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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Jul 08. 2019

나는 스타벅스를 좋아할 당신이 검소하게 살기를 바란다.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삶에 영감을 주는것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스타벅스를 좋아한다. 오늘 같이 날이 뜨거운 토요일에는 낮잠을 늘어지게 잔 다음 스타벅스에 가면 참 좋을 것 같다. 그곳에 앉아서 그동안 미뤄두었던 책을 읽는 거다. 영화를 봐도 좋고, 글을 써도 좋다. 나는 스타벅스에서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분주하게 작업하는 사람들, 공책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사람들,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재잘대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다. 그들과 함께 그 서늘한 공간에 함께 는 것이 좋다. 아마도 우리는 비슷한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비슷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라테요인이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데이비드 바크'라는 작가가 있다. 한국에는 마인드빌딩 출판사에서 '자동 부자습관'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있다. 이 작가는 라테요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작은 돈을 절약하고 저축한 다음 오랫동안 복리로 운용함으로써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이론을 설파했다. 아마도 이 남자는 스타벅스 결재할 때마다 대부분의 사람이 아릿하게 느끼게 되는 죄책감의 창시자인 듯하다.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치유가 되기를 바라며 이번 포스팅에서 나는 '데이비드 바크'의 이론에 반론을 제기할 생각이다.




나는 스타벅스에서 책을 읽는 여자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의 여자 주인공 이름을 '별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이 이야기에서 별이는 매일 회사가 끝나면 스타벅스에 가서 5천 원을 내고 카페라테를 사서 마신다. 라테를 마시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어느 날 별이가 데이비드 바커의 책을 읽고 라테를 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매일 스타벅스 라테를 마시던 별이가 라테를 끊고 그 돈으로 매일 5천 원씩 50년을 저축한다고 하면 그녀는 50년 후에 얼마나 모을 수 있을까? 연이율 10%를 가정하면 50년 후 그녀는 21억 원을 소유하게 된다. 만약 그녀가 결혼해서 부부가 각자 하루에 한잔씩의 라테를 절약해 하루 1만 원을 저축한다면 50년 후 42억 원에 달하는 돈을 소유하게 된다는 뜻이다. 만약 이 부부가 라테에서 그치지 않고 한 달에 300만 원씩 50년을 꾸준히 모으는 데 성공한다면 이들은 50년 뒤 419억 원을 모으게 된다. 이것이 별이가 라테를 끊어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 계산에서는 한 가지 유념할 게 있다. 어떤 사람이 매년 연평균 10%의 수익을 낸다는 것이 사실상 극도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매년 10%는커녕 1년 동안 10%의 수익을 내는 것조차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그런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스타벅스를 마시지 않기 위해 인내하기보다는 금융권에서 일자리를 찾거나 헤지펀드를 만드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금융권에서 단 한 해 동안 최소 수십억 원에서 수조 원의 수입을 얻을 수 있을 텐데 굳이 맛과 스타일이 좋은 스타벅스 커피를 참아가며 수십 년을 부자가 되기 위해 기다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투자기간에 대해서도 조정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사회초년생 취직이 힘든 상황에서 첫 직장을 얻는 나이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반면 대부분의 기업들은 50살이 넘은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 것을 일종의 업무 태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군대 다녀오고 취업 준비하면서 1~2년 휴학기간을 거친 대부분의 취업생이 첫 월급을 받는 것은 30세 전후한 시점이며, 이들이 근무할 수 있는 기간은 운이 좋아도 20년 전후가 될 것이 분명하다. 50년은커녕 20년 동안의 투자 불입을 가정하는 것조차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플레이션의 존재다. 카페라테 사례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복리 효과 때문이다. 복리는 경이로운 현상이지만 복리효과는 단순히 투자수익률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 또한 복리효과를 얻어 별이가 최종적으로 거머쥐어야 할 자산의 가치를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잠식한다.

