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급에서 만난 학생들 이야기
‘언니는 예쁜데 왜 나는 미울까? 나는 언제 예뻐지나? 새해에는 예뻐지고 싶다.’ 새해를 맞는 초등학생의 간절한 바람이 담긴 일기이다.
해마다 쓴 공책을 덧붙여서 초등학교 전과만 하게 두터워진 내 어릴 적 일기장을 보면, 글씨는 삐뚤빼뚤해도 기어이 채운 갈피마다 쓰다듬으며 읽었던 어린 시절이 그려진다.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부치기 위해 콩잎으로 우거진 길을 스윽스윽 걷다가 뱀을 보게 되더라도 편지쓰기는 가장 아끼고 설레는 방학 숙제였다. 3학년 담임선생님께 답장을 받아보고, 우체부의 오토바이 소리가 언니의 연애 편지가 아니라 나의 손님일 수 있음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일기뿐만 아니라 편지도 애정하는 습관이 스민 것 같다.
중학생 때 <데미안>을 건네준 친구와 편지친구를 했다. 앤과 다이아나처럼 친밀했고 꾹꾹 눌러쓴 친구의 글씨체는 친구의 얼굴만큼 눈에 선하다. 고등학생 때에 중학교 동창인 남자사람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고백하는 방법을 같이 고민하기도 했으나, 결혼하고는 소식이 없다. (시시한 놈!) 대학생 때에는 고교 역사 선생님과 야학 동료에게 편지를 썼고, 아직도 마음을 길어 올리고 싶을 때면 떠오르는 대상이기도 하다. 수신인이 있는 편지이지만 상대의 안부를 묻기보다 나를 들여다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 더 공들였고, 답장을 받으면 세상 응원을 다 받은 기분이었다. 지금도 벗들과 연을 이어가는 방법의 하나가 엽서 쓰기이다. 실시간 채팅이 가능한 ㅋㅋㅇㅌ을 좋아하지 않기에 호흡을 고르면서 쓰는 문자마저도 엽서같다.
내가 만난 학생들도 세상에 자기를 표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익히기를 바랐다. 초임 때에는 매주 월요일 첫 시간에 티타임을 가졌다. 어린이들이 먹어도 괜찮을 옥수수차를 준비하거나 겨울이면 모과차를 같이 담그고 학생들이 빚은 컵에 따라주었다. 마주 앉아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쥐었고 호로록 마시던 입으로 생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말에 함께 한 가족 호칭 말하기, 먹은 음식 말하기, 다녀온 곳 말하기, 본 것 말하기 등을 하였다. 경험을 말로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귀한 나눔이 허공에 흩어져버리는 게 아쉬웠다. 그네들이 좋아하는 핸드폰 말고도 기록할 수 있고 감응할 방법으로 글쓰기가 있다는 것을 같이 경험하고 싶었다. 자기 생각과 느낌과 경험을 자기 언어로 글을 쓰고 나누면서 내가 느꼈던 글쓰기 매력과 맛을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랐다. 특히,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것은 어렵지만 문해는 가능한 학생이 자기 내면을 글로 풀어내면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과 소통하는 채널을 하나 갖게 되는 거라 믿었다.
학교를 옮겼을 때, 월요일마다 첫 국어 시간에 주말 일기를 썼다. 주말에 가족과 지낸 이야기, 먹은 것들, 다녀온 곳이나 보았던 TV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였다. 빙 둘러앉아서 한 명씩 주말 이야기를 하면, 나는 전자칠판에 한글 파일로 깍두기 공책처럼 만든 원고지 창을 띄워놓고 받아 적었다. 이야기가 끝나면 출력하여 빈 원고지와 건넸고, 학생은 자신이 입으로 쓴 일기를 손으로 옮겨 기록했다.
하루는 6학년 상철이가 ‘어제저녁에 아빠가 쓸데없이 이야기했다. 엄마가 모른 척했다. 돈이 떨어졌다고 했다.’고 일기를 썼다. 그리고 며칠 후, ‘엊저녁에 아빠가 술 또 먹고 들어왔다. 엄마는 아빠한테 아빠 말을 안 듣고 저 방으로 갔다. 오늘 아침에 밥 혼자 먹었다. 7시 50분에 혼자 학교에 왔다. 모르겠다.’ 라고 썼다. ‘가난’과 ‘부모님의 싸움’은 상철이 힘으로 당장 해결하기 어렵겠지만, 감당하고 있는 무게가 버거울 땐 부모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된다고 누누이 말해도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고 눈물만 글썽거렸다.
