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김장

김장이 별건가?

by Lenny Lee

내 나이 66세. 37년의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백수가 된 지 3년이 되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내가 부엌에 들어가거나 걸레를 들고 청소를 하면 남자의 심벌이 떨어져 나간다는 불문율처럼 되어 있는 뼈대 있는 집안에서 자란 내가 서서히 주부의 영역에 한발 한발 빠져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진다.

또래의 은퇴 친구들을 만나면, 설거지 전문이다, 음식 만드는 것이 취미다, 주부 습진이 걸렸다 등 여자 못지않은 수다를 남의 이야기로 많이 들었었다.


가을철이 지나 추워지면서 여자들의 고민거리 중에서 하나가 김장이다.

요즈음은 집에서 밥을 안 먹는 추세이고 언제든지 필요하면 김치를 사서 먹을 수 있게 되어 김장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김장을 준비하게 된다.


우리 집에서도 김장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간에는 어머님이 해서 주신 김장김치 덕분에 김장에 대한 고민을 안 해 왔고, 어머님이 시골에서 김장을 할 때 내려가서 김장 도우미는 하였지만 김장을 주도적으로 담가 본 일이 없어서 엄두가 안 나는 모양이다.

형제들 시골에서 모여서 어머님처럼 김장을 하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김치는 각자 기호식품이니 자기 입맛에 안 맞으면 처치 곤란하고 먹는 양이 많지 않으니 각자가 알아서 하자고 의견이 모아져 같이 김장을 하는 것은 피했지만 우리 먹을 것에 대한 김장을 할까 말까 하는 고민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옆지기의 이런 고민이 여과 없이 내게도 전해지고 어느덧 나도 고민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강원도 평창에서 김치 축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와 함께 축제장에 갔다.

절인 배추 16kg과 양념 6kg을 구매하니, 비닐장갑과 앞치마 김치용 비닐봉지와 종이상자를 주었고 마련된 테이블 위에서 버무리기만 하면 되었다. 아내와 함께 비닐장갑을 끼고 양념을 배추에 바르며 전해오는 질감을 느끼며 김장이 이런 거구나를 처음 느껴 봤다.

절인 배추에 양념을 바르기만 하고는 무슨 김장이라도 한 듯이 집에 와서 박스를 뜯고 꺼내서는 맛도 음미하고 김장 얘기와 김치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중에, 시골에 사는 친구가 배추 농사가 아주 잘 되었고 맛있는 배추라고 이십여 포기를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고맙다고 인사만 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얼기 전에 배추를 뽑아야 한다는 친구의 전갈을 듣고 내려가 밭에서 친구가 뽑아주는 대로 40여 포기를 차에 싣고 왔다.

배추가 단단하고 무겁고 속살이 가득하여 잘은 모르지만 맛은 있을 것 같았다.

좋은 것으로 골라 겉잎을 떼어내고 다듬은 다음 무게를 달아보니 60kg이나 되었다.


김장의 성패는 배추를 절이는 것에 있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의 소금을 넣어야 되는지? 또, 얼마나 오랫동안 절여야 하는지? 고춧가루는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젓국은 무엇으로? 양념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지 않고 우리만의 레시피를 한번 만들기로 하고 인터넷에서 조사를 하여 보았다.

사람마다 담는 방식이 다르고, 경험치로 하다가 보니 적당량? 이 가장 어려웠지만 자기 방식대로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부의 김장 레시피를 간단하게 소개하면,

배추 절이기는 배추 60kg에 소금 8kg을 사용하였다.

절임통 절반에 소금을 6kg 정도 넣고 잘 녹인 다음에 배추 잎 사이애 소금을 뿌리며 넣고, 처음 2시간이 지났을 때 뒤집어 주고 또 5시간이 지나서 뒤집어 준다. 이때 배추에서 물이 빠져 소금의 농도가 낮아졌으므로 남아 있는 소금을 다 넣어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시간 후에 잘 씻어서 건져내고 물기를 뺐다. 무게가 50kg으로 줄었다.

양념은 고춧가루 10근(6kg)을 꼭지를 떼고 씨를 빼서 너무 곱지 않도록 가루를 냈다 너무 곱게 하면 고춧가루가 양념에 묻혀 들어가 색이 안 난다는 고추가게 아줌마의 정보에 따라서....

고춧가루를 멸치 액젓과 찹쌀풀을 넣고 충분하게 버무린 다음 숙성을 시켜, 무채, 미나리, 갓, 양파, 마늘, 생새우 등 김치 속과 버무려 양념을 만들었다. 우리는 여기에 집에서 딴 홍시와 가시오가피 진액을 설탕 대신 사용하였다.

서툰 솜씨에 배춧잎 하나하나에 양념을 골고루 바르면서, 매년 만들어 자식들에게 보내 주신 우리 어머님의 정성이 생각이 났다. 쪼그리고 앉아서 우리 부부만의 첫 김장을 마무리하고 났더니 다리도 허리도.. 안 아픈 데가 없이 아프지만 가득 들어찬 김치통들 보니 마음이 넉넉하여지고, 맛을 보니 골고루 사각사각 한 배추의 질감이 살아있고 양념도 넉넉하지만 짜지도 않고 달짝지근한 맛이 있어 부담 없이 많이 먹어도 되겠다고... 종합적으로 또한 그런대로 맛이 있다고 느껴졌다.

마치자마자, 서울과 전주에 사는 여동생 집에 김치 한통씩을 전해주며 맛을 물어보니 맛이 있다고 한다.

또, 형제들 모임에 라면과 함께 내놓은 김장 김치에 대하여 맛이 있다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인생 처음 담가본 김장, 이 정도면 성공한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