이런 효과를 모두 보정하였을 때 매일 오천 원씩 불입하여 모을 수 있는 돈은 결코 대단한 금액이라고 할 수 없다. 만약 별이가 앞으로 20년간 매일 스타벅스를 참으며 6%의 복리로 저축을 한다고 해도 20년 뒤 그녀가 모을 수 있는 가질 수 있는 돈은 7천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에 1.5%의 물가상승률을 복리로 적용했을 때 20년 뒤 그녀가 가진 돈의 가치는 5.3천만 원에 불과하다. 아마도 스타벅스 라테를 끊은 별이는 20년 뒤 평범한 국산차 대신 5.3천만 원을 더 보태어서 벤츠를 한대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20년 동안 매일 스타벅스 라테를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왔을 별이가 그 기간 동안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와 스타일, 행복의 총량은 벤츠 같은 쇳덩어리와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확신한다. 그러므로 나는 별이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배움과 영감을 주는 것에 돈을 아끼지 말라고. 스타벅스가 그것을 준다면 라테를 마시면서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지 말라고 말이다. 더 나이가 들고 책임져야 할 것과 의무가 늘어나면 스타벅스는 어느 순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된다. 휴대폰에 아무리 많은 무료 아메리카노 쿠폰이 쌓여 있어도 말이다.



물론 데이비드가 주장하는 라테 요인은 하나의 상징이다. 10%의 수익률을 곧이 믿을 사람이 없는 만큼 하루에 오천 원을 저축하면서 부자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대체로 벌이가 중윗값 수준인 가정은 매월 200~300만 원 정도의 저축을 한다. 만약 별이가 결혼을 하고 때때로 스타벅스를 마시며 매월 300만 원을 20년간 모은다고 할 때 20년 뒤 그녀가 가질 돈은 11억 원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8.4억 원가량 된다(투자수익률 4%, 물가상승률 1.2% 가정)


8.4억 원이 큰돈이라고 생각되겠지만 별이의 입장을 좀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 20년 뒤의 별이는 아마 50살 전후가 될 것이다. 그녀에게는 30~50년 정도의 여생이 남아있을 것이고 살아야 할 집도 필요할 것이다. 그녀가 3억 원짜리 집을 사서 거주하며 남은 돈을 매년 균등하게 헐어서 사용한다고 할 때 별이는 매년 17백만 원으로 남은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매년 17백만 원의 지출을 하는 삶을 표현하는데 중산층이라는 단어보다 적합한 단어를 찾아낼 수 없었다. 중산층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이 50대에 은퇴를 함과 동시에 공인중개사 시험을 보거나 아파트 관리인이 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게다가 이렇게 요약한 별이의 삶은 단조롭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별이의 중산층 진입은 모든 요인이 완벽하게 작용할 때 가능한 이상적인 상황이다. 우선 대다수의 직장인에게 200~300만 원이라는 월 저축액은 결코 쉬운 액수가 아니다. 매월 100만 원도 저축하지 못하는 가정이 부지기수다. 설사 매월 200~300만 원을 저축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저축액은 급격하게 줄어든다. 아이가 유난히 교육비가 많이 드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을 수도 있고, 유학을 원할 수 있으며, 가족 중의 누군가 돈이 많이 드는 병에 걸릴 수 있고,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 직장에서 쫓겨날 수 도 있고, 이혼할 수도 있고, 기껏 모아둔 돈을 잘못 투자해서 모두 잃을 수도 있다. 한국은행이 물가상승률을 잘 통제하기는커녕 제대로 측정이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경제가 완전히 파탄 나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요인들은 각각이 모두 별이의 중산층 진입 계획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이 모든 요인은 일개 개인이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별이는 라테 값을 아껴서 부자가 될 수 없다. 설사 별이가 앞으로 20년간 매월 330만 원을 저축한다고 하더라도 부자가 될 수 없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아래의 표는 수익률과 투자기간에 따라 미래자산 가치를 추정할 수 있는 표다. 만약 연간 저축액이 4천만원인 사람이라면 아래 표의 미래가치에 2를 곱하면 된다. 앞으로 20년 동안 매년 2천만원을 저축하고 그 기간동안 수익률 4%를 달성한다면 미래자산가치는 6억원 정도가 된다. 수익률이나 투자기간 가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3~6억원 정도의 미래자산가치 범위에 속할 것이다. 그리고 6억원을 가진 사람은 어떤 기준으로도 부자로 분류되기는 어렵다.

