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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 Nov 14. 2019

#51.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어릴 때부터 본 것을 또 보는 걸 좋아했다. 예를 들어 『삼국지』는 같은 책을 백 번 넘게 읽었으며 판타지 소설인 『드래곤 라자』도 오십 번은 넘게 읽었다. 그중에서도 다시 본 횟수가 가장 많은 건 아마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라는 시트콤일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방영했었는데 그때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면서 봤었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총 299편으로 되어 있다. 나는 운 좋게 전편을 소장하고 있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컴퓨터를 켜고 이 시트콤을 재생한다. 말로는 본 걸 또 본다고 얘기했지만, 사실 라디오처럼 틀어놓는 셈이다. 집에 혼자 사는 사람들이 집이 너무 조용해 TV를 계속 틀어놓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시트콤이나 예능을 틀어놔야만 잠들 수 있었다.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 왜 이런 버릇을 가지게 되었는지 생각해 봤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속 가족들의 느낌, 분위기가 좋았다. 그곳은 모든 게 견딜만한 수준이었다. 화목했다. 어린 내가 바라고 꿈꾸던 ‘가족’이 그곳에 있었다. 시트콤 안에서도 갈등이나 다툼 등 다양한 것들이 나오지만, 영원히 상처 받아 다시는 누군가를 보고 싶지 않을, 평생 나이가 들어도 이것만큼은 잊지 못하겠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곳에서 큰 사건은 노구의 간식인 양갱이를 몰래 훔쳐 먹다 걸렸다거나, 노주현 소장이 계속 승진을 못한다거나, 영삼이가 꼴찌를 한다거나, 노홍렬의 짝사랑을 돕기 위해 계획을 짜다가 그게 틀어지는 등 말 그대로 시트콤 안에서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어린 나는 컴퓨터에서 계속 반복되는 이 시트콤을 보며 위안을 얻었다. 온 가족이 모여 음식을 먹고, 함께 웃으며 윷놀이도 하고, 어디론가 놀러도 가는 그런 모습 속에서 말이다. 요즘에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를 틀어 놓고 잠드는 경우까지는 없지만, 종일 틀어놓는 버릇은 여전하다.


 똑같은 걸 계속 보는 내 안에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는 걸 안다. 모든 것이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있어야 안도감을 느낀다. 어릴 적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으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컴퓨터에선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소리가 들려온다. 시트콤이 종영을 한 게 꽤 되었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365일 내내 방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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