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한 삶을 통해 내가 얻은 것들
검소한 삶을 통해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들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맺음말에 아내에게 감사와 헌사의 말을 남기는 작가들에게 맹렬한 시기심을 느낀다. 때때로 그들이 남긴 작품 그 자체보다 아내에 대한 헌사가 더 대단해 보일 때가 있다. 최근에 생각나는 예는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라는 책이다. 그 책에 쓰인 그 모든 신기한 이야기들보다 맺음말에서 저자가 아내에게 바치는 감사의 말이 더 신기했다. 그는 어떻게 일생을 바쳐 그렇게 한 여자만을 사랑하고, 또 한 여자의 한결같은 지지와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지금 내게는 평화롭고 완만한 결혼생활이 세계를 구원하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내게도 변명은 있다. 다른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내가 처한 결혼생활의 어려움 또한 돈 때문이라는 것을. 이 모든 것은 다 돈 때문이다. 우리는 검소했고 꽤 빠르게 돈을 모았지만 그 대신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나는 그것을 낭만과 여유의 완벽한 상실이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낭만과 여유의 완벽한 상실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기억한다. 얼마전 태어난 갓난아기를 장모님이 잠시 봐주시기로 했다. 당시 우리 부부는 차가 없었기 때문에 퇴근 후 전철역에서 만나 집까지 함께 걸어 돌아왔다. 등으로 땀이 흘러내렸다. 돌아오는 길에 '고봉민 김밥'에 들러서 돈가스와 쫄면을 시켜먹었다. 오랜만의 외식이었다. 분식을 먹으면서 나는 아내에게 5천 원을 주고 산 시들시들한 꽃을 한송이 선물했다. 이렇게 써놓으니 소설에 나오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부부가 연상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날이 너무 더웠고 우리는 밥맛도 대화도 없이 돈가스와 쫄면을 먹고 있었다. 밥을 먹고 기진맥진한 채 아이를 찾아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있을 또 다른 격렬한 전투(출근과 육아 그리고 대체로 예상되는 폭음)를 비장하게 준비하며 잠들었다. 그때 부부싸움을 많이 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서로 싸울 힘조차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가 살던 주택은 은행에서 제공되는 임차주택이었다. 공짜로 제공되는 전셋집이다. 은행에서 제공하는 이 복지혜택이 아니었다면 결혼의 시작은 훨씬 지난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은행원이 이 공짜 임차주택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너무 낡아서 샤워를 할 때면 한참이나 녹물을 빼야 했다. 아내는 어디에선가 이런 오래된 아파트의 물탱크에는 죽은 쥐의 시체가 둥둥 떠다니며 녹물을 없애기 위해 지독한 화학약품을 수돗물에 섞는다는 포스팅을 읽었다. 그리고 그 이후 이 불그스름한 물에 갓난아이를 씻기는 것을 견디지 못해 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아이를 데리고 한참이나 걸어가서 장모님의 집에서 아이를 씻겨오곤 했다. 당시에는 자동차가 없었기 때문에 유모차를 끌고 15분이 걸리는 그 거리를 아이를 씻기기 위해 주구장창 걸어 다녔다.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말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폐한 삶이었다.
샤워기에서 녹물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유모차를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가 없었다면, 우리에게 자동차가 있었더라면 아마 훨씬 삶이 편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의 부부싸움 중의 많은 부분이 사전에 방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의 삶에 조금의 낭만이 더 남아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돈을 아끼기 위해 다시 회복될 수 없는 무언가를 희생한 우리는 너무 멍청했던 것일까?
