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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방 Apr 18. 2021

보금자리

#동해시

혼자 지낼 수 있는 곳, 기왕이면 바다와 가까운 곳을 찾아 동해시까지 왔다.

좋은 글처럼 살고 싶다. 좋은 글이란 화두를 지닌 글이라고들 한다. 관심을 두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것에 집중하는 일.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밥을 먹을까 거를까 하는 작은 문제까지, 하루에도 수만 번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인생에 어떤 화두를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 인생의 화두는 '공간'이다. 

청소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쭉 공간에 대한 글을 써왔다. 가족이 많아 한 공간을 나누어 썼다. 벽이 얇아서 집 밖의 소음도 그대로 들려왔다. 모로 누우면 언니의 콧김이 느껴졌고, 돌아누우면 행인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더 잘 들렸다. 한 번은 '벽이 개 같다'고 생각했다. 원반을 던지고 기다리면 개가 물어오듯이, 벽은 가만히 있는 내 앞에 온갖 소리들을 물어다 놓았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집 밖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차비를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여행을 다녔다. 

대가족으로 살았으니 당연히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굳이 말하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여유가 있을 때마다 바다와 산으로, 어떤 때는 해외로 떠났다. 점차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기 위해 노력했다. 비슷한 풍경을 보면 꼭 다른 점을 살폈다. 마음에 체증이 있는 사람처럼 숨을 크게 들이쉰다거나 가만히 한 곳을 응시하기도 했다. 고독한 여행자가 체질인 줄 알았더니, 숙소로 돌아와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 게 더 좋을 줄이야. 고독한 생활가가 적성에 맞는다.


잠깐 머무는 자리보다 보금자리가 더 좋다. 

손 닿는 자리에 자주 쓰는 물건을 쌓아두는 자리. 누가 떠들어대도 돌아누우면 그만인 자리. 현실보다 비현실, 독립 대신 단기 임대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예상했던 대로 집안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예상과 달리 보금자리에서 할 일이 수두룩하다. 첫 일주일 동안 자주 사용하는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을 구분해 옮겼고, 나머지는 매끼 밥을 해 먹는다. 오죽하면 '먹는 게 일'이라고 할까.   


내 보금자리는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다.

한 번 시내로 내려가면 돌아오는 길에 지치고 만다. 그래서 발길 닿는 대로 걷는 대신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매주 토요일에 오는 트럭 채소는 중앙시장의 웬만한 가게보다 신선하다. 집 앞 슈퍼는 소주 한 병에 천칠백 원이다. 걸어서 십분 거리의 편의점 사장님은 장바구니를 들고 가면 슬쩍 과자를 쥐어주신다. 아랫집 할머니는 주말마다 교회에 나서고, 동네 유일한 분식집은 어른들의 놀이터다. 옆 골목에는 목줄 없이 뛰어다니는 아기 흑염소가 있다. 어슬렁 돌아온다. 이곳에서는 운동화보다 슬리퍼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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