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기설기 만든 장난감 같던 포트폴리오가 꽤 잘나간다. 기쁘다.
낙지덮밥을 먹고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신용카드가 안보였다.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를 않는다. 신용카드 - 이 잔망스러운 아이가 다시 또 나를 떠나 버렸나 보다. 분실신고를 하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나를 분노케 할 테지. 어쩔 수 없이 나는 체크카드를 꺼내 결제를 했다. 조마조마했다. 통상 이맘때면 내 용돈 통장에는 잔액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잔액이 있어 결제가 되었다.
나는 요즘 내 지출이나 통장 잔액에 대해 잘 모른다. 얼마 전 사용하던 SMS 통지 서비스를 모두 해지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통장 잔액이나 카드 사용액을 실시간 팝업으로 알려주는 데다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혁신적인 기능을 지원한다고 하는 카드사 어플과 은행 어플을 설치했었다. 그런데 반경 300m 이내에서 가장 늙었을 것이 분명한 내 아이폰6에게 이 어플들이 조금 과했나 보다. 이 어플들이 사용내역과 잔액을 알려주다 말다 하더니 요즘에는 아예 작동도 하질 않는다. 다시 SMS로 돌아갈 생각을 한 것이 벌써 몇 개월 전이건만 아직 바꾸지를 못했다. 아... 재테크란 어찌 이리 귀찮은 것이란 말인가. 이번에 카드 재발급 신청을 할 때 꼭 잊지 말고 SMS 통지 서비스 신청을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나란 놈은 분명 또다시 잊게 될 테지. 이런 내가 나도 싫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B형인 것이다.
이런 사유로 내 은행 잔고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은행 어플에 들어가서 은행 잔고를 확인해야만 했다. 그렇게 계좌 명세를 보다가 한동안 잊고 있던 내 개인형 IRP의 계좌의 수익률을 보았다. 연환산 수익률 9.37%였다.
IRP에 가입한 것은 작년 10월의 일이었다. 재테크에 관한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앞으로 쓰게 될 재테크 이야기에 내 포트폴리오를 직접 사례로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일종의 작은 재테크 실험실인 셈이다. 하지만 가입한 다음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쳐다도 안 봤다. 그런 걸 주기적으로 쳐다보며 살기에는 너무 바빴다.
마지막으로 IRP수익률을 확인했던 것은 코스닥 시장이 폭락했던 무렵이었다. 그 당시에는 꽤 자주 은행 어플을 실행해서 내 IRP 수익률을 조회해 보곤 했다. 새로 장만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설레임 같은게 있었다. 이렇게 엉망진창인 금융환경에서도 내 포트폴리오가 어느 정도의 방어력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그 직전까지 내 포트폴리오는 연 12% 정도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데 코스닥과 코스피가 폭락한 시점에 -0.39%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얼마 뒤 +1.2% 수준으로 회복했고 낙지덮밥 사태로 말미암아 확인한 현재는 +9.37%까지 회복이 되어 있는 것이다.
예상보다 높은 수익률이 나온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운이다. 운이 좋았다. 내 포트폴리오는 주식과 채권이 7:3 정도의 비율로 섞여 있다. 그래서 나는 내 포트폴리오가 장기적으로 연평균 4~5% 정도로 수익률이 나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런데 올해 채권시장이 잘 나간다. 연초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금리 인하 정책 때문이다. 코스피 시장을 제외한 대다수 해외 주식시장도 잘 나간다. 그래서 수익률이 좋았다.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펀드를 선별해서 골라 넣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좋은 펀드를 고르는 방법 같은 건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해외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인덱스 펀드에 투자했고, 인덱스 펀드가 없을 경우에는 그냥 각각의 펀드가 추종하는 해외시장 지수와 수수료 정도만 확인하고 덤벙덤벙 주워서 포트폴리오에 담았다. 이 과정에는 30분도 안 걸렸다. 그러니까 펀드 선택을 잘했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이다. 이게 제일 컸다.
두 번째 이유는 분산투자다. 나는 한국시장 이외에도 미국과 유럽, 중국 주식시장에 분산 투자했다 그리고 원치는 않았지만 일부 금액은 채권으로 투자했다. IRP의 일정 부분을 채권에 강제적으로 투자하도록 하는 퇴직연금 규제 때문이었다. 올해 한국 주식시장이 좋지 않았지만 채권시장은 나쁘지 않았다. 미국, 중국, 유럽 모두 괜찮다. 그래서 전반적인 포트폴리오 성과가 양호했다.
세 번째 이유는 코스트 에버리지 효과 때문이었다. 나는 포트폴리오 설계 시 매월 일정 금액이 자동 이체되어 미리 선택해둔 펀드에 설정해놓은 비중대로 펀드를 매입하도록 했다. 포트폴리오 손실이 발생한 시점마다 자동 이체한 금액만큼 지속적으로 저가 매입되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수익률이 높아졌을 때 조금 더 효과적으로 손실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들로 말미암아 내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괜찮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 내 포트폴리오가 이번처럼 연간 10%에 근접하는 수익을 내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냥저냥 가끔 손실도 내고 수익도 내면서 가는 듯 마는 듯 밋밋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분산 투자한 포트폴리오에서는 엄청난 손실도 수익도 발생하기 힘든 법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역사적인 평균 수익률 지점에서 수렴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20~30년 정도의 장기간에 걸쳐 연평균 4~5% 정도의 수익률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정도 수익률이면 충분하다. 만족할 수 있다.편안하다.
