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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스누피 May 22. 2023

선을 넘지 않으려면

[엄마로 살기] 적절한 스킨십 가르치기

얼마 전, 아이 유치원에서 특성화 수업 중에 발생한 외부강사의 똥침 사건으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동성(同性)의 강사였고, 그런 행위에 대해서 성적 의도가 있었다기보다 시대와 인식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실수였을 거라 생각했다. CCTV를 확인한 후에도 다행히 걱정했던 것만큼의 심각한 터치가 아니었고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생각보다 이 사안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에 사회적 분위기가 이렇게 많이 달라졌구나 싶어 새삼 놀랐었다.


그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말과 행동에 더욱 민감하고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학부모로서 경각심을 갖게 되는 일이었다.


가해자가 되면 안 돼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실수로라도 우리 아이들이 친구들 사이에서 가해자가 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더욱 단단히 일러두어야 할 것 같아 각각 초등학생, 유치원생인 두 아들들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유치원 체육선생님이 앞으로 수업을 못하게 되셨어. 함부로 다른 사람의 몸에 손을 대거나 똥침 같은 장난을 치면 안 되거든."

“근데 엄마 나는 선생님이 그렇게 하면 깔깔깔깔 웃었어”

“그래 너는 재미있었겠지만, 아닌 친구들도 있었대. 그래서 다른 사람들 몸에 손을 대는 건 안돼"

"근데 엄마, 내 여자짝꿍은 말도 없이 내 손 그냥 막 잡아."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엄마, 그럼 이럴 때는 괜찮아?'라고 묻는 아이들에게 적절-부적절한 접촉을 명확하게 선을 그어 설명하기 어려움을 느꼈다.

선생님의 지시로 이성의 친구와 손을 잡아야 할 땐 괜찮은지, 실수로 친구의 몸이 닿았을 때, 동성친구일 때는 괜찮은 건지. 사실 사람마다 기준도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상대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다양한 상황을 일반화시키려다 보니, 그냥 '가족 외에 누구든 만지지 말고, 누구도 너를 만지지 못하게 해'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남자아이들이다 보니 거친 행동이나 말이 까딱 잘못했다간 의도치 않게 학교폭력이 되고 성추행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우리 아이들이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가르쳤다.


피해자도 되면 안 돼


그 일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유치원에서 친구에게 헤드락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놀이 중에 친구의 요청을 거절했다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우리 아이는 놀라서 울었고, 그 일로 선생님으로 부터 전화를 받고서 유치원에 다소 행동이 거친 아이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구나. 우리 아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구나.


내가 아동전문가는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아이들에겐 일상의 적절한 부딪힘(신체, 정서를 훼손하는 추행이나 폭행 같은 무서운 경험을 제외하고)을 통한 사과와 화해, 용서와 이해의 과정을 겪으면서 적절한 터치의 강도와 접촉의 범위를 체득해 간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불편한 느낌을 알아가고 불편함을 표현하는 법을 배움과 동시에 상대의 불편함을 인지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유치원에서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다툼은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특별히 다친 곳이 없고 선생님도 적절히 개입했으니 괜찮다고 넘어갔지만, 남편은 오히려 이런 일에 더 예민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볼멘 소리를 했다.


남편의 말을 곱씹으며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를 터치하는 건 절대 안 되고, 다른 아이가 우리 아이를 터치하는 건 내 기준대로 그냥 넘어간다..?'라고 생각하니, 내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보호자로서 이렇게 대응하는 게 과연 적절한 것인가 하는 가치관의 충돌이 찾아왔다.


네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존중하라


이 글을 쓰는데 정말 오래 걸렸다. 내 생각이 맞는 걸까. 하고 싶은 말은 많긴 한데 전문가도 아닌 내가 감히,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데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니 말이다. 조심스러워서 몇 번을 쓰고 지우고 했던 것 같다.


사회적 스킨십도 분명 필요한데, 적절과 부적절의 명확한 선을 누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의 소중함을 아는 것과 나를 지키면서 상대를 배려하는 존중일 텐데, 나는 그동안 우리 아이들이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지 않는 것에 더 집중했다.


개인의 존재가 작품이긴 하나 전시물은 아닌데, 전시물인 양 '만지지 마세요'라고 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상대를 무조건 터치하지 않는 것도,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괜찮다고 하는 것도, 나를 불쾌하게 했으니 응당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도 존중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범죄는 경우가 다르다.)


적절한 존중이란 나와 상대에게 허락된 바운더리를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내가 용인할 수 있는 선을 정하고, 내가 불쾌한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스스로에 대한 존중을 배우고 자연스레 타인의 바운더리에 대해서도 관심 갖고 배려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은 그런 과정을 어디서 습득해야 할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십계명의 말씀이 떠오른다.

물론, 그 한 마디에는 여러 가지 더 깊은 뜻이 있겠지만 말이다.


아이와 이야기해 볼거리가 생겼다.

너와 나를 지켜주는 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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