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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졔 Jan 11. 2022

실시간 교통 정보를 반영하여 경로를 수정합니다

2022.01.10

매일 쓰기로 다짐했던 새해 약속은 일주일을 채우고 깨졌다. 사실 토요일에는 관심 있는 교육 프로그램에 지원하려고 지원서를 3천 자 넘게 작성했고, 어제는 예전 글들을 퇴고하는 과정을 거쳤으니 글과 아예 멀어진 것은 아니었다. 목표를 세울 때 매일매일 쓴다고 했지, 구체적으로 '브런치에 쓴다'라고 한 것은 아니었으니 사실 나 스스로와의 약속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새해 결심이 깨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자위한다.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았던 목표를 핑계로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 보면, '오늘은 회사에서 기획안을 작성했으니까.' '오늘은 연애편지를 썼으니까.' '오늘은 카톡 메시지를 썼으니까.' 하면서 기록하기로 했던 원래 의도는 새하얗게 지워질 것 같다. 그렇다고 원래 세운 계획처럼 주중/주말 없이 너무 빨리 달리다가는 과열된 엔진에 터져버릴 수도 있겠다 싶다.


달성 가능한 수준의 실현 가능한 목표로 올해의 목표를 수정하기로 한다. 주중에만 매일 쓰고 주말에는 쉬어 가려고 한다. 단, 인공위성이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은 적당함의 인력이 존재해서일 테니 너무 느슨해지지 않을 정도로 그 적당함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 궤도를 유지하는 수준으로 계획을 수정한다. 수정한 건 새해 결심뿐만은 아니다. 하루하루 산다는 것이 계획을 세우고 무너뜨리고 수정하고 다시 세우고의 연속이다.


오늘 밤에는 이전에 다녔던 회사의 직장 동료와 함께 책을 매개로 하는 스터디를 시작해서 한 권을 꼬박 다 읽고 만나기로 한 일정이 있었다. 사실 미리 읽었어야 했던 책인데 오늘이 되도록 한 자도 읽지 않은 상태였다. 만남이 있기 전 모두 읽는 것을 목표로 오늘 회사에서의 점심시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에 도착해서 집중해 2-3시간을 투입할 예정이었다. 점심시간엔 오전에 하던 일을 마무리 지었고, 집에 오기 전엔 홀로 남아 야근해야 하는 동료가 저녁 식사를 청했고, 집에 도착했더니 남은 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다. 결국 다 읽지 못한 채로 이전 회사의 동료와 줌에서 만났다. 다행히(?) 이전 회사 동료인 A도 다 읽지 못한 채였다. 매 순간 경로의 수정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조금 덜 게으를 걸 자책한다.


지난 금요일엔 2월에 시험이 있는 자격증 시험을 하나 신청해뒀다. 큰맘 먹고 50만 원 정도의 온라인 수강료도 지불했다. 주말에 공부를 시작할 예정이었는데 아직도 시작하지 못했다. 남들은 2-3달을 준비한다는데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동안 준비해서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물론 이유야 있다. 토요일엔 지원해볼까 말까 했던 교육 프로그램에 지원하느라 시간이 없었다. 이 프로그램에 만약 합격하기라도 한다면 2월에 신청해둔 자격증 시험을 공부할 시간은 거의 전무해진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6월을 목표로 다시 준비하려고 한다. 대신 김칫국 마시기이지만 이번에 합격한다면 무료로 좋은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는 다시없을 기회가 생기니, 6월로 자격증 시험 일정을 미루는 것쯤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공부할 시간을 다른 곳에 썼다. 하나 더, 동네 서점에서 진행되는 강좌를 신청해서 들었다. 밤 10시부터 11시 반까지 진행되는 고전 읽기 강의여서 강의를 듣고 글을 쓰거나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면 될 줄 알았는데 10시에 시작된 강의는 12시를 훌쩍 넘겨야 끝났다. 일요일엔 전날과 주중의 무리가 채 가시지 않아 방바닥에 누워 그대로 세 시간을 잠들었다. 다시 잘 시간이 가까워 오길래 공부를 시작할까 하다가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이전 글 손보기를 했다.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유와 사연이 구구절절 넘치듯 앞으로도 사연거리는 많다. 이미 한 트럭을 준비해두었기 때문이다. 작년 말 일, 텅텅 빈 상태에서 오픈한 캘린더가 타이트한 일정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요즘의 나는 기본적으로는 주 5일 근무하는 직장인에,

1/14 대전 출장 (안 가고 싶은 데 간다고 말해 버렸어...)

