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개인회생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
그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름답지 않았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는 오랫동안 뿌리 염색을 하지 않아서 머리카락의 밑동만 하얗게 세어 있었다. 매월 한 번씩 그녀가 내게 돈을 가지고 올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종이컵에 맥심 커피를 타서 주곤 했다. 내가 그녀의 돈을 받아 세고 연체이자를 수납한 다음 영수증을 발행하는 동안 그녀는 그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언제나 관절이 부어 있었고 손톱 밑이 새까맸다. 그 손으로 오천 원짜리랑 만 원짜리를 한 장 한 장 세어서 내게 건넨다. 그녀가 주는 돈은 언제나 약간 끈적거렸다. 계수기에 그런 돈을 넣으면 기계의 위조지폐 감별 센서가 망가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뻑뻑하게 넘어가는 돈을 힘겹게 손으로 한 장 한 장 세곤 했다. 뭔가 좋은 일은 없는지 묻는 말에 그녀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없다고. 없을 것이라고. 아마도 영원히. 그녀는 항상 돌아갈 때면 다 마신 종이컵을 구겨서 자신의 가방에 쑤셔 넣곤 했다. 내 발 밑에 휴지통이 있다고 - 나한테 달라고 해도 그녀는 언제나 그 끈적거리는 종이컵을 자신의 가방에 집어넣었다. 나는 그 컵에서 흘러나온 커피가 가방 속에 들어있을 그녀의 보잘것없을 물건들을 엉망으로 망가뜨리는 모습이 -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망가뜨리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빚에 산채로 뜯어 먹히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에게 내 또래의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를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그녀의 아들은 취업이 잘 되지 않았다. 그녀는 은행에 취직한 나와 나 같은 아들을 둔 어머니가 부럽다고 자주 이야기했었다. 나는 아주 한참 후에야 그녀가 그 지경에서도 파산을 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들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파산으로 말미암아 아들이 취업을 하거나 결혼을 하는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버텼다. 우매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파산을 하면 분노한 채권자들이 모든 기업의 인사담당자들과 아들의 지인들에게 그 개자식의 어미가 파산을 했다고 등기 우편이라도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파산이라는 절차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관료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누군가의 죽음과 탄생과 판사의 판결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에 대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지를 못한다. 지금도 몇만 명은 될법한 누군가의 어머니들이 아들의 장래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그녀 자신과 자식들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그녀가 파산을 했어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만약 진작에 파산을 했더라면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지만 아마도 가족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빚과 이자에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지기 전의 그녀라면 아마 강건하게 다시 삶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미 오래전 그녀는 이자를 내기 위해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지인과 가족들에게 돈을 빌려 충당해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보면 알 것이다. 인간관계를 파탄 내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몸을 위탁하고 다시 시작하기엔 어쩌면 너무 늦어버린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그녀를 만난다면 그녀에게 파산을 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니다. 나는 그때도 연체된 이자를 받기 위해 채권추심에 관한 법률에서 허용하는 모든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것이 내 직업이기 때문이다. 나는 직업적 소명과 양심이 미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력을 키워서 애당초 부실이 발생할 대출을 만들지 않으면 된다. 부실한 대출의 취급은 은행의 손실이며 동시에 누군가의 파멸을 의미한다. 세상에 금융기관만 유리한 '약탈적 대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적에 급급한 멍청한 은행원들이 만들어내는 '파괴적 대출'만이 존재할뿐이다. 이런 대출들은 종국에는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대출을 잘못 받았을 때의 문제는 이자를 조금 더 낸다던지 하는 문제이지 그것이 삶을 파괴시킬 정도의 가혹한 결과를 유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출로 인해 삶이 파탄 나는 대다수의 경우는 파산 내지는 개인회생에 대한 개개인의 지식의 부족하고 적절한 호기에 파산을 하지 못하고 대처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산이나 개인회생이라는 아름답고도 장엄한 이 인류의 지적 유산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것이 부끄럽고 양심을 가진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고 치부하는 문화 때문이다. 