피구 안 할 거예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한 날(=다시 말하면 경기에서 패한 날) 학생들의 반응이다.
그러다 문득 담임교사는 학생들을 향해 묻는다.
"오늘 친구에게 공을 양보받은 사람 손 들어 보세요."
여러 명의 친구들이 손을 든다.
학생들의 경쟁심과 하고자 하는 욕구를 알겠는 담임교사는 그 학생들이 마음이 대단하다는 말과 함께 대견함을 표현한다.
그러던 중 권우가 울먹거리며 손을 든다.
"선생님, 저는 공 5번밖에 못 던졌어요."
권우에게 공을 양보했던 친구들이 저마다 이야기한다.
"야, 네가 나보다 더 많이 했어."
권우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던 수연이가 이야기 한다.
"선생님, 저는 친구들에게 공을 양보하느라 한 번도 못 던졌어요."
수연이는 태권도 사범님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학생으로 체육시간을 가장 좋아하며 즐거워하는 학생이다.
수연이의 넘치는 배려는 학급 친구들이 공을 한 번씩 던져 볼 수 있게 만들어준 기회의 배려였다.
하지만 수연이는 자신이 받은 공을 친구들에게 양보하고 정작 본인이 직접 공을 던지는 기회는 갖지 못했다.
권우 역시 친구들의 배려와 양보로 체육시간에 공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평소 행동이 빠르지 않아 날아오는 공을 잡거나 던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권우에게 친구들의 도움은 체육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의 양보와 배려를 받은 권우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공을 던지지 못했다고 슬퍼했다.
권우에게 친구들의 배려는 '당연'한 배려가 된 것일까?
수연이의 배려는 자신의 실속을 차리지 못하고 '타인'을 위해 희생된 배려일까?
아이들의 피구 경기가 활동해서 즐거운 시간이 아닌 '경기'에 초점을 두고 진행되었다면 피구 경기는 학급 내 실력이 우수한 학생들이 주도로 진행됐을 것이다.
태권도 사범님이 꿈인 아이와 여럿 운동을 좋아하는, 잘하는 아이들의 랠리로 경기가 끝 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교실 안에서는 '경쟁'을 위한 체육보다는 즐기는 체육이길 바라는 담임교사의 생각으로 수행 능력이 우수한, 잘하는 아이는 결국 친구에게 양보하느라 공을 한 번도 던져보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물론 이기고 지는 것 또는 비기는 상황이 당연한 '경쟁활동'을 즐기며 하라는 교사의 말이 아이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