얼마 전 전철역에서 배달의 민족 광고를 보았다. '배달의 민족 안 써본 사람을 찾습니다.'라고. '그 사람이 바로 여기 2명이나 있습니다'라고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지난 5년 동안 우리 부부가 '배달의 민족'이나 '배달통', '요기요' 같은 어플을 통해 음식을 시켜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니 아예 전화를 통해서도 족발이나 치킨, 피자를 시켜 먹은 적이 없다. 치킨은 직접 주문하고 찾으러 가면 2천 원을 할인해주는 땡큐맘 치킨에서 사다 먹었고, 주말이면 재래시장에 가서 한 그릇에 2500 원하는 홍두깨 칼국수나 6500원짜리 곱창볶음을 먹곤 했다. 그게 외식이었다. 한우를 사서 집에서 구워 먹은 적도 한 번도 없다. 이마트에서 맥주를 사본 적은 딱 한 번이 있었다. 무언가 좋은 일이 있었던 날이었다. 나는 먹고 싶던 기네스 맥주를 이마트에서 사서 냉동실에 잠깐 넣어두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그 잠깐 사이에 맥주가 얼어서 터져있었다. 빌어먹을. 그래서 나는 집에서 맥주를 마셔본 적이 없다. 스타벅스는 언제나 무료로 받은 쿠폰을 통해서만 마셨고(나는 별다른 노력 없이 스타벅스 쿠폰을 획득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결혼하고 난 다음 극장에서 영화는 두 편 정도 보았던 것 같다. 한편은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머지 한편은 갈매기와 밤새가 등장하는 어린이용 만화였다. 결혼하고 해외여행을 가본 적도 없고, 케이블 TV도 설치하지 않았다. 은행에서 제공되는 콘도가 있기에 제주도에는 간혹 놀러 갔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도 우리는 비싼 회 같은 것을 먹지 않았다. 칼로리 가성비가 높은 고기국수나 해물뚝배기 같은 것을 먹었다. 그래서 나는 사실 아직도 제주도에서 먹는 다금바리 맛이 뭔지 모른다. 이렇게 사는 것이 불편한가 물어본다면 나는 이제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주말에는 좀 허기를 느낄 뿐이고 - 월요일에 회사에 출근해서는 급식 아주머니가 기겁을 할 정도로 많은 음식을 먹는다.
이런 삶을 살게 되면 결혼 생활의 낭만과 여유 같은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게 된다. 모든 생활은 효율성과 가성비에 따라 결정되게 된다. 그리고 마른 짚에 불이 붙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것에도 싸움을 하게 된다.
나는 대체로 돈을 주고 시간을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겠는가? 나와 아내의 소득을 합산하면 대한민국 상위 5% 에는 들어갈 텐데 언제까지 돈을 아끼겠다고 우리끼리 이렇게 단내 나는 각박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불화가 있던 가정에 기적과 같은 평화를 가져다준 가사/육아 도우미 이야기를 몇 개 주워들은 터였다. 비싸지도 않았다. 그래서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자고 이야기했다. 저축액은 연 5천 미만으로 떨어질 테지만 우리의 삶이 평화로워지고, 나는 조금 더 책의 집필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아내는 다시 운동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제안은 기각되었고 우리는 지금도 이 주제에 대해 소싸움을 하고 있다.
우리는 맞벌이를 하고 있고, 말을 잘 듣지 않기로 유명한 5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다. 또한 나는 글을 쓰기 위해 15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쓰고 있으며, 아내는 500원 단위로 지출을 관리한다. 낭만적일 수 있을까? 여유로울 수 있을까? 절대로 불가능하다.
억울하기는 하다. 내게 돈이 많았다면 나는 좀 더 좋은 남편 노릇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퇴근해서 집에 온 다음 육아 도우미 아주머니가 목욕시키고 양치까지 완벽하게 끝내 놓은 아이와 놀아주고, 고기로 탑을 쌓은 식탁에서 밥을 먹었을 것이다. 나는 소파에 늘어져서 아내와 함께 넷플릭스를 보면서 지금의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그럽고 자애로운 남편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철마다 해외여행을 갔을 것이고, 아내가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함께 백화점에 가서 40만 원짜리 원피스를 망설임 없이 구매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아이를 누가 씻기고 유치원에 데려가며,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하네 마네 이런 하찮은 일들로 싸울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조금 더 행복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검소하게 살면서 꾸역꾸역 돈을 모아 나가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것은 쉬운 삶이 아니다. 정말로 많은 즐거움과 편안함을 포기해야 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가치관에 입각한 선택이었다. 마크 맨슨은 그의 책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당신이 대단한 건, 끝없는 혼란과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도, 어디에 신경을 쓰고 어디에 신경을 끌지를 계속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것 참 어깨가 으쓱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내가 선택했다. 그러므로 의연하게 벼텨볼 생각이다.
