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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졔 Oct 07. 2024

Maglev

관계의 안정이 네게는 약이라면, 그래서 너무 익숙해지지 않길 바라는 내 바람이 네겐 버겁다면, 그리고 서로가 그리는 관계의 이상이 상이하다는 점이 네게 아쉬운 일로 다가온다면, 그리고 이 모든 말을 들을 때면, 나는 갑자기 종점에 다녀온다.


언제까지고 내일이 있을 걸 상정함으로써 오는 안정은 종국엔 잃을지도 모른단 데에서 오늘 절박함이나 소중함은 소거한다. 나는 그런 순간들에 사랑이 소실된 미래를 상기하곤 한다. 아주 오래된 미래. 반복적으로 선험해온 도래하지 않은 순간에 대한 예감. 잃을 수도 있다,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제가 지속을 만든다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믿어 버리게 되었다. 모든 관계가 거치는 안정이라는 역을 지나면 그 뒤에 오는 것은 상실과 실망으로 점철된 종점뿐이었으니. 그러니 내게 조금은 더 편안한 관계를 말할 때 나는 그게 곧 종착역에 가까워 온다는 안내방송을 듣는 것 같은 마음이 된다. 황급히 짐을 싸서 출구를 찾아야 하나 생각한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았는지를 살핀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질 순 없다. 그건 너무 무섭다.


섣부른 예언으로 잔뜩 무서워한다. 스스로의 마음을 할퀸다. 내가 내게 그래 놓고선 네가 나를 종점에 보내고 혼자 둔 것처럼, 네가 상처 준 것처럼 굴지 않으려 이를 꽉 문다. 어금니엔 버튼이 있어 상하악을 맞춰 힘껏 물면 눈물이 나게 되어 있지. 예방 접종하듯 종착역에 다녀오는 시뮬레이션을 반복하며 앞으로 올 상처에 맞서는 법을 미리 단련한다. 내가 내게 주는 상처로. 그건 언제나 네가/우리가 내게 줄 상처에 크게 못 미치겠지만. 그래서 예방 접종하듯 굴면서도 '진짜'는 오지 않길, 가능하면 오래 오지 않길, 아니 실은 영영 오지 않길 바라기도 한다. 언제까지고 함께이길 - 그 일이 가능보다는 불가능과 늘 더욱 친밀한 사이인지 모르지 않으면서도 - 염원한다. 그러니 관계에 안정은 독, 아니 실은 지금 이 상태가 이 상태로 쭉 지속되길 바라는 너무 바라기에 빠져 죽어버리고 싶은 깊은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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