물론이다. 돈을 빌렸다면 갚아야 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상환의 노력을 하였지만 불가능했다면, 그리고 그 상태로 채무자가 아무 희망 없이 존치되는 것이 사실상의 살인과 동일하다면 파산은 절대 도덕적 해이 같은 단어와 연결 지어져서는 안 되다. 그것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불행일 뿐이다. 불행과 악행은 다르다. 만약 파산이 정말 비도덕적인 행위라면 어째서 전 지구 대부분의 국가가 비슷한 형태의 파산법을 발전시켜 왔겠는가? 회생을 포한한 파산절차는 인류가 그 자신의 필요에 의해 자신이 고안하고 발전시켜온 제도이다. 그것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파산의 탄생은 철저한 경제적 논리에 근거한다. 만약 파산이 오직 인도적인 처사 때문에 고안된 것이었다면 절대 지금처럼 지구 전체에 광범위하게 퍼질 수 없었을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왕국에서는 돈을 갚지 못하는 자와 그 가족들을 노예로 만들어 팔아버리고, 노예가 성벽을 쌓다 지쳐 쓰러지면 돌로 때려 죽이곤 했다. 중세 베니스에 살던 샤일록이라는 남자는 돈을 갚지 못한 채무자의 가슴 가까운 부위를 칼로 도려내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현재 이런 식으로 채무자를 다루는 국가는 많지 않다. 여기에는 인간의 생명이 돈보다 중요하다는 믿음과 더불어 이런 식으로 돈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를 파멸시키는 것이 대개는 국가 경제 활성화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의 발전이 이토록 더뎠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자신 앞에 어떤 가능성이 있음에도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는 비용이 너무나 막대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이자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돈을 갚지 못한 사람을 그의 아내, 자녀 모두와 함께 노예로 팔아치우는 시대에 과연 누가 돈을 빌려 판을 크게 키우고 싶다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돈을 빌리고 그 돈을 갚지 못했을 경우 초래되는 결과가 파멸 그 자체일 때 지구인들은 돈을 빌려서 더 큰 사업을 벌이기보다는 현재에 만족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국가의 성장 지체로 연결이 된다. 이것이 파산이 태어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게다가 대체로 돈을 빌리려는 수요가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더 명민하고 성실하며 의욕적인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것이 농경시대일 때에도 농사에 자신이 있고 성실한 누군가는 땅을 더 경작하기 위해 돈을 빌렸을 것이다. 그는 빌린 돈으로 소를 사고, 땅을 사서 다른 누구보다 열심히 땅을 일구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빚이 있고 이자를 내야 하는 사람은 더 열심히 더 효율적으로 일하게 마련이다. 그는 아마도 마을의 누구보다도 땅과 작물과 날씨를 더 잘 이해하는 훌륭한 농사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홍수가 나거나 전염병이 돌아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잃고 돈을 상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이 불행한 농부를 돈을 갚지 못했다고 다리가 부러질때까지 곤장을 때린 다음 감옥에서 굶겨 죽게 하는 것이 과연 경제적인 해법일까? 아니다. 그 사회는 좋은 농부 한 사람을 잃게 될 뿐이다. 모두에게 가장 좋은 해법은 그가 다시 농사일을 할 수 있도록 한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 될 것이다. 그는 아마도 금방 재기할 것이다. 그에게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농경시대에도 통했을 합리적인 가정들은 현재의 지식기반 시대에는 더욱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가장 좋은 기업을 만들어낸 사람들 중 다수가 한두 번의 파산 경험이 있었다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러므로 파산은 유한책임과 경험의 보전이라는 기능에서 주식만큼이나 중요하게 작용한다.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통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방식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정확한 신용평가 시스템을 구축하여 엄밀하게 통제된 대출을 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채무자가 파산할 가능성과 파산을 했을 경우 발생할 손실은 대출이 실행되는 시점에 산출되어 대출 가부 여부를 결정하는데 활용된다. 즉 당신이 받는 대출 이자에는 당신이 파산할 가능성과 그것이 초래할 손실액이 애당초 계산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를 기초로 수익률을 붙이고 다른 금융기관과의 금리 경쟁, 마케팅 전략 등이 혼합되어 당신이 받는 대출의 금리는 결정된다. 이 계산이 정확하다면 금융기관은 돈을 벌게 된다. 아니 원래 대출을 하는 금융기관이라면 이렇게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대출 여부를 결정하고 금리를 산출하는 데 있어서 별다른 능력이 없는 금융기관들은 도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막상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 통상 '피 묻은 빵'이라고 불리는 두 번째 수익 창출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채권추심이라는 행위를 특출 나게 잘하는 어떤 금융기관과 사람들은 이런 여신들을 정상대출처럼- 혹은 그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만들어내는 대출로 바꿔버리는 능력이 있다.
