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형 은행원 Jan 27. 2020

말하거니와 세상은 무한한 가능성이 숨겨진 잔디밭

문득 당신은 완벽한 봄날의 한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당시 내가 매진했던 계산은 두 가지였다. 우선 당장의 미래에 관한 것이 있었다. 지금 내 뱃속에는 불과 4시간 전까지 들이부은 술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녀석들이 어째서인지 지금 다시 튀어나오겠다고 뱃속에서 아우성을 치는 것이다. 나는 과연 남아 있는 15개의 정거장을 견뎌내고 사무실까지 입성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각은 아니다. 나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컴퓨터를 부팅하고 화장실 변기로 가서 토할 수 있다. 그다음 양치를 하고 타이레놀 두 알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시면 그럭저럭 하루를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견딜 수 없다면 중간에 내려 지하철 화장실에 토한 다음 출근해야 한다. 그러면 8분 정도 지체된다. 지각도 지각이지만 그 몰골로 만원 지하철과 회사의 로비, 엘리베이터를 통과해야 한다. 그 순간 누군가 내게 말이라도 붙이는 장면은 상상도 하고 싶지도 않다. 저번에도 그 상태로 본부장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던 기억이 난다. 내 온몸에서 알싸한 알코올 냄새가 났을 것이다. 나는 어금니 사이에 고이는 신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출근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바랬다. 머리가 빠개질 것 같다. 다시 그 놈들과 술을 마시면 내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접대를 하는 쪽이다. 부르면 가서 부어주는 대로 뱃속에 쏟아 넣어야 하는 "을"인 것이다.


출근길 얼어붙은 한강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분명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호선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 같은 건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막 돌이 지난 아이의 첫걸음이나 함께 했던 첫 산책 같은 것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 내 삶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노동은 내 삶에 깃든 모든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가차 없이 박살 내버렸다.




어떤 미래는 투명한 구슬처럼 단단하고 명료하게 고정되어 있다. 만취하지 않는 날의 지하철에서 나는 훨씬 더 먼 미래에 대한 계산을 하곤 했다. 나는 가방에 들어있는 Ba2-Plus 계산기를 꺼내어 나의 미래에 대해 계산을 해보곤 했다. 저축액의 추세와 자산, 예상수익률, 은퇴시점을 알고 있다면 그리 어려운 계산은 아니다. 내가 계산한 나의 미래는 이렇게 요약된다.


'지금부터 20년 후 나는 ##억 원을 가지고 은퇴한다.'


작은 돈은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 계산의 전제조건은 30대부터 50대까지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통째로 노동의 제단에 바치는 것이다. 당장 앞으로의 13시간도 온전히 견뎌낼 자신이 없는데 20년을 견뎌내고 내 손에 남는 것이 고작 이 정도라니... 납득할 수 없었다. 계산에 오류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므로 나는 지하철에서 이 계산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그러나 결괏값은 화강암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동일했다.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고통은 결국 20년 후의 ##억 원으로 등가 교환되도록 운명 지어져 있는 것이다.


괜찮은 척할 수 있다. 쿨한 척할 수 있다. 미래의 자산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융통성을 발휘함으로써 현재 삶의 질을 약간 올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본질적인 부분에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노동은 망치다. 그 망치는 내 삶의 온갖 좋은 것들을 자근자근 박살내고 있었다. 먼 훗날의 나는 지금부터 앞으로의 20년을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처럼 흐릿하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에서 불타버린 시멘트 맛이 날 것이다.


나는 정해진 미래를 살고 있다. 그러므로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의 출근길에도 나는 언제나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나는 현실을 잊기 위해 책을 읽었다. 출근길에 읽는 책은 일종의 진통제였다. 책을 읽는 순간에는 다음 13시간이나 20년에 대한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나는 더글라스 케네디나 스티븐 킹, 아서 C 클라크의 책을 읽었다. 그러나 이런 책들의 약효는 너무 짧았다. 책을 덮고 지하철에서 내리는 순간 환상은 종료되었고 냉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현실이란 그것이 상상이 아니란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가장 잔혹한 환상보다 더 가혹했다.


