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담스누피 Nov 27. 2023

다 꿈인 줄 알았는데, 현실이었다.

이거슨 예지몽인가 무의식의 의식인가.

나는 영 아닌가 보다 하여 브런치를 떠나있었는데, 다시 돌아오게 한 건 다름 아닌 오늘 꾼 꿈 때문이다.

새벽에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일어나 둘째 아이 옆에서 다시 잠을 청하면서 아침까지 난 두 번의 꿈을 생생하게 꿨다.


월요일 새벽, 나는 꿈을 꾸었다.


#1.

난 지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전 직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무슨 일인지 묻는 사람들에게 "나 오늘부터 다시 일하기로 했어."라고 웃으며 말하고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둔 채 사무실을 돌았다. 다시 만나게 된 동료들과 반갑게 인사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다.


다시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집까지의 거리가 멀어 다시 아이들 등하원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전에 함께 일하며 불편했던 사람들과 다시 일을 하는 것도 영 껄끄러웠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 자리에 다시 왔지?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면서 점점 이곳은 나를 진심으로 환영하는 사람도 없고, 이미 다 채워진 자리에 내가 있을 자리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너무 창피했고,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절망스러웠다. 뻔뻔하게 그냥 다닐지 민망하지 않게 아무도 모르게 이직을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뒤척이던 둘째 아이의 발길질에 눈을 떴다. 그리고 다시 잠들었다.


#2.

눈을 떠 보니 아침 9시였다.

이미 둘째 아이의 유치원 버스는 떠났을 시간이고, 첫째는 수업을 시작했을 시간이었다. 첫째는 어쩔 수 없이 지각이지만, 인근 아파트로 오는 둘째 아이 유치원 버스가 20분 뒤에 도착하니 그전까지 준비하면 15분을 걸어 유치원에 등원시키지 않아도 되고 10시까지 출근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채근하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둘째는 인근 아파트 앞으로 데려다주고, 첫째를 등교시키는 길에 근처 플리마켓에서 물건을 사 오라는 아이의 숙제를 위해 플리마켓을 돌며 물건을 구입해 아이를 교실로 올려 보냈다.


힘든 미션을 마치고 출근하려는데 아이의 책가방이 내 어깨에 걸쳐져 있는 것을 보고 다시 교실로 뛰어갔다. 열린 교실문 사이로 조심스레 안을 들여다보니 이게 무슨 일인가?? 유치원 버스를 타고 있어야 할 둘째 아이가 형 옆에 앉아서 같이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라 교실로 뛰어들어가 너 왜 여기에 있느냐고 다그쳤다.


담임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러 말하기를 아이가 길을 잃고 울고 있는데 마침 첫째 아이의 동생이라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아차! 생각해 보니 둘째가 유치원 버스를 타는 걸 본 기억이 없었다. 아이들을 빨리 데려다주고 늦지 않게 출근해야 한다는 마음에 그냥 길에 두고 온 것이다.


자칫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었던 큰 실수했다는 생각에 심장이 바닥까지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하루쯤 지각하는 게 뭐 대수라고 아이까지 내팽개치고 왔을까. 미안한 마음에 울먹거리는 아이를 꼭 안고 엉엉 울고 있는데 알람 소리가 들렸다. 꿈이었다.


예지몽? 아니면 무의식의 의식?


#1.

두 꿈이 모두 이상했는지라 일어나서까지 그 감정이 잊히지 않았다. 그래도 여느 때처럼 평범하게 아이들을 시간 맞추어 잘 배웅해 주고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하고 오전 메일을 확인하고 팀 메신저 대화기록을 읽고, 지난 금요일 문의해 놓은 업무 결과를 확인하려고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ㅇ과장님이 오전에 문의 주신건 말씀이신가요? ㅇ과장님이 아까 테스트하신다고 했어요."

메일함엔 내가 문의한 메일에 대한 회신이 없었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ㅇ과장님에게 물었더니, 오전에 자기가 물어봐서 파일 받았고 좀 전에 테스트한다고 팀 메신저에 남긴 거 못 봤느냐며 나를 다그친다.

다시 보니 메신저 내용을 다른 건이라고 내가 착각한 것이긴 했지만, 황당했다.


아이들 등원으로 내 출근 시간이 늦으니 그 사이에 일이 마무리되어 먼저 진행했을 수는 있겠지만, 엄연히 나에게 주어진 업무인데 이러저러해서 먼저 처리했다는 말도 없이 그냥 진행해 버리니 내 마음도 편치 않았던 것이다.


이번 경우가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으니 내가 하겠다는 업무도 다 본인이 내가 하겠다고 하고 PM이 내게 넘겨준 일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딱 잘라버리니 무안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내가 지금의 프로젝트에 합류한 지 아직 만 2년이 되지 않았고, ㅇ과장은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지 6년 차 베테랑이라는 걸 인정하고 있지만 나도 엄연히 과장의 직함을 달고 있는 경력자인데 꼭 무시당한 것 같아서 불쾌했다.


