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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Jul 21. 2019

경고! 예금의 치명적 단점들

헐 우리가게 비싸다는데 손님들이 믿지를 않네...


세상에 무위험 고수익 자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법칙은 은행에도 그대로 작동한다. 예금보험공사에서 원리금을 보장해주는 은행 예금은 무위험 자산이다. 당연히 수익률이 낮다. 은행원으로서 나는 이 점을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지적하고 싶다. 그런데 이 당연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믿어주지를 않는다. 마치 핸드폰을 파는 가게에서 판매 담당자가 자기 가계는 비싸다고 주장하는데 손님들이 믿지 않고 번호표 뽑아서 핸드폰을 사주는 느낌이랄까?

예금의 수익률이 낮은 것은 그것을 운용하는 은행이 예금의 형태로 조달한 자금을 위험자산에 투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어떤 정신 나간 은행이 이런 짓을 하려고 한다고 해도 금융감독원이나 예금보험공사, 심지어는 회계기준까지 이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 예금으로 조달한 자금을 위험자산에 투자할 수 없다는 것은 생크림 케이크로 파르테논 신전을 만들 수 없는 것만큼이나 확고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은행들은 예금으로 조달한 돈 대부분을 매우 안전한 담보대출이나 신용도 우량한 사람(또는 기업)에 대한 신용대출로 운용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담보 또는 우량한 신용등급을 가진 사람들은 높은 이자를 낼 필요가 없다. 이들에게 대출을 하고 싶어 하는 금융기관은 천지에 널려 있고 이들에게 적용되는 금리는 대출시장에서 일종의 최저금리 입찰 형태로 결정된다. 우량 채무자는 모든 금융기관 중 가장 낮은 금리를 제시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것이다. 해당 금융기관은 최저금리 수준에서 결정된 이자에서 자신들의 몫을 뗀 다음 남은 것을 예금이자의 형태로 예금자에게 전달할 것이다. 게다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은행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에서 넘치게 예금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지금처럼 예금의 대체제가 많이 존재하고 대출을 해주기 까다로운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은행이 무리해서 금리를 높이 설정하고 예금을 받을 유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은행의 예금은 당연히 수익률이 형편없다. 낮은 이율 이외에 적금이 좋은 재테크 수단이 아닌 다른 이유들이 존재한다.




한국은행에는 지하에는 빨간색 버튼이 하나 있다. 이 버튼을 눌렀을 때의 상황이 아주 고약하기 때문에 한국은행은 그 누구도 그 버튼을 함부로 누르지 못하도록 지하실 아주 깊숙한 곳에 빨간색 버튼을 숨겨 두었고, 그 누구도 함부로 버튼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철통같이 감시를 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심심한 마음에 한국은행 지하실에 들어가서 그 버튼을 누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제로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나곤 한다. 누구도 그 빨간색 버튼을 눌렀을 때의 결과를 확실히 말하지 못하지만 가장 설득력이 높은 주장은 한국은행 소공동 본점의 뚜껑이 열리면서 오만 원권 1억 톤 정도가 전국에 무작위로 살포된다는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헛소리하지 말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 버튼을 눌렀던 사례들은 인류 역사에 수두룩하게 존재한다.

과거에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 이 경고문에도 불구하고 이 버튼을 눌렀고 그 결과 온 국민이 빵을 하나 사기 위해 수레에 지폐를 싣고 다녀야 했다는 이야기는 분명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화폐 그러니까, 유동성이라는 것이 세상의 목젖 까치 차 오를 때 물가는 폭등한다.