당시의 내가 이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책들에 머리를 처박고 문장들을 씹어 삼키게 된 것은 그만큼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더 강력한 진통제를 찾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들을 의식에 주입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발견했다. 세상에는 출근길 만성 구토 증후군에 대하여 꽤나 강력한 진통의 효과를 발휘하는 책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 있어 이 책들은 책을 덮은 뒤로도 꽤나 오랜 기간 진통의 효능을 발휘했다. 어쩌면 이 책들은 단순한 진통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치료의 효과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이 책들이 나의 현실 면역체계에 미치는 영향을 더듬어 유추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탁월했던 책은 엠제이 드마코는 '부의 추월차선'이라는 책이었다. 엠제이는 내가 지금 이렇게 직장에서 돈을 벌고 저축을 해서 부자가 되려는 생각이 얼마나 미련한 생각인지 말해주었다. 거래의 대가가 삶 그 자체라면 20년 뒤에 얼마나 많은 돈을 축적하든 그것은 실패한 거래라는 것이다. 얼마든지 다른 종류의 거래가 가능하다. 그 거래의 이름은 '부의 추월차선'이다.


엠제이는 '부의 추월차선'에서 살고 있다. 엠제이의 추월차선은 하나의 웹서비스다. 한때 리무진 기사로 근근이 먹고 살았던 엠제이는 자동차에서 대기하는 시간에 프로그래밍 공부를 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리무진을 임대해주는 웹서비스를 구현했다. 서비스의 초기에는 고객의 불만이 섞인 이메일에 10분 이내에 회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주말도 휴식도 없이 일했다. 그 결과 서비스를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은 지속적으로 감소했지만 수입은 증가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사실상 노동이란 행위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원하는 순간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 모든 업무에 대한 완벽한 통제력과 두둑한 수입을 함께 가진채 함께 말이다. 엠제이는 자신의 사례를 통해 이것이 가능한 이유와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에 대해 아주 잘 기술해 놓았다. 이것이 '부의 추월차선'이다.


부의 추월차선이란 개념을 표현하는 용어는 다르지만 동일한 이야기를 하는 책은 또 존재한다. 아마 가장 유명한 책은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일 것이다. 이 책에서 기요사키가 이야기하는 '파이프 라인'은 엠제이의 부의 추월차선과 동일한 개념이다. 그리고 피터 틸의 'Zero to One'이라는 책도 있다. 이 책에서 피터 틸이 이야기하는 '세상을 바꾸자는 작당' 또한 결국 앞의 두 개념과 다르지 않다.


나는 미래와 가능성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이런 책들을 좋아한다. 앞으로 펼쳐진 미래가 고정된 것이 아니란 사실이 그 자체로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더해 어쩌면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장밋빛일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달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출근길에 구토를 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세 권의 책을 추천하고 싶다. 내게는 분명 꽤나 강력한 진통과 치료의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 책들을 복용하기 전에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 구토의 완화에는 갈증이라는 부작용이 반드시 따르는 것이다. 이전까지 나는 내가 괴로운 이유를 직장에서 경험하는 부당함과 정해진 미래에 대한 불만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책들을 읽은 다음에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내가 느끼는 모든 비참함은 나의 무능과 게으름의 결과이며 받아 마땅한 형벌인 것이다.


책에서 말하거니와 세상은 무한한 가능성이 숨겨진 잔디밭이다. 나는 이곳으로 소풍을 나와 보물찾기 놀이를 하는 중이다. 지금 이 순간도 저 멀리 어디선가 돌 밑에서 보물을 찾아낸 누군가가 지르는 환호의 함성이 들린다. 이곳에 보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만약 내가 지금 이곳에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의 책임인 것이다. 이제 내게는 숨을 곳이 없다.


이 책들은 모두 세상에 보물이 가득 숨겨져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숨 막히도록 가치 있는 것인지 세심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들은 정작 보물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치도록 막연하게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아울러 이 책들은 보물을 찾는데 실패한 사람들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세상에 어떻게 실패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 실패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침묵한다.


