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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Jul 21. 2019

신입사원들은 어째서 재테크에 실패하는가?

스킬 잘못찍으면 망한다. 재테크도 그러하다.

내가 중학생일때 처음으로 디아블로2가 출시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 받았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어떻게 게임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있었는지. 나는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피씨방에 바치며 열렙했다. 나는 지금도 그때 키웠던 소서리스가 생각난다. 나는 그 아이에게 정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삭제해야만 했다. 초반에 내가 좋아보이는 온갖 스킬과 스탯을 아무 생각없이 찍었기 때문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피씨방 지하에는 초반에 좋아보이는 스킬/스탯을 별 생각없이 찍었다가 한참 나중에야 최애캐를 삭제해야 했던 사람들의 눈물로 이루어진 호수가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대다수의 사회초년생이 내가 했던 것과 비슷한 행태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해 연초가 되면 이제 갓 사원증을 새로 교부받은 신참 직장인들 다수가 은행으로 온다. 그들 대다수는 명민하다. 펀드와 보험 같은 복잡한 상품들에 관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이미 분명하게 알고 있으며 은행에서 금융상담을 받는 중에도 실시간으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검색하고 검증하며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중요한 디테일 사항들을 숙지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금융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이들이 은행으로 오는 경우도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이들은 스마트폰 뱅킹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사용하여 금융상품을 구매한다. 그럼에도 이 스마트한 루키들 중 대다수는 재테크에 성공하지 못한다.


대다수의 루키들이 재테크에 실패하는 이유는 이들이 멍청하거나 사치스럽기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처음 월급을 받고서 이 돈을 가지고 해외여행이나 술값으로 다 날려버려야지 라고 생각하는 루키는 아무도 없다. 모두가 부푼 가슴을 가슴에 안고 나름의 살뜰한 계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돈을 모아서 결혼도 하고 집도 사야지라고. 엄마한테 손 벌리지 말아야지 라고.


때마침 보험회사 다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꼼꼼하게 따져서 괜찮은 상품을 가입한다. 은행에 들러서 월급의 70% 정도를 적금과 펀드에 분산해서 가입을 한다. 은행 직원이 신용카드를 권유하지만 사양한다. 완벽한 시나리오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다. 당장이라도 돈이 젖처럼 흐르는 행복한 노후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과거 디아블로 2를 하면서 망쳐버렸던 캐릭터들이 생각난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안돼.. 아직 그 버튼을 누르면 안된다고...조금만 기다려..."




그런데 생각보다 생활비가 많이 든다. 친구들 밥 몇 번 사주고, 부모님 용돈 드리고, 여자 친구 생기고 하니까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 나름 아껴 쓴다고 생각하는데, 통장에 현금이 없어서 카드가 연체될 지경이다. 어쩔 수 없이 가입한 금융상품에 손을 대게 된다. 보험은 중도해지 수수료가 너무 크다. 펀드는 너무 올랐거나, 너무 떨어졌다. 만만한 적금을 해지한다. 이자가 1500원 정도 붙어 있다. 이거 받으려고 적금 했었나라는 생각이 들며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현금이 없어서 곤란했던 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통장은 현금으로 촉촉하게 적셔진다. 인생이 갑자기 아름다워진다. 아껴 쓰지만 잔액은 빛의 속도로 말라 붙어 간다. 많은 사람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농부를 비웃지만, 재테크를 시작하는 이들 중 다수는 거위가 단 하나의 황금알을 낳는 것을 보지도 못한 상태로 일단 배부터 가른다.


그리고 이 짓을 결혼을 하기 직전까지 몇 번이나 반복한다. 예금이나 적금은 몇 번이나 가입해보지만 만기까지 가서 만기 통보 안내를 받아본 적은 없다. 남아있는 것은 손실이 발생해서 중도에 납입을 중지한 펀드 몇 개랑 정확히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보험밖에 없다. 결혼 즈음에야 허겁지겁 몇 푼 모아 보지만 택도 없다. 여자 친구 몰래 신용대출을 좀 받아서 결혼 비용에 보탠다. 그래서 여자 친구가 결혼한 다음 돈 관리를 같이하자는 말을 할 때마다 극구 반대한다. 부모님이 주신 돈에 대출을 껴서 전세를 얻는다. 전세가 아니라 자가로 신혼을 시작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패배감 비슷한 것을 느낀다. 옆에는 부동산으로 돈 벌었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열심히 모아서 반드시 내 집을 마련하리라고 생각을 한다. 여기까지 도달하는데 입사 후 5년 정도가 소요된다. 처음에 어떤 각오와 마음으로 시작했건 신입사원의 재테크는 결국 금융상품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들과 결국은 부동산이 정답이라는 깨달음으로 종료한다.


