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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Jul 21. 2019

그 많던 월급은 누가 다 먹었을까?

의지력 최소 사용 저축 메커니즘: 통장 분리

군대를 전역하고도 나는 용돈을 받아 생활했다. 월 단위로 용돈을 받았지만 용돈은 항상 이삼 주일이 지날 무렵이면 동나게 마련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대학생이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는다는 것은 일종의 게으름과 능력 부족의 상징이었다. 내 주변에는 장학금을 받으면서 스스로 과외나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스로의 생활비를 마련하는 친구들이 수두룩했다. 나는 이것이 부끄러웠다. 친구들처럼 스스로 돈을 벌어 생활하지 못하지만 어떻게든 용돈으로 한 달을 버텨보자고- 적어도 돈을 더 보내달라고 전화하는 일을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대개는 실패했다. 나는 친구들처럼 돈을 스스로 벌어 자립하기는커녕 주어진 용돈의 범위 내에서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자기 돈 조차 관리 못하는 사람이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취업이 되지 않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내게 코딱지만큼의 관심도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나에게는 특정한 자질이 부족했고 내가 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입증하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내가 처음 취업을 해서 이 년 동안 월급으로 받았던 돈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가계부를 쓰거나 신용카드를 없애본 적도 있었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 돈으로 연애를 멋지게 했거나, 여행을 했거나, 독특한 컬렉션을 구축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벌어들인 돈들은 그냥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런 느낌은 단순히 돈을 모으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내가 선천적으로 의지나 자제심 같은 특정한 자질이 부족하다는 증거였다. 이렇게 밑바닥에서 계속 허우적거리다가 삶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가난함 속에 삶을 종료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지배했다.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나는 터무니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터무니없는 물건들을 샀으며, 그 과정에서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지출했다. 그러면 불안하지 않았다. 당연히 나는 돈을 모으지 못했다. 그러나 상황은 호전되기 시작했다. 통장 분리 덕분이었다.




재테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통장 분리에 대해 한번쯤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통장 분리의 개념과 작동방식은 아래와 같다.

Step 1. 급여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면 1차로 저축통장으로 저축할 돈이 자동이체되도록 한다.

Step2. 저축통장에 들어있는 돈을 입맛에 따라 적금/예금/IRP/연금저축계좌/보험/펀드 등으로 이체되도록 한다.

Step 3. 급여통장에 남아있는 자금 중 한 달 동안 사용할 생활비/용돈이 지출통장으로 자동이체되도록 한다.

Step 4. 지출통장에 입금된 돈으로 한 달 동안 생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Step5. 살만한 것처럼 느껴진다면 저축이 부족한 것이다. 지출통장에 입금되는 돈을 줄이고 저축통장으로 이체되는 금액을 늘린다.


여기에는 절대 규칙이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축통장에 한번 들어간 돈은 생활비나 용돈으로 유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약간의 변형이 가능하겠지만 대체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작동된다. 단순하고 수수료 같은 것도 발생하지 않지만 효과는 압도적이다.



통장 분리의 기능들


통장 분리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이것이 예산안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매년 모든 기업들은 예산안을 짠다. 과거의 지출을 살펴보고 절약할 수 있는 곳은 없을지 분석하고, 미래에 어떤 방식으로 지출을 할 것인지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인들은 연단 위의 예산안을 짜지 않는다. 이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홈쇼핑이나 백화점에서 되돌릴 수 없는 재앙적 지출을 저지르는 것은 기업들이 아니라 개인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매년 예산안을 짜고 그것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살아가는 지구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삶이 너무 복잡하다.


통장 분리는 그 자체로 예산안의 역할을 한다. 통장 분리를 한 사람은 지출 통장에 남은 돈으로 생활해야 한다. 지출 통장에 돈이 부족하면 자연스럽게 긴축모드에 돌입하게 된다. 그러다가 만약 돈이 부족할 때 사람은 추가 소득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태어나 처음 실비보험금을 청구한 것(내가 태어나 해본 모든 일을 통틀어 가장 귀찮았었다)은 카드 값이 펑크 났을 때였다. 물론 카드가 연체된 순간에도 나는 상당히 많은 현금성 자산이 있었지만 거기에 손 대지는 않았다. 저축된 돈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규칙이니까. 실비보험금이 나와서 가까스로 카드값을 정리했었고 이 이외에도 나는 비슷한 경험이 꽤 여러 번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내 지출 현황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디에 초과 지출을 했는지 더 절약할 곳은 없는지 말이다. 이렇게 살다 보면 자신이 설정한 지출 통장의 금액이 한 달 예산이 되고 삶은 자연스럽게 거기에 맞춰 적응이 된다.