만약에 한국에서도 누군가 빨간색 버튼을 눌렀고, 한 달 사이에 물가가 1000배 올랐다고 생각을 해보자. 이제는 사람들이 현금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수레로 지폐 다발을 옮겨야 하는 일은 없겠지만, 아마도 카드결제 시 우리가 사 먹는 밥값이나, 기름값 뒤에는 0이 한 3개 더 붙여야 할 것이다. 물가는 폭등하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 내지는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빨간색 버튼을 누름으로써 가장 힘들어지는 사람은 많은 재산을 예금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은행에서 유감이라며 예금이자를 단돈 1원이라도 더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가가 2배가 올랐다면 만기가 되어 돈을 찾았을 때 그것의 가치는 정확하게 1/2으로 희석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자산을 부동산이나 주식에 담아두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단기적으로는 부동산이나 주식이 물가상승으로 인해서 타격을 받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회복이 된다. 부동산은 물가가 오른 만큼 언젠간 임대료가 올라가게 될 것이고, 충분한 시간이 지나게 되면 그만큼 결국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식은 의견이 분분하다. 왜냐하면 어떤 회사들은 물가가 오른다고 제품의 가격을 그만큼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회사들은 물가가 오른 만큼 혹은 그것보다 더 많이 제품값을 올릴 수 있고, 재료비와 임금은 올리지 않고 버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그런 회사들의 주가는 오르게 되고 결국 빨간 버튼 효과는 상당 부분 상쇄되어서 사라지게 된다. 주식과 부동산은 장기적으로 물가상승률에 대한 강력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는 물가가 오르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빚쟁이들이다. 이것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돈문제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해 근보증을 서주는 것이다. 6개월 정도 지나면 보증이행 독촉 전화와 문자가 잔소리쟁이 여자 친구보다 더 자주 핸드폰을 울릴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인간의 좌뇌와 우뇌가 나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좌뇌가 일을 하거나, 잠을 자고 있는 순간, 혹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우뇌는 쉬지 않고 우리가 지고 있는 빚에 대한 걱정과 한탄을 늘어놓는다. 일해야 한다고, 잠을 자야 한다고 우뇌한테 아무리 닥치라고 부탁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우뇌는 끊임없이 돈문제로 징징거린다. 소주를 두병 정도 냉면그릇에 따라서 원샷하는 방법 이외에 우뇌를 닥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 한 달 사이에 물가가 2배가 뛴 거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물가가 오른다고 대출원금이 더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대출거래 약정서나, 차입계약서를 보면 된다. 계약서 어디에도 물가가 오르면 원금을 더 물어내야 한다는 조항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물가가 2배가 오른다면, 빚의 실질 가치는 1/2으로 희석이 되는 것이다. 만약 물가가 1000배가 올랐다면 집에 있는 중고차를 20억 원에 팔고 3억 정도 되는 빚은 가뿐하게 다 갚고도 17억짜리 스쿠터를 한대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누군가 대출을 받아서 부동산을 샀다면 부동산의 가치는 오르고 대출의 가치는 희석될 것이다. 정말 멋지지 않겠는가? 갚을 수 없는 부채와 더불어 닥치지 않는 우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누군가가 빨간색 버튼을 눌러주기를 간절히 기도라도 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예금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고 누군가 빨간색 버튼을 누를 리스크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 새끼손가락으로 톡 하고 빨간색 버튼을 건드리는 것이건, 지게차로 전속력으로 들이받는 것이건 그 강도와 상관없이 물가상승은 예금을 하는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무조건적으로 해가 된다.


그리고 그 리스크는 점점 커져가고 있다. 왜냐하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단군이래 최대 규모인 만큼 그 대출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상환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누구도 확실하게 장담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대출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통제가 되지 않을 경우 우리는 결국 빨간색 버튼을 있는 힘껏 누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빨간색 버튼은 경제가 완전 누더기가 되어서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을 때 산뜻하게 다시 시작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국가경제 리셋 버튼이기도 하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버튼을 생각하고 있고, 그 버튼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 주장에는 분명 일정 부분의 진실과 진심이 담겨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예금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본질적으로 무방비하다. 인플레이션이 1% 이건 10% 이건 100% 이건 인플레이션의 정도에 상관없이 예적금을 한 사람들은 거기에서 피해를 본다. 하지만 내 기억에 물가가 2%나 올랐다고 분개하여 한국은행 앞에서 시위를 하는 예적금 가입자는 없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지금, 그래서 자산의 100%를 예적금에 담고 5,000만 원까지 예금자보호가 되기 때문에 무위험자산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적금은 장기적으로 위험자산이다. 다시 한번 경고한다. 장기적으로 예금은 매우 위험하다.



예금에 존재하는 만기에서 파생하는 악마들

단리와 복리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의 인디언들이 푼돈을 받아서 맨해튼을 팔았는데, 그것을 복리로 운용을 했으면 뉴욕 전체와 텍사스 전체를 다 사고도 남았을 테지만, 그것이 만약 단리로 운용이 되었다면 아마도 뉴욕의 10층짜리 빌딩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비현실적이다. 예금은 대표적인 단리 상품이라고 하지만 500년 동안 예금을 단리로 운용을 할 수 있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이다. 예금에는 만기라는 것이 짧든 길든 존재하기 마련이고, 만기에 예금에서 발생한 이자를 다른 곳에 쓰지 않고 원금과 다시 예금을 하는 이상 예금은 분명 복리상품이다. 문제는 예금이 단리냐 복리냐가 아니라, 예금에 만기가 존재함으로써 만기에 우리가 원천징수당하는 세금이다. 2년이건 3년이건 예금의 만기가 돌아오고 재예치를 할 때마다 우리는 발생한 이자의 15.4%를 정부에 세금으로 바쳐야 한다.