루키들이 재테크에 실패하는 원인은 두 가지다. 우선 최초에 목표 저축률을 너무 높게 설정하기 때문이다. 저축률 70%는 신입사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막 입사한 바로 그 시점이 소비가 가장 극적으로 즐거우며 돈을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되는 시점이다. 무리하지 말고, 자책하지 말고, 즐기시라. 처음에는 통장을 분리하고 목표 저축률을 30~40% 정도 설정한 다음 자신에게 편안한 수준으로 점차적으로 올려가면 된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것처럼 위아래 조정을 거쳐  2~3년 정도의 시간을 걸쳐 자신에게 적절한 수준을 찾아가면 된다. 조금씩 올리면 된다. 운동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다. 초반에 서서히 시작하지 않고 전력으로 질주하면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혼자서만 퍼져버린다. 이제 막 시작한 것이니까 급할 것은 전혀 없다.


루키들이 재테크에 실패하는 두 번째 원인은 시작부터 너무 고위험/장기 상품에 가입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금융산업 전반에 걸쳐 통용되는 레토릭이 작용한다. 젊은 사람은 젊기 때문에 고위험 고수익 상품을 가입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에 현혹된 루키들은 펀드나 변액보험, ELS에 왕창 가입하지만 적금이나 예금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고위험에 투자해라 청춘이니까'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일견 일리가 있다. 젊은 사람은 고위험 자산에 투자하고 손실이 발생했을 때 그 손실을 만회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젊다는 것은 그 자체로 손실에 대한 내성을 의미하므로 고위험 자산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100에서 나이를 뺀 것만큼을 주식에 투자하라는 조언이 여기서 유래한다. 이 설득력 없는 레토릭이 뉴스, 금융기관 및 수없이 많은 전문가들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보편타당한 진실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예금/적금이 수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펀드, 신탁, 보험상품들은 압도적으로 높은 수수료를 창출해낸다. 게다가 이런 상품들을 판매하기 가장 쉬운 타겟군은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루키들이다. 100에서 나이를 뺀 숫자만큼 위험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은 반쪽짜리 진실이다.


위험 내구도(Risk Tolerance)라는 개념이 있다. 위험 내구도가 낮은 사람은 고위험 자산에 투자하면 안된다. 그러면 투자는 막장으로 치닫는다. 위험 내구도를 결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 나이, 수입, 금융지식, 부채, 향후 예상 현금흐름 같은 것들이다. 나이는 위험 내구도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단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하다. 수많은 요소들을 무시한 채 나이만으로 위험 내구도를 결정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아마도 학자금 대출이 있을 것이고, 몇 년 뒤 결혼과 주택 구입을 위해 막대한 지출을 해야 할 것이다. 결혼을 해서도 아이를 키우고 교육시키기 위해 상당한 액수의 지출이 예상된다. 이와 더불어 부모를 돌보고, 자신의 누후를 준비하는 것까지 준비해야 한다. 지금 당장 명시적인 부채는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은행에 방문하는 루키 각각은 어깨 위에 수억 원에 달하는 부채가 놓여 있는 것이다. 위험 내구도는 0을 향해 수렴한다. 위험자산에 투자해 성공할 이유가 없다. 젊으니까 100에서 나이를 뺀 비중만큼 주식에 투자하라는 주장은 치명적일 수도 있다.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한 루키는 적금에 가입해야 한다. 아무리 누가 펀드, 주식, 보험에 대해 어떤 조언을 하든 아직은 아니다. 초반에 무분별하게 스택과 스킬을 찍어버리지 말고 적금으로 경험치를 쌓으면서 조금씩 레벨을 올리면서 기다려야 한다. 적금은 위험내구도를 높여 주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다. 적금을 하면 돈이 생기고, 돈을 만드는 습관을 만들 수 있고, 자신의 현금흐름 추세를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이 시작이다. 이것을 위해 몇 년이 소요되겠지만 이런 준비 없이 네이버 블로그와 신문에서 본 몇 개의 글만을 가지고 투자에 임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나는 이런 사례를 너무 많이 보았다.


적금이 너무 수익률이 낮다고? 지루할 것 같다고? 기다리기 싫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나는 프로적금러로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만약 당신이 리니지를 좋아했다면 당신도 적금을 좋아하게 될거라고. 적금이 세상에서 제일 쉬울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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