통상 잭팟이란 주식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출에도 잭팟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주구장창 연체를 하다가 결국 담보물건을 경매에 붙인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담보물건의 입지가 좋아서 생각보다 매각 가격이 잘 나왔을 때 그 금융기관은 잭팍을 맞는다. 통상 대출이자의 몇 배는 될 연체이자까지 한방에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기업에서만 터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절대 회수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어떤 대출이 연체상태에서 마지막에 부모가 마지막 남은 퇴직금 같은 것으로 정리를 해주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부실한 대출은 연체이자를 수익으로 인식한 그 순간 짜릿한 잭팟으로 전환된다. 혹은 룸살롱이나 안마방으로 들어가 일하면서 연체이자가 복리로 불어난 대출을 꾸역꾸역 갚아나가는 여자, 혹은 각막과 장기를 판매해서 대출을 갚아나가는 남자를 생각해보자. 잭팟이다. 이런 잭팟을 터뜨리는 핵심적인 기술이 바로 채권추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체를 하는 사람의 피를 말리게 해서 어떻게든 돈을 뽑아내는 기술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수익을 '피 묻은 빵'이라고 부른다.
경쟁과 합리성, 마케팅 능력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대출 이익이 아니라 이렇게 '피 묻은 빵'으로 수익을 만드는데 더 관심을 가지는 금융기관은 도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업체들이 도태는커녕 점점 더 많은 돈을 벌어 들이고 성장하고 있다. 이들이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은 채무자들이 파산과 채권추심에 대항하는 자신의 권리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는 여자에게만 대출을 해준다는 대부업자 광고를 보고 격분한 적이 있었다. 마치 좋은 친구인양 마음씨 좋은 언니인양 포장을 했지만 그들이 이런 광고를 만들어내 이유는 여자의 신체는 그 자체로 가치가 높은 담보가 되며 여자는 찾아가서 겁박하는 불법적인 채권추심활동에 훨씬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런 광고가 넘쳐나고 이런 기업들이 점점 증가하는 것은 누군가 자신의 권리를 적절히 행사하려 노력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피 묻은 빵이 점점 더 수익성 좋은 산업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피 묻은 빵을 통해 돈을 벌었다면 그것은 그에게 더 큰 자본금이 된다. 그러니까 적당한 시점에 파산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런 산업에 자본금을 대어주는 것이고 제2의 피해자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나는 대출을 받기 전 반드시 알아야 할 파산/회생 이야기라는 포스팅에서 적절한 시점에 파산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법무사 사무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이 글의 남은 부분에서는 법무사 외에도 당신을 도와줄 수 있는 다른 기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금융복지상담센터다.
듣도 보도 못했겠지만 한국에는 금융복지상담센터라는 것이 있다. 내가 이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우연히 듣게 된 '돈이 궁금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서였다. 처음에는 재테크 관련된 콘텐츠인 줄 알았는데 사실 취약 차주들의 파산과 회생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팟캐스트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에서 제작을 했는데 이 기관은 그 외에도 파산이나 개인회생 그리고 불법적인 채권추심활동에 대한 조언과 지원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들은 민간기업이 아니라 서울시나 경기도 같이 지방정부에서 운영하는 조직으로 도움을 요청하기 훨씬 편할 것이다. 실제로 이들의 게시판에는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손편지'가 등재되어 있다.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지자체에서도 이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꽤 많았다. 시청이나 도청에서 이런 사업을 한다면야 - 글쎄 나로서는 그다지 지방세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해보았다. 아래는 전국 금융복지상담센터 지도다.
만약에 빚 때문에 괴롭다면 - 삶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다만 세상이 당신이 거기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이렇게나 당신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허리를 쫙 펴고 복성으로 "도와 달라고" 외쳐보시라. 아들과 당신과 앞으로 살아갈 멋진 날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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