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아주 러프한 스케치
과거 34년(1986~2018) 간 한국의 아파트 가격은 연평균 4.85%(서울의 아파트는 5.61%)씩 올랐다. 같은 기간 KOSPI 지수는 연평균 6.66%가 올랐다. 언뜻 보기에는 주식시장이 수익률에서 앞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감안해야 할 요소가 있다. 앞서 산출한 아파트의 수익률은 그곳에 거주하거나 임대함으로써 발생하는 부가적인 효용(수익)을 가산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파트는 레버리지 투자를 통해 수익률을 뻥튀기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요소를 감안하면 한국의 아파트의 과거 34년 누적 수익률은 주식의 그것을 압도한다고 볼 수 있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절대 허구의 개념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다. 주식은 언제든 종이조각이 될 수 있다. 모든 투자자산 중에 가장 위험도가 높은 자산군인 것이다. 반면 아파트는 실물자산이다. 그 속성상 주식보다 훨씬 더 안전한 자산군이다. 그런데 더 안전한 자산군의 수익률이 더 위험한 자산군의 수익률보다 높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금융시장의 작동 원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교과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처음에 이 사실을 접했을 때 나는 이것이 교육 환경에 대한 집착, 부동산 불패신화, 그린벨트, 주거지 부족, 북한 같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부동산의 장기 수익률이 주식을 앞서는 것은 다른 선진국에서도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모든 것들의 수익률 1970-2015
2017년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위원회에서는 모든 것들의 수익률 1970-2015(The Rate of Returns on Everything 1870-2015)라는 자료를 발표하였다. 연구진은 과거 150년의 기간 동안의 주택과 주식의 투자수익률을 비교했다. 그리고 16개의 국가 중 9개의 국가에서 주택의 총투자수익률이 주식보다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은 위험과 수익률이 비례한다고 가정하는 일반적인 금융이론과 상충된다. 연구진은 수익과 위험이 반비례하는 이 현상을 주택 수익률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Housing Puzzle Unresolved)라고 이름 붙였다. 여기서는 이 현상을「주택/주식 수익률 역전」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아래의 표에서 분홍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수익률 역전이 발생한 부분이다.
그 많던 GDP 성장률은 누가 다 먹었을까?
과거 150년 주택과 주식의 수익률을 비교한 자료가 낯설지는 않았다. 몇 달 전 나는 한국의 주식과 예금의 수익률을 비교한 자료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금의 과거 30년 누적 수익률이 주식보다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금/주식 수익률 역전]이다. 아래의 표는 1991년부터 2020년 3월 13일까지 약 30년에 걸친 주식과 예금의 누적 수익률 비교 자료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가장 안정한 자산인 예금의 수익률이 주식의 수익률을 압도한다. 이상한 일이다. 과거 30년 한국의 경제는 로켓처럼 솟구쳐 올랐다. 한국만큼 빠르게 성장한 나라는 지구 상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금융시장의 앙꼬나 마찬가지인 한국 주식 시장의 수익률은 부끄러워서 어디 얼굴도 내밀 수도 없는 수준이다. 예금 금리만도 못한 주식 수익률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바로 위의 30년 동안의 수익률 구간을 10년 구간으로 살펴 나누어 보아야 한다. 앞서 30년간의 누적수익률은 1991~2001 / 1992~2002 /... / 2010~2020까지 총 20개의 수익률 구간으로 쪼개어 볼 수 있다. 그 결과가 아래와 같다.
1997년을 기점으로 예금과 주식의 수익률 역전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나는 이것이 한국의 금융시장이 1997년을 기점으로 근본적으로 변화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즉 과거에 부패와 후진성이 만연했던 한국의 금융시장이 IMF를 계기로 어느 정도 근대화가 된 것이다.
1997년 이전 과거 한국 금융시장의 후진성과 부패가 만연해있었다. 그런데 주식이란 제도는 고도의 사회적 신뢰 자산과 인프라를 바탕으로만 작동될 수 있다. 그렇기에 과거 로켓처럼 치솟아 오른 경제 성장의 결실이 주식시장을 통해 배분되지 못했다. 경제성장의 과실은 임금 상승분과 부동산 가격 상승, 예금 금리를 통해 배분되었다. 이런 고전적인 방식들은 발달된 자본 시장이 없이도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7년이 되었다. IMF의 구제금융은 자유로운 자금의 이동과 세계 자본시장과 1:1로 대응할 수 있는 자본시장의 구조 변혁을 강제했다. 이것이 잘되었는지는 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시장이 그때보다 정화되었는가? 혹은 정화되고 있는가 물어본다면 그 대답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외인 자본의 유입과 자유로운 언론, 강화된 규제에 노출된 까탈스러운 금융기관도 여기에 계속해서 기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위와 같다. 1997년 이후 10년의 투자 기간 동안 주식에 투자를 했던 사람들은 어느 해에 투자를 시작했더라도 예금에 투자했던 사람들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주식시장이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는 것은 칭찬이 아니다. 25살 장성한 청년이 6살 꼬마랑 팔씨름 해서 이겼다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다만 그전에 워낙 상태가 안좋아서 그 기간 약간의 개선이 있었다는 말이다. 한국 금융시장은 아직도 갈길이 멀고 멀었다.
다시 주택과 주식의 수익률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나는 앞에서 이야기한 주택 수익률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과거 30년 한국의 예금/주식 수익률 자료에서 찾았다.
