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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Oct 20. 2019

나는 한 번도 펀드로 10억 번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한방에 훅 지르는 펀드로 돈을 벌 수 없는 이유

해마다 이맘때면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곤 했다. 정기전시회가 다가오는 것이다. 나는 미술동아리에서 활동했고 봄, 가을이면 동아리 친구들과 그림 전시회를 하곤 했다. 당시의 나는 유화(Oil Painting)를 그렸다. 그리고 항상 망했다. 조급했기 때문이다. 물감이 채 마르지도 않은 캔버스 위에 다른 색을 얹으면 시궁창 비슷한 색이 되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었다. 전시회 일정이 임박했는데 물감이 마르길 기다릴 수 없는 것이다. 기다리지 못해 질척거리는 나의 그림은 언제나 시궁창과 비슷했다. 


유화를 그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유화를 그릴 때는 한 겹 얇게 색을 입히고 그것이 완전하게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그 위로 다시 또 한 겹의 색을 올리는 것이다. 실수할 수 있다. 신경 쓸 필요 없다. 그 위로 한 겹, 두 겹 계속해서 색을 올리다 보면 실수는 자연스럽게 그림에 녹아들어 더는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그림을 그리면 어김없이 멋들어진 그림이 완성된다는 것 -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도 독특한 매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어떤 재료도 따라 할 수 없는 유화만의 매력이다.

Woman with a Parasol - Madame Monet and Her Son, Claude Monet, 1875




펀드에 투자한다는 것은 유화를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 펀드에 투자할 때는 천천히 한 겹, 두 겹 수익률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투자해야 한다. 천천히 해야 하는 것이다. 펀드에 올바로 투자한다는 것은 단기 수익률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손실에 일희 일비 하면 안 된다. 만회할 시간을 기다려 주면 된다. 장기적으로 천천히 시간을 들여 투자를 하면 분명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펀드는 천천히 하는 것이다. 단단하게 하는 것이다.


반론은 있을 수 있다. 펀드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하는 것이고 - 리스크를 감수한 이상 한방에 훅 지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 얼마 전 레버리지 펀드 사태가 발생했을 때 내가 놀랐던 것은 60%에 달하는 손실률이 아니었다. 나는 높은 손실률보다 그런 펀드에 투자를 해서 손실을 본 사람들이 존재하며 그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정말 많았다.


이상한 일이다. 한방에 훅 지르는 방식으로 투자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데도 불구하고 나는 단 한 번도 펀드를 통해 10억을 버는 데 성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런 펀드를 통해 부자가 된 사람은커녕 그런 사람을 보았다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당연한 결과다. 문제는 재료다. 만약 당신이 물감을 흩뿌리며 멋지게 액션페인팅을 하고 싶다면 - 끈적거리고 잘 마르지도 않는 유화물감이 아니라 락카 스프레이나 아크릴 물감을 쓰는 것이 훨씬 낫다. 빠르고 편하고 저렴할 테니까. 투자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한번 훅 질러보고 싶다면 펀드는 절대 적합한 방식이 아니다. 직접투자를 하는 게 훨씬 낫다.


펀드는 간접투자 상품이다. 펀드가 무엇에 언제 어떻게 투자를 할지 당신이 투자의사 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 당신에게는 오직 매수냐 혹은 환매냐 라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항적 의사결정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이런 투자의사 결정도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다. 펀드에 가입한다고 해서 바로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적인 매수까지 통상 1~7 영업일이 소요된다. 0.1초를 다투는 금융시장에서 거의 영겁에 가까운 시간이다. 게다가 펀드란 결국 생판 모르는 남에게 내 돈을 맡기는 행위다. 이 프로세스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리인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말이 좋아 대리인이지 결국 내 돈을 다른 사람이 요령 좋게 뜯어 먹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강도 비용이라고 하는게 더 적절할 것이다. 이토록 불리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 펀드를 사용해서 한번 질러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만용에 가깝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면 나는 망치로 토마토 주스를 만들려는 사람을 보는 것 같다. 어찌어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세련되지도 우아하지도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성공할 수 없다.




펀드 투자가 실패하는 가장 큰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 모든 투자의 의사결정은 결국 투자자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무지와 욕심과 조급함 때문에 펀드로 한방에 훅 지르려다 실패했다면 그 결과는 투자자가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모든 투자 실패에는 언제나 창백한 범죄자가 두 놈 가담해있다는 사실이다. 펀드를 만드는 놈과 펀드를 판매하는 놈이다.


펀드는 자산운용사라는 금융기관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은행이나 보험사, 증권사를 통해 판매된다. 즉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가 코스트코라면 자산운용사는 거기에 물건을 납품하는 생산업자라고 할 수 있다. 생산자가 좋은 펀드를 생산하고 판매자가 그것을 많이 판매한다. 그리고 이렇게 판매된 펀드가 수익률 대박을 친다. 수익률 대박이 난 펀드가 다시 또 날개 돋친 듯 투자자에게 팔려 나간다. 이것은 생산자와 판매자 그리고 투자자 모두에게 득이 되는 가장 완벽한 시나리오다. 


다만 이 시나리오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좋은 펀드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도록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좋은 펀드를 만드는 것이 어째서 어려운 일인지는 뮤추얼 펀드로 시장 초과 수익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포스팅에서 이야기했었다. 설사 어떤 자산운용사가 이 모든 장애를 뚫고 좋은 펀드를 만드는 데 성공하더라도 최소 4~5년은 수익률의 과거 기록을 만들어서 자신이 좋은 펀드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당연히 그 기간 동안에도 자산운용사의 인건비나 관리비는 계속해서 지출된다. 대부분의 자산운용사는 그런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재무여력이 튼튼하지 않다. 아니 재무여력 생각할 것도 없다. 누구에게나 수익은 지금 당장 발생해야 제맛인 법이니까.


