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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스누피 Apr 06. 2023

다 망했다고 생각될 때

네모 / 존 클라센 그림, 맥 바넷 글

이 책은 내가 그림책을 좋아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책이다. 첫째 아이가 두 돌쯤이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 책을 읽혀주고는 싶은데, 어떤 책을 골라주어야 할지 모르겠고, 집 주변에 서점이라도 있으면 어떤 책들이 있는지 훑어보기라도 할 텐데 내가 살던 신도시엔 아직 대형서점이 들어오지 않았다. 큰 마음먹고 찾아 간 서울 대형서점에서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도형 친구들 책이었다. 옆으로 길게 늘어진 세모, 네모, 동그라미 책 표지의 눈동자들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림책 사랑이 시작됐다.



[책 이야기]
"얘는 네모야" 책은 네모에 대한 소개로 시작하고 이후 동그라미가 등장한다. 네모는 매일같이 비밀동굴 속의 네모난 돌덩어리를 언덕 위로 밀어 올려 작품을 만든다. 하루는 낑낑대며 일하고 있는 네모에게 동그라미가 찾아온다. 그리고 동그라미는 말한다. "넌 정말 멋진 조각가구나." 조각가가 뭔지 조차 알지 못하는 네모에게 동그라미는 내일까지 자신의 조각상을 하나 만들어달라는 통보를 한 뒤 가버린다. 그리고 지금껏 조각이라곤 해본 적 없는 네모의 귀여운 번뇌가 시작된다. 네모는 완벽한 동그라미를 만들기 위해 돌덩어리를 다듬는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돌덩어리는 엉망이 되어버리고 네모는 점점 좌절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리고 마는데, 절망한 네모는 지쳐 잠이 들고 다음날 아침 동그라미가 찾아온다. 그리고 말한다. "아주 완벽해. 넌  천재야."
네모 / 존 클라센 그림, 맥 바넷 글 / 시공주니어


동그라미는 완벽하게 동그랗잖아.
망쳤다는 생각. 완벽해야 한다는 착각.


내가 네모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네모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네모 책을 읽다 보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로 힘들었던 모습. 하면 할수록, 애쓰면 애쓸수록 점점 문제는 산으로 가는 것 같고 “도대체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는 거지?!”하는 생각에 화도 나고 좌절하던 모습이 떠올라 네모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건 완벽한 거랑은 정반대잖아."

학생 시절 과제를 할 때도 방향이 잡히지 않아 밤새 끙끙 앓다가 결국 대충 마무리한 채로 들고 갔던 기억도. 정해진 일정까지 제출해야 하는 기획서가 초안도 잡히지 않아 쩔쩔매던 직장생활의 기억도. 모두 네모의 모습으로 함축된다. 완벽하고 싶으나 완벽하게 하려할수록 더 엉망이 되어버리는 내 한계에 절망하고 불안해한다.


사실, 동그라미는 네모에게 "완벽하게"를 요구한 적이 없다. 그저 천재라는 칭찬과 함께 자신의 조각상을 만들어달라고 했을 뿐이다. 네모 스스로 완벽하게 동그란 조각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진 것 처럼 보인다. 애초에 누구도 "완벽하게"를 요구하지 않았다. 사실 누구든 완벽할 순 없다. 그러니 내가 완벽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할 필요도, 내가 완벽하지 못했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아직 망하지 않았다. 


물론 원고를 퇴고하듯 완벽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최선의 결과물은 낼 수는 있다. 그러나 네모에게 그렇듯 아무도 나에게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않으며, 완벽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저 나 스스로 완벽해야 한다는 착각 때문에 괴로운 것일 뿐이다. “완벽한 부모”, “완벽한 자녀”, “완벽한 리더”, “완벽한 전문가”는 없다. 완벽한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착각은 내가 완벽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음... 좀 멋진 것 같긴 해
칭찬과 인정의 유혹에 흔들리는 이에게

사실 네모를 번뇌에 빠뜨린 문제의 원인제공자는 동그라미다. 진짜 네모가 하는 일은 돌덩어리를 언덕 위로 밀어 올려 쌓는 것이다. 동그라미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네모의 진짜 결과물이 아닌 네모난 돌덩어리를 보고 네모의 작품이라 착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동그라미의 착각에 네모는 왜 "이건 내 작품이 아니야. 나는 조각가가 아니야"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했을까. 네모가 왜 그랬을지, 모르는 건 아니다.


사람은 칭찬 앞에 약자가 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사람은 오죽할까. 나도 칭찬받고 싶다. 내가 하는 일뿐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 그러나 이런 욕망이 때론 스스로를 기만에 빠뜨릴 때가 있다. 내가 정말 그 것을 잘하는 것처럼, 내가 그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 내가 서있는 것을 발견하고 후회한다. "내가 대체 뭘 한 거지?" 라고 말이다.


"내가 대체 뭘 한 거야?"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은 건 정당한 욕구다. 다만 사소한 칭찬에 나 자신이 휘둘리지 않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잘못 겨눈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힘과 칭찬 한 번 듣지 못해도 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나 스스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는 것.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은 “네 분수를 알아라”가 아닌, "네 스스로의 가치를 제대로 인지해라"에 더 가까울 것 같다. 나 자신을 알면 의미 없이 내뱉는 어떠한 한마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시몬스 같은 안정감을 갖지 않을까.


"나는 그저 돌덩어리들을 밀 뿐이야. 다듬지는 않는다고. 나는 (이 분야에) 천재가 아니야"라고 인정한다고 해서 과연 천재가 될 수 없는 걸까? 네모가 천재인지 아닌지, 네모의 진짜 작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니 아무도 모른다. 내 인생 역시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모른다. 그러니 섣불리 다른 사람들의 칭찬 한마디에 내 인생을 걸진 말자. 그저 칭찬을 듣는 것보다 내가 듣고 싶은 칭찬이 무엇인지부터 아는 게 먼저 아닐까. 솔직히, 칭찬에 춤을 추었다는 그 고래는 과연 춤을 추는 게 좋았을지 궁금하다. 고래의 본질은 춤을 추는 것에 있지 않으니까. 네모에겐 네모의 일이 있고, 나에겐 내 일이 있다. 그리고 각자가 그 일에 가장 최적화된 재능을 갖고 있다.


To. 차니주니
아직 만 4세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너. 못할 것 같으면 시도하지 않고, 완벽하지 못한 결과물에 대한 좌절감도 큰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하면 가장 좋은 결과물이 나올 거야." 다른 무엇보다 네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해봐. 다른 사람들의 가볍게 던지는 한마디에 흔들려 상처받거나 으스대지도 말고.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려 애쓰기보다,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달란트로 가장 아름다운 인생이란 작품을 만들어가길 바라. 네 인생의 근원은 누군가의 가벼운 칭찬 한마디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 잘못된 메시지들에 흔들리지 말고 네 마음에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켜가며 사는 거야.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잠 4:23」
"그런데... 정말 네모는 천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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