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안하다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자주 악몽을 꾸곤 하였다. 단지 높은 다리에서 떨어지는 장면이라면 설명할 수도 있겠건만 꾸고 나서도 한참 동안 다가갈 수 없는 어두움이라고 밖에는 그려낼 수 없었다.
기억하기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의 불안은, 아마도 태어나면서부터 느껴야 했던 근원적인 불안은 아니었을까. 새벽이면 이불을 적시는 오줌싸개. 당시 집에는 헤어 드라이기가 없어서 몇 시간 동안 꼬마 범죄자는 자신이 싼 오줌 이불속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온갖 상상을 다 해야만 하였다. 생각해 보라. 꿈을 깨보니 벌어진 일이니 할 수 있는 건 이불 밖으로 오줌 냄새가 새어 나지 않도록 자신의 코로 진공청소기처럼 빨아 당기는 수밖에. 지금 떠올려 보면 인간으로 태어나 겪어야 했던 원초적인 억압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시절의 불안은, '결핍'에서 오는 것이었다. 2학년 때 처음으로 못난 성적표에 부모님 확인 도장을 받아와야만 하였다. 칭찬받기를 좋아하는 나로선, 공부를 열심히 했을 만도 한데 부모님의 칭찬보다 밤새도록 나가 노는 게 더 좋았다. 드디어 내일까지 도장을 찍어가야 한다. 이대로 성적표를 내놓았다간 이불에 오줌을 싼 것보다 더 혼날 것 같아서 장롱을 뒤져도 나오지 않는 부모님의 도장을 찾다가 어린 나는, 할아버지의 도장으로 찍다 걸리고 말았다.
중학교 때의 불안은, '인기'에 대한 것이었다. 새로 생긴 중학교에서 일찌감치 공부보다는 튀는 행동으로 인기를 바랐던 시절이었다. 수업시간에 그런 친구들끼리 얼마나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드느냐가 그런 부류의 친구들끼리는 인기의 기준이었다. 결국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인 졸업 전 마지막 조회시간에 나는 공부와 무관하게 상을 타고 만다. 구령대 위에 서서 해설을 하시던 학생주임 선생님의 소개가 바로 이어졌다.
"... 이번 상은 1년 동안 학교 화단을 열심히 가꾼 화단 당번 상입니다! “
그런 자리에 나가 본 적이 없는 나는 이름이 호명되자, 잠바의 자크도 열어둔 채 구령대 위로 올랐다. 우수상! 화단 당번 우수상!! 굳이 말씀을 안 하셔도 되지만 호명을 하던 선생님은 마무리로 마이크를 사용하였다.
” 아... 아아... 그런데 화단상에는 상장이 없습니다. “
대학을 준비하는 기간 어떤 일이 나를 불안하게 했던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시기는 좋아 보이는 걸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시험 준비를 하던 시기였다. 신학교에 간다고 다니던 성당에 다 소문을 내놓고 보기 좋게 똑 떨어진 나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부끄러움으로 용모를 대신 바꾸기로 하였다. 갓 출소한 듯한 검정 고무신에, 스님처럼 머리를 바짝 밀고, 절망의 8자 걸음에 육중하고 건들건들한 몸매...
'불안'하다고 누구에겐가 솔직히 말할 용기만 있었다면, 그렇게 드라마에서처럼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돌아다니지는 않았을 텐데 '약하다고... 아프다고...' 말하면 금세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어두운 미래를 언제나 걱정하며 불안해하였다. 그때는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불안은 대학입시와 함께 사라지지는 않았다. 9년에 가까운 신학교 시절은 '자격'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우리는 가끔 모르는 길에서 용감할 때가 있다. 그때는 힘든 것보다 성인들의 숭고한 삶과 거룩한 사제들의 모습이 떠올라 불안을 외면하고 지냈던 시절이었다.
자신에 대한 끝없는 불안.
하느님이 알고 내가 알고... 유혹하는 악마가 아는
나만의 허물들이 언제든지 피어나 그런 자신을 가혹하게 심판하던 시간이었다.
결국 내가 잘해서 얻은 '자격'이 아니라 신의 무조건적인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나 자신을 허락할 수 있었던 사제서품.
신부가 된 이후 나의 불안은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꼭 전설적인 거룩한 성인들의 삶까지는 아니어도, 내 안에는 자신에게는 엄격하면서도 가난한 이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운 할아버지 신부의 모습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는 너무나 거룩하여 교회의 성무일도와 영적인 묵상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즐겁게 해 낸다.
이 시점부터 매일매일의 삶은 기쁨이기보다는 외줄 타기를 하듯이, 그의 그림자라도 닮고자, 즐겁고 거룩한 생활을 흉내 내며 죄스럽고 눈치를 보던 때였다. 독서 기도까지 튼실히 하면서 아무리 모임 중에 늦게까지 술을 먹어도 취한 입술로 자기 전 끝기도까지 마쳐야 했으니까. 아니 그날 그 시간을 못 지키게 되면, 미국 시차를 고려하여 마무리를 했으니 참으로 고집스러웠다. 새신부의 거룩함이라니. 그러나 '불안'은 나의 발목을 여전히 붙든다.
" 이 기도만 다 드리고 나면, 나는 내 본분을 정작 다 한 것인가? "
이제 마지막으로 두 번째 군생활의 전역을 앞둔 시기에 닥치는 '불안'이라는 이름.
이때의 불안은 ’ 기회‘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딱 짜장면 한 그릇을 먹을만한 돈이 있다면, 중국집에서 무엇을 골라 먹을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러나 주머니에 십만 원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가게의 주 메뉴와 오늘 날씨의 관계 그리고 술까지 추가하면서 '선택의 기회'는 갈등을 유발한다.
전역 후에
나는 쉬고 싶다.
나는 괜찮은 신부도 되고 싶다.
나는 교회의 좋은 일꾼도 되고 싶다.
나는 드러나지 않지만 진한 향을 품은 꽃처럼 살고 싶다.
나는 홀로 있는 삶을 꿈꾸면서도 꾸준한 관심을 받으며 살고 싶다.
나는 제법 괜찮은 글을 쓰며 그림도 그리고 성당 일도 잘하고 싶다.
나는
나는
나는
............. 그래서 불안하다.
내 몸을 휘감는 불안이 두통약처럼 한방에 해결되면 좋으련만...
삶의 매 순간 매 시기마다 나는 불안했으니, 의지적으로라도 한 일 년쯤은 그 불안을 쉬게 하고 싶다.
삶은 불안하니 살만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