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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휘 Dec 09. 2023

엄마가 인생을 만만하게 봤으면 좋겠다

 낮에 배추 된장국을 끓이면서 엄마 생각을 했다. 혼자서 밥을 해 먹을 때면 엄마 생각을 많이 하는데, 특히나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틀림없이 엄마 생각이 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배추된장국 국물에 흰 밥을 뜨뜻하게 말아 한 입을 후루룩 떠 먹는다. 그 포근함이 엄마의 품 같다. 슴슴하게 끓였지만 나름 시원하고 진하다. 된장도 배추도 엄마의 사랑처럼 아낌없이 넣은 까닭이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인형이랑 저녁 먹으러 나가. 응 엊그제 명란젓을 샀구, 윤이 옷을 건조기에 돌렸더니 또 팍 줄어들었어."


 막내이모와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참 밝았다. 단순히 밝아서 좋다고 생각했다. 목소리에 힘이 있는 게 귀여워서 안심이 됐다. 몇 시간이 지나고 막내이모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정년퇴직을 3주 정도 앞둔 엄마에게 병원 사람이 "썅년"이라는 막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걸 엄마가 꾹꾹 묵혀두었다가 수일이 지나서야 힘들게 꺼낸 것이다. 어느 직장에나 스스로를 포식자라고 여기는 악당들은 있기 마련이고, 그런 곳들에서 엄마는 언제나 묵묵하고 착실한 약자 역할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엄마도 상처를 적잖이 받은 듯했다. 나는 아직도 엄마 속을 다 모른다. 사실 엄마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밝았던 거다.


 "엄마가 아직 애기라서 그래요. 꾹꾹 참지 않아도 되는데. 조만간 제가 집에 한 번 갈게요."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한 지인으로부터 내가 많이 단단해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올 초에만 해도 나는 연두부 같아서 무슨 얘기를 해도 마냥 그렁그렁한 눈으로 공감해줬었는데, 지금은 솔직한 마음의 이야기를 잘 꺼내기 시작한 것 같다고.  분명 길고양이처럼 연약한 모습이었는데 (심지어 츄르를 입에 갖다 먹여줘야 겨우 핥아 먹을 정도로 보였다고 했다) 지금은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줄 아는 사람 같다고, 그게 참 강해 보이고 멋있어 보인다고 했다. 심지어 같은 날에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면 병에 걸리는 사람 같다'는 말도 들었다. 몇개월 사이에 큰 일을 겪으며 내가 많이 변한 탓도 있겠지만,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건 오히려 나 자신의 안녕을 위해 득 될 게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도 물론 중요하지만 반대로 내가 상처 입지는 않았는지, 이대로 넘어가도 괜찮은지, 지금 내리는 선택이 나에게 정의로운 방향이 맞는지를 두고 '나 자신의 눈치'도 좀 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그런 방법을 엄마가 조금씩 익혔으면 좋겠다. 엄마가 기죽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인내하지 않고 대들었으면 좋겠다. 썅년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러는 너는 썅썅년이냐고 받아쳐줬으면 좋겠다. 사실 엄마 뿐 아니라 모든 63년생 여자들이 다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도 세상이 자꾸만 도망가지 않는다는 걸, 서로 주지시키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취한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오늘 배추된장국 끓이면서 엄마 생각을 했어. 나는 혼자서 밥 해먹을 때 엄마 생각을 진짜 많이 하는데 유독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하면 엄마 생각이 많이 나. 늘 사랑해 엄마. 기 죽지 말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내가 든든하게 뒤에 있어. 엄마는 혼자가 아니야. 내가 엄마 빽이야.


 엄마가 자는지 답장이 없다. 그저 엄마가 편한 잠자리에서 좋은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삶을, 인생을 더 만만하게 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의 작은 엄마가 건강하게 커 가도록 내가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다.



*작가의 말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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