이 표가 이야기 해주는 것은 재테크를 통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10억원 이상의 자산을 구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운이 좋은 소수의 몇몇은 운좋게도 몇번의 수익률 잭팟을 통해 10억, 20억 어쩌면 30억까지도 자산을 늘릴 수 있겠지만 그런 요행에 기대어 인생의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아마도 우리 중 대다수는 50살 즈음한 어느시점에 6억원 정도의 돈을 가지고 회사 밖으로 쫓겨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쿨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현실을 직시하여야 다가올 미래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검소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일년에 3천만원을 소비하는 사람에게는 6억원을 가지고 은퇴하는 것은 악몽이겠지만, 일년에 1천7백만원을 소비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그다지 나쁜 소식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미생에 나오는 아주 유명한 대사가 있다. 회사는 전쟁터고 밖은 지옥이라는 대사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온갖 가오를 다 잡으면서 이야기 하고 야근으로 눈이 빨간 오상식 과장은 숙연한 표정으로 이 말을 듣고 있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 중


이 장면을 보면서 의아했던 것은 나 뿐일까? 그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토록 초라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근무하면서 받았을 연봉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퇴근 후와 주말에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던 것일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한 다음부터는 나는 더 이상 오상식 과장이 멋있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회사를 증오하면서도 돈 때문에 계속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을 몇명 알고 있다. 대체로 이들은 연봉 수준이낮거나, 능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음에도 좀체 돈을 모으지 못한다. 이들이 부양하는 노부모가 있거나, 병에 걸린 부양가족이 있거나, 거대한 무언가를 시도했다 실패했던 것도 아니다. 그냥 무난하게 회사생활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돈을 모으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의 여가가 너무 화려했고, 자녀 양육이 질펀할 정도로 방만했기 때문이다.


그 중 한명의 집에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의 방에 장난감이 말 그대로 꽉 차있었다. 장난감 전용 상자와 서랍장이 있었음에도 장난감 때문에 집 전체에 발을 디딜 곳이 거의 없었다. 그 집의 꼬맹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터닝메카드를 구경시켜주었는데 - 구급함 같은 상자에서 터닝메카드가 끊임없이 나왔다. 처음에 나는 그게 하나에 500원 정도 하는 뽑기 장난감인줄 알았다. 21세기에는 뽑기도 이 정도구나하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 장난감 하나에 만원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놀랐었다. 얼추 추산하기에도 그 꼬맹이는 터닝메카드를 100만원어치도 넘게 가지고 있었다. 꼬맹이의 아빠는 그게 재테크가 될 수 있다고 쓰게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그게 개소리인걸 그도 알고 나도 알았다. 심지어 그집 꼬맹이도 아는것 같았다.


출처: 쿠팡 - 터닝메카드 검색

그 가족은 일년에도 서너번씩 해외여행을 다녔고, 두대의 자동차를 몰았고, 맛집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들의 취미는 인라인스케이트에서 낚시, 글램핑을 모두 망라하고 있었다. 이들은 그래서 돈을 모으지 못했다. 문제는 돈에서 끝나지 않는다. 문제는 시간이다.


돈을 소비하는 데는 시간이 소비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노동을 돈으로 바꾼 다음 다시 시간을 들여 그 돈을 터닝메카드로 바꾸는 짓을 계속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회사 밖에서 보내는 생산적인 시간은 거의 0에 수렴한다. 일년에 단 한권의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으니까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메마르게 된다. 그러므로 미래는 막연하고 두려운 무언가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미래는 괴물이 되어버린지 오래이고 그들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모아 놓은 돈이 없고 앞으로의 삶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그들에게 갭 투자, 비트코인, 제약회사 신약개발, 신흥국 주식, P2P 대출로 돈을 왕창 벌어들인 사람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막연한 두려움은 혼란으로 조급함으로 이어진다. 바로 이 순간 이들은 자신들의 시간과 돈을 모두 비트코인 등등 에 쏟아붓는다. 비트코인 등등 이외의 것에는 아무런 관심을 갖지 못한다.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 업무에 집중하지도 못한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까지 빼앗기리라. 마태복음 25장 29절

어차피 재테크를 통해서 부자가 될 수 없음에도 검소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찮은 것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비트코인 등등이나 터닝메카드 같은 것에 1분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다. 퇴근하고 스타벅스에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서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베팅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몰입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에 몰입하기 위해서 우리는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몰입할 때 자유를 얻는 까닭은, 더는 사소하고 하찮은 일에 흔들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몰입하면 자유로운 까닭은, 중요한 일에 집중해 정신을 가다듬는 게 건강과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몰입하면 결정을 내리기 쉬워지고 좋은 것을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칠 수 있다. 지금 내게 있는 게 충분히 좋다는 걸 안다면, 무엇 때문에 마냥 더 좋은 것을 쫓아다니느라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몰입하면 아주 중요한 몇 가지 목표에 집중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대단한 성공을 이뤄낼 수 있다.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중에서