1/17,18,19 점심 약속 (하... 뭔 일 없냐고 해서 없다고 했어...)

1/20 백신 부스터 샷 (아프면 어쩌지)

1/23 대구에서 오는 손님맞이 (작년에 한 약속이라 절대 취소 못해)

1/24 리포트 마감 (작년 8월의 여파가 올 1월에도 미치는군)

1/25 독서 모임 (이건 그제 잡은 약속인데 일정을 미뤘어야 했어...)

2/7 다른 독서 모임 (이건 사실 오늘 잡은 약속인데 그때 가서 미룰까 싶어)

2/12 또 다른 독서 모임 (이건 그래도 강의 중심이니까 나중에 복습해야지)

과 웹사이트 기획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다. 이런저런 스케줄이 2월 13일의 자격증 시험 준비까지 가는 길목 길목에 포진해있다. 아, 물론 지원한 프로그램이 합격되면 그것도 일정에 추가된다. 아, 물론 새해에 결심한 매일 글쓰기도 계속된다. 정말... 자격증 공부할 수 있을까...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이것은 내팔내꼰 (내 팔자 내가 꼰)... 새해라고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겠다며, 계획 없이 뚜벅뚜벅 하루하루를 사는 새해를 맞겠다며 호언장담한 자의 역설적인 결말이다.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빈 캘린더가 불안했던 불안 인간인 나는, 미친 듯이 이런저런 기회들을 잡으려 허우적거렸고 잡은 기회인지 알았던 것들이 사실 내 몸을 옥죄는 다시마와 미역 줄기 등이었던 것으로 판명되어 더 허우적거리게 되었다는 뭐 그런 결말이다. 


교통 상황이 원활한 줄 알고 룰루랄라 출발한 새해 달력의 첫 페이지는 이제 교통 체증에 시달린다. 선택과 집중에 완벽히 실패한 달력을 보자니 마음에도 체증이 생긴다. 빼곡히 적힌 일정에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일정을 보다 물어뜯는 손톱에선 거스러미가 뜯겨 피도 난다. 윽, 나 아마도 다 잘 해내고 싶은가 봐. 그런데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일정에 불안 인간은 또 불안하다. 쩝.


마음을 가다듬는다. 가고 싶던 대로 가고 싶다고 현재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파악했음에도 모른 척 밀어붙이면 심한 체증에 오도 가도 못할 수 있으니, 빠른 길인 줄 알았던 그 길이 더욱 정체되는 길이 되어 감옥처럼 될 수 있으니, 억지로 생각한 대로 해내기 위해 지나치게 아등바등하지 말자고 스스로한테 이야기한다. 내팔내꼰 2월 중순까지의 일정을 앞두고 이미 만들어져 버린 계획을 위해 최선을 다해되 강박적이진 않기로 다짐한다. 중요한 것은 조금 늦거나 경로를 수정하더라도 목적지에 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깊은숨을 들이쉬고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쉰다.


"실시간 교통 정보를 반영하여 주행 경로를 수정합니다."라는 내비게이션의 말을 수용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주행 경로를 수정하면 어쩌지!!!! 너무 늦게 도착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좀 더 자연스러운 태도로 물 흐르듯 경로를 수정하며 조금 늦더라도 목적지에 다다르려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통제할 수 없는 주변의 상황을 통제하려고 하지 말고, 몸과 마음의 GPS를 잘 들여다봐야지 마음을 다잡는다. 음, 궤도도 뭐... 벗어나는 게 살 길이면 슬쩍 피해 벗어나 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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