내가 상철이만 할 때 느꼈던 生의 무거움도 ‘가난’이었다. 가난은 부모님의 잘못이 아니며, 나 혼자만 겪는 어려움도 아니라는 것,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것을 상철이에게 꼭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내 어릴 적의 일기를 가져와 읽어주었다. 덤으로 새해에 언니의 미모를 부러워하며, ‘언니는 외모가 아름답다. 내 얼굴은 어쩔 수 없으니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고백도 읽었다. 그러자 학생들은 모두 책상을 치고 발을 동동거리며 아주 크게 깔깔깔 웃었다. 상철이는 손바닥으로 이마까지 치며 ‘이그~’하고 웃었다.
내 일기장은 쓰고 싶어서 쓴 일기보다 담임선생님께 검사를 받기 위해 써야 했던 일기들이 더 많다. 글씨도 들쑥날쑥하고 줄을 채우기 위해 듬성듬성 쓰기도 했다. 종이가 다 해어지고 연필이 번져서 지저분하였기에 학생들에게 보여주기가 민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상철이가 웃음으로 울음을 날렸고, 우리가 더 친밀하게 느껴져서 골동품처럼 낡은 나만의 보물이 ‘우리의 보물’ 같았다. 학년 말에 특수학급 문집을 만들 때 어머니께 이 일기를 실어도 되는지 여쭈었다. 겸연쩍어하시면서 책으로 나오면 상철이가 나중에 커서 읽을 수도 있고, 상철이가 쓴 일기이니까 같이 넣어달라고 하셨다.
지금은 주말 일기를 쓰지 않는다. 주말에 지낸 또래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전 엑스포 과학 체험관에 갔거나 뷔페를 먹었다고 누군가 말을 하면, 그다음부터 나는 전주 동물원에 갔고, 나는 짜장면을 먹었다고 아리송아리송한 생활을 외쳤다. 가정의 어려움과 혼자만의 고민을 공적인 일기로 쓰기 어려웠으니 타인에게 보여주기 적당한 소재만 반복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집에서 학교로 시선을 돌려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학교생활 일기를 쓰거나, 한 달에 한두 번 가는 지역사회 참여학습을 다녀온 후, 그 경험을 사진 일기로 기록하기를 한다. 자신의 사진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활동이나 좋은 느낌의 사진을 골라 붙이고 경험과 기분을 적는다.
한번은 4학년 영대가 1교시에 건강 검진이 있는 날에도 지각했다. 체육관에 없어서 학교 건물 바깥을 돌고 돌다가 1층 로비에서 기둥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영대를 찾았다. 데리고 가서 건강 검진을 했고, 영대는 마침 그날 생활 일기 주제를 건강 검진으로 골랐다. 영대가 감정을 말하지 못해서 몇 번을 다그쳐 묻고 기다렸다. 그랬더니 6학년 주윤이가 대신 대답한다. “선생님, 저는 영대가 어떤 느낌인지 알아요. 남들한테 놀림 받는 사람들만이 느끼는데 일반 사람들이 모르는 감정이 있어요.” 순간 학생이 나를 ‘일반’ 사람들에 분류했다는 것에 서운한 거리감이 느껴졌고,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감정을 주윤이가 또래의 시선과 관계 속에서 읽어내어 표현하는 데에서도 놀랐으며, 주윤이가 또래 관계에서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다는 데 여전하고 난감한 슬픔이 몰려왔다. 영대는 ‘체육관에 여자친구들이 많이 나를 쳐다봐서 깜짝 놀랐다.’고 정리했다.
단 한 번도 비슷한 학생이 없었다. 사실 비슷할 수가 없다, 사람은 저마다 고유하고 각기 다른 가정환경과 지역사회에 있으므로. 게다가 장애의 범주도 다르고 같은 범주라 하더라도 성격과 기질도 달라서 누구와 같은 학생으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 내 경험은 편견이 되어 학생을 오롯하게 볼 수 없었다. 사람은 평생 성장기라고 하였던가. 다르고 다른 학생들과 적절한 표현과 소통의 방법을 궁리하면서, 내 시선이 어디에 더 쏠리고 어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이제야 내 감각의 촉수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내가 내 고유의 걸음에 맞는 글로 내 삶을 풀어낼 때, 나랑 공부하는 학생들과 그들의 가족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였으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자기 언어로 나와 교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단 한 줄의 고백을 나누더라도 소통하면서 힘과 위안이 되는 생의 걸음을 같이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의 글을 마주할 때 그들 또한 온전한 거울로 바라볼 수 있으면 더욱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