위의 표는 투자 시작 시점에 따라 총 3개의 투자 수익률 군을 보여주고 있다. 투자 시기별로 [주택/주식 수익률 역전] 현상이 나타나는 빈도를 유의해서 봐주기를 바란다. 1870년을 시작으로 하는 150년의 기간에서 수익률 역전 현상이 16개 국가 중 9개의 나라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이 기간을 1950년부터 시작하면 수익률 역전이 5건으로 명백하게 줄어든다. 그리고 1980년부터 수익률을 산출하면 수익률 역전은 단 한건도 발생하지 않는다.
수익률 역전은 각 국가별 금융시장의 발전 과정을 통해 설명될 수 있을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막 종식된 150년 전 대다수 국가의 금융시장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금융시장의 기준이나, 규제, 금융이론들 대다수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비효율적이었을 것이고 부패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성장의 과실이 임금 상승분과 부동산 가격 상승, 예금 금리를 통해 배분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멀지 않은 과거 한국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선가 각국의 금융시장들에 점진적 발전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수 많은 기준과 규제의 설립과 적용이 있었다. 활개를 치던 사기범, 횡령범들이 법의 철퇴를 맞았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경제성장의 과실이 금융시장의 법칙대로 분배될 수 있었다. 금융이론이 책에서 튀어나와 현실에서도 작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980년에서 2015년까지의 투자기간에서 사례에 등장한 모든 나라의 주식 수익률이 부동산의 그것을 앞설 수 있었다. 주택 수익률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다시 한국의 부동산을 이야기하도록 하자. 과거 34개년의 KOSPI와 서울 아파트 매매 지수의 상승률을 10년 단위로 분할해 보았다.
앞서 살펴본 자료들과 동일하다. 80년, 90년대 아파트 지수 상승률이 유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주식의 지수 상승률이 유리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물론 아파트 지수와 주식 지수는 산출방식이나 속성이 너무나 다르기에 1:1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임대소득이나 레버리지 같은 요소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추세는 분명하다.
과거 금융시장은 주식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경제발전의 과실을 배분하지 못했다. 부패와 후진성이 결정적인 장애물이었다. 이때 경제발전의 과실은 임금상승률, 예금, 부동산 같은 고전적인 방식으로 배분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금융시장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동시에 사회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수단이 노동, 부동산, 부채에서 자본과 기술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경제성장의 과실을 배분하는 수단으로써의 주식시장의 중요도가 점점 커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번 포스팅에서 살펴본 모든 자료들이 금융시장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아주 러프한 스케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식이라는 제도의 중요성은 지금까지 계속 커져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커질 것이다. 주식이라는 제도가 인류가 발명한 가장 강력하고 정교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인류는 진보할 수 없다. 항성 간 이동,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유전자 공학 등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것은 한 명의 천재, 정부, 예금, 부동산 같은 것들이 아니다. 모든 새로운 상업은 모두 주식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발전하고 분쇄된다. 그리고 만약 앞으로 인간이 계속해서 진보한다면 그 결실 중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주식을 기반으로 배분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금융시장이다. 한국은 지금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최근의 주가지수 급락과 부동산 가격 급상승이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다. 나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 아내의 친구가 산 집 값이 오르는 것이 유독 나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괜찮다. 나는 젊고 검소하고 나름의 분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시간은 나의 편이다. 나는 결국 잘될 것이다.
내가 가장 슬프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미래다. 나는 SF소설을 좋아한다. 나는 인류가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를 그 모든 찬란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그 모든 찬란한 가능성을 젖혀두고 우리 사회가 가진 모든 돈과 시간과 노력이 부동산 같은 것에 쏟아져 들어가는 이 상황이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마치 고대 사회로의 회귀처럼 느껴진다.
최근 몇 년 주식 시장 수익률이 좋지 못했다. 지속적인 기준금리 인하로 말미암아 부동산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그 결과가 앞의 표에서 보는 2011~2020년까지의 부동산 투자수익률이다. 박살나버린 주식투자 수익률을 밟고 부동산 투자 수익률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너무나 밝고 선명해서 모든 사람이 그 방향을 향해 달려간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 강화 양성 순환 고리(Positive Feedback Loop)로 작용한다. 이런 집단 행위 자체가 부동산을 더 빛나게 만든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가능성을 스스로 좀먹게 하고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한 가장 큰 이유는 한국 금융시장의 불완전성이다. 2020년에 근대화된 금융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절대 칭찬의 말이 아니다. 부끄러워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매일 재벌이란 존재를 신문과 뉴스 심지어 드라마를 통해 접하면서도 어색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배임과 횡령, 분식회계를 밥먹듯이 하다가 재수 없게 걸려서 감옥에 들어간 사람들이 경영인이란 이유로 사면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도 분노하지 않는다. 부패한 금융시장에서 자본은 절대 주식시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부패의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예금과 부동산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이다. 부동산 불패신화는 부동산 수익률의 약진만으로 탄생할 수 없다. 덜떨어진 금융시장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주식의 장기 수익률 부진이 동전의 뒷면처럼 따라붙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역사상 최저점까지 끌어내렸다. 기준금리가 0.25%씩 째깍째깍 내려갈 때마다 모든 잉여 자본이 부동산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덜떨어진 금융시장과 역사상 최저 수준의 기준금리의 결합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에 투자하는 자본의 소유자들을 탐욕스럽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한국 경제의 내쉬 균형점이다. 죄수의 딜레마로 유명한 이 균형점이 지랄 같은 것은 이 방향이 모두가 공멸하는 방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균형점으로 달려가게 된다는 것이다. 주변을 보시라. 모두가 괴로워하면서도 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지 아니한가?
이 방향이 잘못된 방향이라는 것을 아는 것과 그 방향으로 달리지 않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이 글이 당신과 나와 이 사회가 질주하는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는 지금 잘못된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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