그래도 나보다 선배고 지금까지 늘 그래왔으니 이번에도 그냥 그러려니 하자. 아무래도 ㅇ과장 혼자서도 가능한 수준의 프로젝트이니 내 커리어를 위해 다음 연봉협상 땐 다른 프로젝트가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야지 생각하며 상한 기분을 떨쳐내려 애썼다.


그러던 중에 몇 주 전 이력서를 넣었던 곳에서 서류전형 결과 공지를 보내왔다. 비록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는 부족한 스펙이지만, 업무 내용이 이전 회사에서 내가 담당했던 일들과 딱 맞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어 한번 해볼 법하다는 생각으로 낸 이력서였다.


그동안 이직준비를 하지 않았던 터라 영어 점수도 없었고 대학시절 해외유학 경험이 없어 빈칸으로 남겨야 하는 항목도 있었지만, 경력적인 부분은 나름대로 잘 채워 넣었으니 운이 좋으면 가능성이 없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대기업이라 학력을 무시할 수 없을 테니 떨어져도 크게 마음 쓰지 말자 다짐했지만, 막상 서류전형에서 조차 통과하지 못하니 실망스러웠다.

'아.. 그래도 딱 맞는 경력이 있으니 서류는 통과할 수 있을 줄 알았지.'라고 내심 기대했던 것이다.


아쉬움은 우울함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내 경력이 정말 하찮고 쓸모없구나.' 내 지난 20-30대의 인생이 참을 수 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불합격 안내에는 "귀하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팀에 더 잘 알맞는 인재를 채용하기 위함이다."라고 친절한 위로를 덧붙였지만 이러쿵저러쿵 아무리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그냥 그들에게 나는 역량이 딸리는 지원자였을 뿐이다. 안 그래도 출근부터 잉여인간 취급받아 불쾌한데 이직 시도마저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니 나 스스로가 더 가치 없고 쓸모없이 느껴졌다.


앞으로 갈 곳도 없고, 지금의 자리도 내 자리가 아니라고 느꼈던 꿈 속에서의 절망적인 감정이 나를 뒤덮었다. 꿈에서처럼 지금의 자리에서 잉여처럼 남아 뻔뻔하게 버틸 것인가, 다시 취업이라는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할 것인가.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하는 현실은 그대로였다.


#2.

어려운 감정을 떨쳐내려 잠깐 딴생각을 하다가 오전의 그 사건으로 잊고 있던 일이 생각났다. 첫째 아이 4분기 방과 후 수업 신청을 깜빡 잊는 바람에 기존 수업보다 뒷타임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방과 후 스케줄표를 다시 짜야했는데 잊고 있었다. 당장 내일 변경된 시간으로 돌봄 교실,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에 말해줘야 하는데.......


부랴부랴 스케줄을 다시 정리했더니 [학교 - 학원 - 학교 - 학원 - 집]으로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일정이라 이제 초등학교 생활을 1년도 채 보내지 않은 아이에게 무리가 있어 보였다.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아이에게 방과 후 수업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방과 후 수업을 너무나도 좋아하는데, 퇴근시간에 맞춰 집에 도착해야 하니 방과 후 수업보다 학원이 우선되어야 했다. 내가 방과 후 신청을 까먹지 않고 제때 신청만 했어도 이런 고민은 불필요한 것이었을 텐데 이런 칠칠이 엄마를 만나 아이만 고생스럽게 한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내가 집에 있어서 아이를 시간 맞춰 픽업해 줄 수만 있다면, 퇴근시간 맞춘다고 이렇게 무리하게 학원스케줄을 짜지 않아도 됐을 텐데. 방과 후 수업을 언제 하던 이렇게 복잡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됐을 텐데. 첫째 아이와 같은 반인 친구의 엄마는 초등학교 1학년 휴직제도가 있어 휴직 중이라는데 능력이 있어 육아복지가 좋은 큰 회사에서 일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재정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의 무능과 실수가 꿈속에서처럼 아이들을 길에서 헤매게 하고 지켜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착잡해졌다.


다 꿈인 줄만 알았는데 모두 현실이었다.

사회에서 안정적인 내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도, 가정에서 안정적으로 아이들을 지키지 못하는 것도.


이제 마흔이라고 생각했는데 국가가 30대의 마지막을 1년 더 연장해 준 덕에 아직은 30대 인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30대의 마지막 길에 선 어른이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내일을 위해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고심 끝에 오늘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


_


마침 첫째 아이가 읽고 싶어 하던 책 세트가 당근에 올라왔다.

좋아하던 과학실험 수업을 포기해야 할 아이에게 조금의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 직장인의 소중한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사왔다. 신나게 읽을 아이를 떠올리며 마음은 여전히 무겁지만 그래도 즐겁게 퇴근해야지.


라고 쓰고 나니 방과 후 샘에게서 연락이 왔다. 원래 시간으로 참석해도 된다고. 그래.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선생님의 배려에 감사를 전하며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퇴근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남 탓하는 세상, 나도 남 탓 좀 해도 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