그들처럼 나도 보물을 찾고 싶었다. 자유롭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작은 돌을 뒤집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작은 돌 뒤에 숨겨져 있는 보물이란 결국 허접하기 짝이 없는 쓰레기일 테니까. 나는 큰 돌을 뒤집어야 했다. 그런데 그 큰 돌을 뒤집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워 스타트업을 만들거나(이것은 엠제이 드마코의 방식이다), 민속 설화를 모아 꼬마 마법사 이야기를 쓰거나(이것은 J.K. 롤링의 방식이다), 실리콘 밸리의 천재들을 모아서 하나의 산업을 통으로 만들어 내거나(이것은 피터 틸의 방식이다), 지금까지 모은 모든 재산을 탈탈 털어서 부동산 개발 사업에 뛰어들어야(이것은 로버트 기요사키의 방식이다)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내게는 이 모든 것이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큰 돌 밑에서 보물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목이 탔다.


구토감은 사라졌다. 그러나 갈증이 남았다.

 



갈증이 치밀어 오를 때마다 나는 20대로 돌아가는 상상을 했다. 시간을 다시 뒤로 돌려 20대 초반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정말로 거대한 돌을 뒤집고 그 밑에서 멋진 보물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독점적 시장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만들거나, 구독자가 100만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20대의 내가 뒤집을 수도 있었을 그 수많은 돌들을 헤아리며 잠들곤 했다.


그러나 결국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돌릴 수 없다는 것을 -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더 먹을수록 내가 뒤집을 수 있는 돌은 점점 더 작아진다는 사실을.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나는 더 늦기 전에 내가 뒤집을 수 있는 돌을 뒤집기로 했다. 그 돌이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상관없었다. 재테크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내 능력으로 뒤집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돌이었다. 아주 큰 돌은 아니고 배게만 한 돌 정도 될까?


이 돌 뒤에 숨어있는 것이 보잘것 없으리란 사실을 알고 있다. 글을 쓰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채산성이 낮은 행위에 속할 테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크고 근사해 보이는 돌도 뒤집을 수 없다면 소용이 없다. 나의 돌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재테크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지금 당장 뒤집을 수 있었다. 내 돌인 것이다. 나는 내 돌을 뒤집었다.




돌을 뒤집을 때 나는 아프지 않다.


내가 미래에 대해 구토감을 느꼈던 이유는 그것이 정해진 값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돌을 뒤집으면서 문득 깨달았다. 내가 구토증을 앓은 것은 내 삶이 고작 돈과 인내, 늙음으로 구성된 방정식이란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병신 같은 방정식에 침을 뱉는 방법을 알고 있다.


돌을 뒤집는 가장 큰 목적은 보물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돌을 뒤집는 것은 의미 없던 시간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지난 일 년간 내게는 이런 일들이 있었다.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할 것 같았던 생각과 감정들에 누군가 공감했다. 내 글에 "존나 재미있네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런 것들이 지나간 시간에 의미를 부여했다. 노동의 강도와 부조리함은 변함없이 그대로 존재했다. 그러나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 노동과 돌 뒤집기가 버무려진 그 시간들에서는 쓴맛과 신맛, 산뜻한 과일 향이 잘 로스팅 예니체프 원두향이 났다.




내가 보물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갈증을 느꼈던 것은 질투 때문이 아니었다. 초조했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하루 쉬지 않고 나이를 먹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가능성이 소진된다는 것과 동의어다. 내가 50살이 되어 은퇴를 한다면 그 시점에 내가 뒤집을 수 있는 돌이 있기는 할까? 아주 작은 돌도 뒤집을 수 없는 그 시점에서 삶의 유효한 부분은 모두 종료되는 것이 아닐까? 늙지 않는다면 갈증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느낀 갈증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 것과 가능성이 소진되는 것은 별 상관이 없다. 어려서 읽었던 무협지에 돌을 옮기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남자는 강해지기 위해 매일 돌을 옮겼다. 매일 조금씩 더 큰 돌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남자는 어마어마한 장사가 될 수 있었다. 아마 원하던 대로 사부의 원수를 갚고 행복하게 잘 살았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남자가 매일매일 나이를 먹었음에도 그는 나날이 더 강해졌다는 것이다. 매일 돌을 옮기면 더 강해질 수 있다. 매일 달리기를 하면 더 빨라질 수 있다. 이것은 점진적 과부하라는 스포츠 과학의 핵심 개념이다. 놀랍게도 점진적 과부하에서 나이는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지 못한다. 믿지 못하겠다면 지금이라도 구글에 70세 몸짱을 검색해 보도록 하자.