앞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월요일이 우울하지 않다.’라는 포스팅에서 검소하게 살면 직장생활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검소하게 살면 직장과 생존은 별개의 문제가 되고 그로 인해 직장은 마음의 모든 것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러면 더 이상 월요일이 우울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검소한 삶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직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한때 정말 매력적이었던 사람들을 알고 있다. 나는 그들과 폴 오스터와 박민규, 스쿼트의 벗윙크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책에 대해 이야기했고,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 밖의 아름다운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내게 해 준 이야기의 주제는 갭 투자와 임대사업자 등록에 따른 세제 혜택, 비트코인의 종류와 향후 전망 같은 것들이었다. 그들은 똥배가 출렁거렸고, 대체로 수익률도 좋지 않았으며,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지루했다.


어느 순간 나는 그들과의 대화가 내게 아무런 영감과 배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 영원히 그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때 매력적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못한 그들과 만나지 않는다. 그리고 비슷한 이유로 경제신문도 읽지 않는다. 차라리 그 시간에 류시화의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는 것이 훨씬 낫다.


이토록 과감하게 쌩까는 것이 가능한 것은 내가 검소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재테크가 실패하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앞으로 20년간 실질 투자 수익률이 0%고 그때 5억 원만 가지고 지금의 직장에서 쫓겨난다고 할지라도 상관없다. 정말 상관없다. 그때도 나는 꽤 괜찮은 엉덩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일 년에 1,700만 원이면 굶어 죽지 않고 때때로 스타벅스 라테까지 사 먹으면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블루투스 키보드만 있으면 얼마든지 혼자서 오랫동안 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심 없는 주제에 완벽하게 관심을 끌 수 있다.


하지만 검소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주제에 대한 대화가 아무리 지루하다고 할지라도 거부하지 못한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하면 갭 투자가 어떻고, 비트코인이 어떻고, 제약회사 신약개발이 어떻고, 신흥국 주식이 어떠하며, P2P 대출이 어떠한지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끌 수 없다. 이런 이야기는 놀랍게도 불안감을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꾸어버리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로 옆에서 그러한 투자를 통해서 돈을 번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릴 것이다. 아무리 쿨한 척 해도 의지와 상관없이 귀가 쫑긋거린다. 인터넷에서 이런 주제에 대한 내용을 검색해서 본다. 세상의 모든 탐욕스러운 이야기들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가 당신에게 달려든다. 지금 당장 이 기회를 지금 잡지 못하면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고 당신을 사로잡고 빠져나갈 수 없게 한다.


한때 꽤 괜찮았던 사람들이 모든 매력을 잃는 순간이 바로 이때다. 이제 이들은 영감과 배움이라는 주제에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이들의 삶의 목적은 ‘수익률 증대를 통한 가난 탈출’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어쩌면 그들 중의 상당수는 그들의 바람대로 ‘경제적 자유’라는 것을 이루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포기한 것은 그 이상의 것이다.


그들은 우선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갖게 마련인 매력을 포기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즐거움을 포기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탐색하기를 포기했고 자신에 대한 베팅을 포기했다. 그리고 결국 자신 이외의 것에 베팅했다. 나는 이것이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스타벅스 라테를 좋아할 당신이 검소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렇지 못할 경우 세상의 모든 탐욕스러운 이야기들이 당신의 마음을 들끓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검소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내가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 하고자 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말짱 개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당신이 검소할 때에만 당신은 모든 탐욕스러운 이야기들을 거부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 영감과 배움을 주지 않는 모든 것을 거부하기를 바란다. 검소하기를 바란다.


집 앞 도서관에서 만난 이외수의 글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고, 자신이 가진 가능성에 대한 베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일 때 바라건대 잭팟이 터질 것이다.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러하다. 그래서 삶이 지루하지 않다.



저의 첫 책 『부자들은 모두 은행에서 출발한다(RHK)』가 출간되었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브런치 독자분들이 없었다면 제 윈도 부팅 비밀번호는 오래 전 "이제는 그만"으로 바뀌었을 테니까요. 독자분들이 있어 글을 쓰는 시간이 저에게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검소한 삶에 관한 이야기들

나는 오늘 메로나가 땡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월요일이 우울하지 않다.

나는 스타벅스를 좋아할 당신이 검소하게 살기를 바란다.

남자의 매력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가고 싶지 않은 술자리를 웃으면서 거절하는 방법


은행과 예금에 관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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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에 'B형 은행원'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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