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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랑 Oct 31. 2019

#49. 하고 불렀다

 나는 단호하게 바로 진행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대답을 듣고 고개를 떨구더니 눈물을 쓱 닦았다. 닦아냈지만, 계속 흘렀다. 선생님 왜 우세요. 선생님이 우시면 어떡해요. 하고 내가 물었다.


 동물병원에서 집까지 돌아오는 길 내내 이를 꽉 깨물어서 턱이 아팠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바닥에 엎드렸다. 나라가 망한 사람처럼, 사형을 선고받은 억울한 죄인처럼 슬리퍼도 벗지 못한 채 바닥에 한참을 웅크려 있었다. 반려견이 되기 전 유기견이었고, 두 번이나 파양을 당했었고, 산책을 무서워했던. 10년 넘게 함께 했던 우리 집 막내 구름이의 안락사를 결정하고 돌아온 길이었다. 한 생명을 이제 없애달라고 말한 셈이었다. 숨 쉬는 걸 숨 쉬지 않게 해 달라는 얘기였다. 보는 걸 보지 못하게, 먹는 걸 먹지 못하게, 느끼는 걸 느끼지 못하게, 움직이는 걸 멈추게 하라는 말이었다. 죽음을 선고하는 일이었다. 그가 아팠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고, 누구도 준 적 없는 권한을 주인이라는 이유로 내가 가지고 있었으니까.


 어느 날 구름이는 밥을 먹지 못했다. 침을 흘리고 아무 곳에나 소변을 봤다. 이상하다 싶어 병원에 데려가 보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서히 나빠졌다면 알았을 텐데(핑계일지도 모른다) 하루 이틀 사이에 급격하게 나빠졌다. 병원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급성', '검진', '규칙'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엔 뭐가 있을까.


 구름이는 사흘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작은 희망을 품고 약물을 투여하면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나는 매일 찾아갔다. 구름이는 자신의 한쪽 발에 꽂힌 주사기를 떨쳐낼 힘도 없어 보였다. 내가 다가가자 아주 천천히 꼬리를 흔들었다. 투명한 유리로 막혀있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코를 유리 벽에 몇 번 부딪치고는 흐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유리 벽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다. 구름이와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웠음에도 나를 바라보는 눈이 멀게 느껴졌다. 아주 멀리 있는 걸 보는 것처럼.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 저기서 누가 오는 건가 하고는 멀리 있는 대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인사였을까. 우리는 가까이 있는데도 뒷걸음치듯 멀어지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약물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구름이의 힘든 싸움을 억지로 연장시키는 일에 불과했다. 수의사 선생님은 결정을 해야 한다고 했고 우리 가족은 구름이를 보내주기로 했다. 다들 구름이가 떠나는 모습을 마주하기 어려워했다. 나는 홀로 구름이를 보내기로 했다. 고민하는 가족들에게 혼자서도 충분하다 말했다.


 안락사를 결정하고 세 시간 뒤 다시 동물병원에 찾아갔다. 구름이는 흰 천 위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구름아 하고 불렀다. 평소였다면 내가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고개를 돌렸을 텐데 가만히 누워있을 뿐이었다. 나는 구름아 하고 불렀다.

 그와 내가 이제 더 이상 같은 곳에 머물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일이었다. 있지만 없는 일이었다.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잡아 모든 일을 마쳤다. 구름이는 작은 납골함에 담겨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 어두워진 하늘 밑으로 주황빛 가로등들이 스쳐갔다.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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