나는 돌을 뒤집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작은 돌을 뒤집고 있다. 그렇다고 이 돌을 뒤집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이 돌을 뒤집기 위해 나는 아등바등 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점점 더 힘이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어 아래의 만화는 오래전 내가 작성했던 웹툰의 초안이다. 이 웹툰을 그리다 포기한 이후 나는 예금과 적금, 펀드에 관한 글들을 썼다. 그리고 지금 나는 삶의 의미나, 나이 들어감의 두려움 같은 주제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이 과정들은 내게 있어 점진적 과부하다. 나는 내가 이전보다 더 큰 돌을 뒤집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거대한 돌을 뒤집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관심 없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다. 내게는 나의 돌이 있다. 나는 이전보다 큰 돌을 뒤집고 있고, 미래에는 더 큰 돌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이다. 돌을 뒤집는 과정에서 내가 가진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진다는 생각을 하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크게 두렵지는 않다. 돌을 뒤집으며 나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지만 - 이상하게도 이제 목이 마르지는 않다.

내가 그렸던 최초의 웹툰- 당시만 해도 나는 어째서인지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반드시 회계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사람들이 보물을 찾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완벽한 돌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내가 뒤집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그 뒤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이 분명한 그런 완벽한 돌을 하염없이 찾기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완벽한 돌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손에 흙을 묻히지 않을 변명이 되어준다. 그러나 나는 단언한다. 완벽한 돌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수천억 개의 돌이 존재할 테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완벽한 돌이라는 표식이 붙은 돌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지금 뒤집을 수 있는 돌을 뒤집는 것이다. 가급적 가까운 곳의 돌이 좋다. 돌 뒤에 아무것도 없으리란 생각이 들더라도 일단은 돌을 뒤집어야 한다. 그 뒤에는 종이가 한 장 놓여 있을 것이다. 보물도 꽝도 아닌 그 종이의 이름은 실마리다. 이 게임에 완벽한 돌이 존재하지 않듯 꽝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돌을 뒤집든 거기에는 실마리라는 보상이 반드시 주어진다.


나는 그 실마리를 따라다니며 돌을 뒤집고 있다. 내게 있어 그 실마리는 다음에 쓰고 싶은 글감이며, 출판사의 출판 제안이며,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인연이며, 얼토당토않게 떠오르는 사업 아이디어며,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즐거움 같은 것들이었다. 어쩌면 내가 앞으로 뒤집을 모든 돌에 보물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관없다. 실마리를 따라가는 여정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었다.


손톱만 한 돌이든 주먹만 한 돌이든 상관없다. 보잘 것 없는 돌들이 당신 주변에도 무더기로 쌓여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돌이다. 나는 당신이 그중 하나를 뒤집고 그 뒤에서 나온 실마리를 따라가 보기를 바란다. 분명 당신에게도 그 여정은 즐거울 것이다. 어쩌면 그 끝에는 지금의 당신이 상상도 하지 못한 보물과 즐거움이 함께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나는 바라고 있다. 당신과 나에게 그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기를.




미래에 대한 나의 계획은 아래의 4줄로 요약될 수 있다. 이것은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에 대한 계획의 전부이며 재테크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궁극의 답이기도 하다. 단순하지만 나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이것이 좋은 계획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 회사를 열심히 다닌다.
2. 검소하게 산다.
3. 돈을 꾸준히 모으고 투자한다.
4. 끊임없이 돌을 뒤집는다.