하지만 부동산과 주식을 그렇지 않다. 만약 부동산을 1억 원에 샀는데 부동산 가격이 100억 원으로 올랐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부동산을 일부러 거래하지 않는 이상 양도소득세는 발생하지 않는다. 아마 죽을 때까지 팔지 않고 버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양도소득세는 단 1원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부동산에는 만기가 없기 때문이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주식에 양도 소득세를 부여하지 않는다. 설사 미국처럼 양도소득세가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상관없다. 주식에는 만기가 없다. 1만 원에 산 주식이 5천만 원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팔지 않으면 양도소득세는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부동산과 주식에는 배당소득세나 재산세 같은 세금들이 붙지만 이들은 예금에 붙는 세금만큼 자산 가치 증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예금은 만기가 존재한다. 세금을 피할 수 없다.

만기가 존재하는 예금은 최악의 세금 구조를 가진 금융상품이다. 이런저런 세제지원 상품들이 존재하고 이들을 통해서 약간의 세제혜택을 볼 수 있지만 이런 상품들은 모두 납입액에 제한이 있거나, 오랜 기간 예치를 해야 하거나, 늙어서 연금으로 받아야 하는 제약이 존재한다. 구조적인 세금 불이익을 상쇄할 상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가 호락호락 세금을 깎아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예금은 원리금을 보장하는 안전한 금융상품이고 당연히 수익률이 낮다. 수익률이 낮은 데다 인플레이션에 완벽하게 무방비하다. 부채규모가 매일 사상 최고점을 경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두려워해야 한다. 예금은 위험 자신이다. 이와 더불어 예금은 만기의 존재로 말미암아 최악의 세금 구조를 가진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든 요소들은 가뜩이나 낮은 예금의 수익률을 더욱 낮은 수준으로 갉아먹는다.




나는 적금을 좋아한다. 적금과 예금에 내재된 그 경건한 감각을 좋아하고, 이들을 통해 만들어낸 목돈을 좋아한다. 내가 가진 목돈이 출퇴근길에 내게 주는 든든한 안도감을 좋아한다. 하지만 예금과 적금은 하나의 도구이자 절차이지 절대로 재테크에 대한 포괄적인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아무런 목돈도 없이, 잉여현금을 만드는 능력도 없이, 자신의 소비패턴에 대한 파악도 없이 사회초년생이 고위험 투자에 임하는 것은 미친짓이다. 사회 초년생의 손실내구도란 생크림케이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마치 주제도 모르고 고렙존에 위풍당당하게 입성하는 쪼렙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운 좋은 몇명은 성공해서 하이라이트를 받을지 모르지만 그 뒤에 보이지 않는 곳에는 비참하게 쓰러져간 쪼렙들의 눈물이 강이 되어 흐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예금과 적금으로 충분한 목돈을 만들고, 잉여현금 흐름을 만드는 능력을 구축했으며, 검소하고 단단한 소비패턴을 가진 사람이 합리적인 수준에서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이미 충분히 고렙을 찍었는데 무서워서 저렙존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자신이 가진 자원과 가능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일이다. 결국 언제고 들이닥칠 인플레이션이 자산가치를 모두 휩쓸어가 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처음 사회에 진입한 새내기들이라면 예금을 통해 첫 발걸음을 떼고 걸음마를 배우되 어느 순간이 되면 투자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만렙 프로적금러로서 언젠가 만렙 적금러가 되어있을 당신에게 미리 축하의 인사를 건내고 싶다. 수고했다고. 더 어려운 난이도로 향하는 문이 저쪽에 있다고. 그 너머에는 분명 당신이 찾고 있던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미지의 영역으로 향하는 당신의 모험이 조금 더 안락할 수 있도록 나는 당신을 위한 또다른 브런치 북을 제공할 예정이다.


그 책의 이름은 "금융 이론"이다. 당신이 언제 어디에서 무엇에 투자하건 이 구닥다리 이론들이 당신을 더 지혜롭고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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