통장 분리는 또한 가계부로 기능한다. 처음 은행에 들어왔을 때 내 통장은 카오스 상태였다. 급여가 들어오면 거기에서 음식료값, 통신비, 보험비, 적금, 술값, 옷값 같은 모든 비용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은행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나는 통장 거래내역을 다운로드하여서 엑셀로 분류하려는 시도를 몇 번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그러기엔 삶이 너무 바빴고 효용 자체도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다. 가계부를 자동으로 써준다는 어플도 사용해보았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당시까지도 지구의 IT기술은 내 급여통장에 내재된 카오스적 지출구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 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통장 분리를 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현금이 움직이면 모든 수입과 지출은 가지런히 정렬된다. 굳이 가계부를 쓸 필요가 없으며 가계부를 써준다는 어플을 쓸 필요도 없다. 통장 거래내역 만으로도 얼마든지 자신의 수입과 지출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급여통장, 저축통장, 지출통장에  입금된 금액만 보면 자시의 수익과 지출, 저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수입과 지출을 아는 것이 재테크의 시작이다. garvage in garvage out이라는 말이 있다. 불완전한 정보로는 불완전한 결과만을 얻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투자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자신의 소득과 지출에 대한 덜떨어진 정보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덜떨어진 결과뿐이다.


통장 분리의 마지막 기능은 의지력의 절약이다. 사실 나는 저축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 시스템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은 중요하다. 내게 의지력과 의식적인 노력이란 매우 희소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통해 의식적인 노력을 아낄 수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특히나 모든 홈쇼핑 채널과 페이스북 채널과 미디어가 합리적 과소비를 조장하는 이 시대에는 말이다. 통장 분리는 돈을 절약하는 시스템일 뿐만 아니라 의지력을 아껴주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절약을 하는 능력은 근육과 비슷하다. 통장 분리를 하는 사람은 라디오 주파수를 조절하는 것처럼 조금씩 이체 금액을 조절하면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수준의 저축률을 찾아내면 된다. 그리고 조금씩 높이면 된다. 나는 연소득의 70% 정도를 저축한다. 이는 내가 이를 아득 아득 거리면서 궁상맞은 삶을 살고 있어서가 아니다. 코코 샤넬은 일전에 우아함이란 거절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나는 통장을 분리한 이후 내가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것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거절하는 방법을 배웠다. 예를 들어 나는 아웃렛에서 파는 싸구려 정장은 입지 않는다. 그러나 아웃렛에서 파는 후줄근한 운동복이라면 얼마든지 기껍고도 우아하게 입을 준비가 되어 있다. 어쩌면 통장 분리는 독자적 라이프 스타일 구축이라는 면에서도 기능하는지도 모른다.


재테크에 있어서 통장 분리가 가장 중요한 시작이라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한다. 통장 분리라는 주제만을 바탕으로 출판된 책도 여러 권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비용이 들지 않고 효과가 분명하게 입증된 통장 분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살아가면서 공과금 납부나 카드결제 그리고 이런저런 청구서 결제를 한 통장에서 결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동이체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이를 통째로 정리하기가 상당히 번거로워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행 창구에서도 어지간해서는 통장 분리를 권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업무가 지체되면 대기인원이 초침처럼 올라가는 은행 창구에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통장 분리를 권유해서 직접 처리하는 것은 오늘 점심을 먹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장 분리라는 행위 자체를 개인 실적으로 카운트하는 은행도 존재하지 않는다. 통장 분리는 엄청난 시간을 잡아먹으면서도 개인 실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급적이면 첫 월급을 받기 전에 급여통장을 처음 만들면서 통장 분리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설사 그렇지 못했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지금이라도 은행에 방문하여 통장 분리를 하기를 바란다. 은행원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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