회사를 다니며 검소하게 살고 돈을 꾸준하게 모은다면 누구나 결국 은퇴시점에 어느 정도의 자산을 구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점까지 돌을 계속해서 뒤집으며 살아온 사람에게 은퇴는 두렵거나 비참한 무언가가 될 수 없다. 그/그녀에게 은퇴란 즐겁고 설레는 무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지루했던 대학교를 졸업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때 자산의 크기는 개인의 행복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인생의 전반을 살아온 사람에게 직장에서 보낸 시간 또한 결코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좋았던 기억들을 한가득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연히 뒤집은 돌 뒤에서 어마어마한 보물이 나타나는 것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다.


나는 열심히 직장을 다니고, 검소하게 살고, 돈을 모으고, 돌을 뒤집는 삶을 사는 당신을 상상을 한다. 이런 종류의 삶이 쉽게 망가질 수 있을까? 비참해질 수 있을까? 돈이란 것이 그/그녀의 삶과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나는 끊임없이 돌을 뒤집을 거다. 보물이 나온다면 좋겠지만 아니라도 상관없다. 실마리를 따라 계속 돌을 뒤집어 나가는 것 자체가 삶을 만끽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금의 직장을 열심히 다닐 생각이다. 운 좋게도 내가 과거에 돌을 뒤집었던 경험들이 나의 업무능력에 보탬이 되고 있다. 내가 글을 쓰는 주제가 나의 직업과 꽤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도 당신에게 돈을 모으고 투자하는 방법에 대한 글을 끊임없이 전할 예정이다. 그것이 내가 뒤집는 돌의 종류이기 때문이다.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돌을 뒤집는 지금의 삶이 마음에 든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 인근의 호숫가로 소풍을 간 기억이 난다. 호루라기가 울렸다. 나는 호숫가 한 구석에 가방을 내팽개친 채 선생님이 숨겨놓은 보물을 찾기 위해 뛰어다녔다. 그러나 실패했다. 보물을 찾고 기뻐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씁쓸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당시나 지금이나 나는 보물 찾기에 그다지 재능이 없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나는 즐거웠다. 나는 보물찾기 말고도 선생님이 사용하던 은색의 호루라기, 친구들과 동그랗게 앉아서 했던 수건 돌리기, 호수까지 걸어오면서 보았던 오래된 소나무, 엄마가 싸주었던 도시락에 대한 기억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 소풍이란 이 모든 것의 총합인 것이다. 보물 찾기란 소풍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보물 찾기에 실패했다고 소풍이 즐겁지 않을 이유는 없다.


소풍의 목적은 보물 찾기가 아니다. 소풍의 목적은 봄날의 한 순간을 완벽한 경험으로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삶의 목적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보물 찾기가 소풍의 일부인 이상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면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 돌을 뒤집어야 한다. 그 뒤에 보물이 없다면 다시 서둘러 다른 돌을 찾아 달려가면 된다. 그때 당신의 마음속에는 실망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욱 클 것이다. 즐거울 것이다. 그 설렘과 내딛는 달리기가 보물 찾기의 본질이다.


그리고 선생님이 다시 호루라기를 불면 수건 돌리기가 시작된다. 동그랗게 모여 앉아 뒤를 더듬어보면 누군가 놓고 간 수건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들고 다시 있는 힘껏 달리는 거다. 이 또한 재미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호루라기가 울리면 그때는 호숫가에 앉아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먹는 거다. 그 도시락에는 문어 모양 소시지가 한가득 들어 있을 것이다.


그때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완벽한 봄날의 한때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삶 이란 그 자체로 완벽한 경험.

아낌없이 즐기시길.


저의 첫 책 『부자들은 모두 은행에서 출발한다(RHK)』가 출간되었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브런치 독자분들이 없었다면 제 윈도 부팅 비밀번호는 오래 전 "이제는 그만"으로 바뀌었을 테니까요. 독자분들이 있어 글을 쓰는 시간이 저에게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19년 부동산 가격 상승 원인 분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