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맥시멀리스트도 미니멀리스트도 아니다.
한낱 게으름뱅이다.
한번은 여행 가서 사 온 레이스 천을 꺼내려고 했다. 평소엔 잘 찍지도 않던 감성 사진이 그렇게 찍고 싶더라.
와인과 와인잔까지 갖춰 놓고 서랍을 열었다. 서랍 열한 칸을 열고 다시 장롱 두 짝을 열어젖힐 때까지...
정확히 한 시간 반이 지나도 찾지 못했다.
'분명히 봤는데'는 내가 어떤 물건을 찾을 때마다 하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미련함이었음 깨닫는 데는 두 시간이면 된다. 하도 부산을 떨어대는 바람에 가족까지 동원된다. "진짜 있어?" "이쯤 뒀어." 이 방 어딘가에 있다는 '말'로 존재하는, 구전동화 같은 내 물건들.
있으나마나 한 물건은 정말 내 물건이 맞을까. 다시 말해, 그 용도를 다 하고 있나?
추억하려고 산 물건은 온데간데없고, 필요하니까 산 물건은 훗날 두어 개씩 더 발견된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내가 사용하는 물건은 한정돼 있다. 의도치 않게 간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 때문에 공간이 좁아진다는 점이다. 군중 속의 고독, 아니 잡동사니 속의 고독이렸다. 무기력해지는 건 덤.
이런 부끄러운 이유로 능숙한 발굴자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은 물론, 하루하루 무기력해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버리기로 했다. 단, 나를 과대평가하지 말자. 다시 한번 상기하자면 나는 게으름뱅이다. 심지어 학창 시절 필담까지 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스텝 바이 스텝, 하루에 하나씩만.
2020년 말까지 하루에 하나씩, 버리다 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내 물건은 무엇 무엇이 있는지. 또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였으며 앞으로 어떤 생활을 가져다 줄지를.
마음도 생활도 가벼워지려고 한다.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