검소한 삶을 통해 내가 얻은 것
검소한 삶이 내게 준 선물들이 있다. 세네카는 제자 루실리우스에게 이런 가르침을 남겼다. 일부러 며칠 동안 남루한 옷차림으로 싸구려 옷을 입고 손때 묻은 빵을 먹으면서 이것이 정말로 두려워할 만한 상황인가 반문을 해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가난을 대비한 연습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빈곤한 상황이 닥쳐도 위축되지 않고 삶을 의연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나는 이 훈련을 5년째 해오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변화를 경험했다.
아주 오래전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밤을 두려워했고, 잠자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두려움이 커지면 나는 불을 켜고 잠들거나, 엄마 옆으로 가서 잠들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밤 보다 훨씬 두려운 것들이 생겨났다.
실수하는 것
실패하는 것
무시당하고 경멸당하는 것
회사에서 잘리는 것
성인이 되어서 나는 이런 것을 두려워했다. 어린 내가 밤에 불을 켜고 잠들었던 것처럼 성인이 된 후에도 나는 출근을 하면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No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고, 부당한 처우에도 불평, 불만을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이 없었다. 별로 관심도 없는 사람들과 연줄을 만들기 위해 재미없는 술자리도 많이 참석했었다. 면피를 위해서 일했고, 내가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을 했다. 매일 야근했고, 39일 동안 주말도 없이 출근했던 적도 있었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는다. 내가 검소하고 회사를 떠나서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회사에서 실수하고, 실패하고, 쪽팔리고 하는 것들이 별로 두렵지않다. 나이가 들면서 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나는 직장에서 경험하는 부당한 것들을 거부할 수 있고, 형편없는 사람들을 거부할 수 있고,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 진정성을 담아 이야기할 수 있다.
부당한 것을 거부하면 그것들은 당신을 찾아오지 않는다. 형편없는 사람들을 거부하면 그들도 당신을 찾아오지 않는다. 당신이 진정성을 가지고 당신의 생각을 주장하면 회사 전체가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이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 누구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정성을 담아 말할 때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만큼 주변이 고요할 것이다. 진정성이란 이제 그토록 희소한 무언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회사는 당신이 그래 주기를 바랬왔을 수도 있다. 설사 당신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와 조직이 근본까지 썩어 빠졌고, 당신의 용기 있는 모든 노력이 아무런 변화를 만들지 못하고, 모든 사람이 당신을 비웃는다고 할지라도 상관없다. 즐거울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즐거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안되면 그만두고 다른 더 재미있는 기회를 찾으면 된다. 도대체 뭐가 아쉽지? 뭐가 두렵지? 아쉬워할 것 하나 없다. 삶은 유한하다. 그런 쓰래기에 집착하며 낭비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헤르만 헤세가 쓴 싯다르타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한 상인이 싯다르타에게 당신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싯다르타는 자신이 생각하고, 기다리며, 금식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도대체 금식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 상인의 말에 싯다르타는 이렇게 대답한다.
싯타르타: “참으로 큰 가치가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금식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금식을 몰랐다면, 저는 오늘날 먹고 살 일을 구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겁니다. 당신과 함께든, 혹은 다른 곳에서든. 왜냐하면 배고픔이 나를 부채질했을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처럼, 나는 조용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나는 조급하지도 절박하지도 않으며, 오랜 시간 배고픔을 멀리하고, 그것을 비웃을 수도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중에서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재인용
싯다르타처럼 위대한 영혼을 가진 사람조차도 자신이 단식을 하지 못했으면 속세의 하찮은 것들에 지배당해 전전긍긍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하물며 나처럼 하찮은 영혼을 가진 사람은 어떨까? 단식과 검소한 삶은 다르지만 삶에 미치는 영향은 유사하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찮은 것들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한다. 우리는 모두 겁쟁이다. 생명과 일상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있었다 하더라도 오래전에 다 죽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동차에 타서 안전벨트를 매는 것처럼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검소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꽤 신나게 삶을 타고 놀 수 있다.
나는 이제 월요일이 그렇게 우울하지 않다. 직장은 변한 것이 없지만 말이다. 이것이 검소한 삶이 내게 준 첫번째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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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에 'B형 은행원'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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