이에 자산운용사는 한 가지 트릭을 쓸 수 있다. 좋은 펀드보다는 잘 팔릴만한 펀드를 만들어서 매대에 깔아버리는 것이다. 이건 정말 쉽다. 정크펀드라고 해야 할까? 펀드에도 배당주, 펀더멘털, 사차산업혁명, 신흥국, 태양전지, 바이오 같은 주제의 재테크 트렌드가 분명 존재한다. 브릭스의 위기는 어째서 극복 가능한 것인지, 태양전지는 어떻게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것인지, 중국의 탄산음료시장이 과거 20년간 얼마나 폭발적으로 성장해왔는지, AI가 결국 인간의 두뇌를 초월하게 될 것인지와 같은 이야기들이다. 자산운용사는 이런 금융시장 트렌드에서 콘셉트를 뽑아내고 상품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기 기회가 있고 이 기회를 지금 놓치면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펀드는 트렌드에 부합하는 만큼 분명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더 쉽게 끌 수 있고 자산운용사의 수탁 증가와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된다. 트렌드에 따라 급조된 펀드들이 금융기관의 매대를 장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료출처: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시스템/ 펀드명에 키워드를 통해 펀드 테마 분류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펀드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글쎄 - 아마도 아닐 것이다. 금융시장이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어떤 현상이 트렌드로 구체화되어 신문 지상에 오르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그 트렌드는 맛탱이 간 석기시대의 것이라는 증거다. 이것도 부족해서 이 오래된 트렌드를 바탕으로 자산운용사가 상품을 기획해서 만들어 내는 데는 또 하나의 연대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은 구조적으로 자산의 가격이 오를 만큼 오른 그런 고점 지대에서 판매가 개시될 수밖에 없다. 이런 펀드에 투자해서 한방에 훅 질러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통상 질이 떨어지는 상품은 코스트코나 이마트 매대에 깔리지 않는다. 판매자가 일차적으로 상품의 질을 검증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펀드를 판매하는 금융기관도 쓰레기 같은 펀드는 팔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매우 어렵다. 펀드의 성과는 미래에 결정되고 이로 인해 펀드의 질을 검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좋은 펀드를 고르는 것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는 좋은 펀드를 고르는 세 가지 방법라는 포스팅에서 이야기했었다. 좋은 펀드를 고르는 것은 좋은 주식을 고르거나, 좋은 채권, 좋은 부동산을 고르는 것에 비해서 훨씬 더 어렵다. 주식이나 채권은 그것을 발행한 기업이나 정부라는 실체가 존재한다. 부동산의 경우 실물 자산 그 자체다. 실제하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이런 자산들의 경우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쉽다. 


그런데 펀드는 실체라 할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과거 수익률과 아무런 구속력 없는 미래 투자 계획뿐이다. 객관적이고 범용적인 펀드 평가 방법 같은 것도 당연히 없다. 허공에 떠 있는 구름의 크기를 엄지손가락을 사용해서 측량하는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 펀드 판매자 또한 한 가지 트릭을 쓸 수 있다. 좋은 펀드보다 잘 팔릴 펀드를 판매하는 것이다. 자산운용사에서 최근 매대에 깔아달라고 가져다준 그 트렌디하게 쉬어 빠진 정크펀드들 말이다. 좋은 펀드를 골라내고 그것이 좋은 펀드라고 설득을 하는 것보다는 그냥 온갖 매체에서 부르짖듯이 하는 사차산업혁명이나 바이오 같은 펀드들을 판매하는 것이 훨씬 쉽다. 혹은 과거 6개월, 1년 수익률이 무려 50%, 100%에 달해서 수익률 화살표가 그래프 바깥으로 튀어나가려고 하는 그런 펀드들을 판매하는 것이 훨씬 쉽다. 


과거 1년 수익률 상위 펀드들: 여기에 투자하면 미래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방식의 펀드 투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펀드 투자에 실패한 사람들은 결국 믿을 건 부동산과 예금밖에 없다고 되뇌며 1970년 대의 재테크로 귀환하거나 ELS나 변액보험으로 차를 갈아타는 것이다. 펀드 산업은 지금 스스로 질식사하고 있는 중이지만 연민의 마음도 들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는 한방에 훅 지르는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이야기했고,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한심한 투자를 해서 손실을 보게 만들어버리는 펀드 산업의 작동원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펀드란 금융자산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타락한 금융상품에 침을 뱉고 발로 짓밟아 줘야 할까? ELS나 보험 같은 대체상품이 있으므로 과감하게 펀드는 쌩까고 다른 금융상품을 활용하는 것이 적절할까? 절대 아니다. 펀드는 ELS나 변액보험 같은 금융상품들에 비해 훨씬 더 안정적이고 저렴하며 장기적으로 우월한 투자방법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언제나 확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문제는 사용방법이다. 펀드는 망치다. 재테크라는 거대한 건물을 견고하게 고정시키는데 필수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망치로 토마토 주스를 만들지 못한다고 망치를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적절히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펀드를 사용하는 올바른 방식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못했네요. 다음 글에서 다시 시도해보겠습니다.


본 포스팅에 수록된 내용은 저자의 독자적인 창작물 및 의견으로 어떤 기관이나 단체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울러 본 자료에 수록된 내용은 신뢰 할 만한 자료 및 정보로부터 얻어진 것이나 어떤 경우에도 정확성이나 완전성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본 포스팅에 수록된 내용이 투자결과에 대한 법적 책임 소재에 대한 증빙 자료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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