오랜만에 글을 써서 그런가 보다. 앞에서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남아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 가지 언급할 사항이 있다. 내가 보여주는 포트폴리오 사례에 너무 커다란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제 고작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났다. 단기간 수익률이 좋았다고 그것이 앞으로 지속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안타깝기는 하다. 5년만 먼저 IRP에 가입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놓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두 시간이면 충분했을 텐데. 그랬다면 나는 5~6년 정도의 꽤 양호한 시간축을 바탕으로 나의 작은 실험실에서 더 많은 실험을 해본 다음 당신에게 좀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건져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정말 단단했을 것이다. 내 돈과 내 포트폴리오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너무 바빴다. 처음 은행에 들어와서도 나는 은행 창구에 앉아서도 거의 반년 가량을 신용카드도 만들지 못하고 살았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것만 해도 너무 벅찼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결혼하고 아이 생기고 하면서 - 돈을 미친 듯이 적금에 쏟아 넣기만 했다. 그 당시에는 IRP계좌를 만든 다음 거기서 포트폴리오를 운용하고 그 결과를 콘텐츠로 만들어 브런치 같은 곳에 올려야겠다는 생각 같은 건 전혀 해보지 못했다. 책을 쓰기로 결심하고 책을 쓰다 보니 - 실제 내 포트폴리오 사례를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고 그때 비로소 IRP를 가입하고 포트폴리오 설계를 한 것이다. 1년 전 일이다.
더 높은 설명력을 위해 긴 시계열의 사례를 만들어 사용하는 방법은 있다. 고객들의 포트폴리오에서 골라내거나 그냥 시중에 존재하는 펀드들의 수익률을 적당히 짬뽕해서 내가 원하는 데이터 값을 만들어 내면 된다. 펀드와 관련한 데이터는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으므로 원하는 결괏값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의 포트폴리오나 가상의 포트폴리오로 만들어낸 데이터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싶다. 만들어진 숫자에는 언제나 데이터 마이닝이라는 속임수의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언젠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데이터를 조합해 보여주는 방법을 써야 하는 순간은 있을 것이다. 내가 35살이기 때문이다. 내가 50살이라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50살의 나는 거의 15년도 넘는 투자 기간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투자금액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내가 일관성 있는 투자를 실행했다면 나의 그 오래 묵은 포트폴리오는 밋밋하고 안정적인 수익률을 통해서 벽돌만큼이나 견고하게 내 주장을 증명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15년을 기다릴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조금은 뻔뻔하게 당신에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믿는 것들에 대하여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나는 내가 이야기하는 것과 (거의) 일치한 삶을 살고 있다고.
투자에서도 그러하다고 말이다.
이 글에서 나는 당신에게 2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우선 나는 당신이 아주 작게라도 주식과 채권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투자해보기를 바란다. 이것은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2019년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언젠가 결혼을 해서 집을 살 것이고 아주 오랜 기간 집을 사기 위해 받은 대출금을 갚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돈을 모으고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는 것은 좋은 것이다. 커다란 성취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문제는 이 과정이 길고 고되게 이어질수록 집을 구매한 사람은 세상이 오로지 부동산과 대출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느끼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모든 자산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는 사람이, 부동산에만 투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서, 매일 부동산 광고로 점철된 신문을 읽고 있다면 그가 과연 부동산과 그 외의 자산들에 대해 균형 잡힌 견해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아주 약간이라도 돈을 투자해서 부동산 이외의 자산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고 그 성과를 가끔씩 관찰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때 당신이 보게 되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다. 당신이 속하지 않은 이질적인 세상의 풍경이다. 이렇게 5년 정도 지나면 당신은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이 속해 있는 세상의 어떤 것들은 너무 과장되었고, 당신이 속해 있지 않은 세상의 어떤 것들은 너무 축소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내 포트폴리오를 통해 당신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 풍경이다. 세상에는 부동산 외에 주식과 채권이라는 자산군도 존재한다는 사실과 이들이 더 높은 수익/위험 효용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것은 내가 홀로 어떤 깨달음을 얻어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설득력 있는 금융이론으로 설명 가능하며 과거의 데이터로 입증 가능한 사실인 것이다.
그러나 금융이론나 데이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자. 그딴 건 당신이 직접 경험해보는 것에 비하면 웅얼거리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이 작게라도 직접 투자를 해보면서 얼기설기 만든 장난감 배 같은 포트폴리오가 실제 세상에서 용케도 잘 나아가는 것을 구경하다 보면 당신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풍경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멋진 장난감을 만난 아이처럼 당신은 이내 금융이론이나 데이터에 관한 자료도 모두 샅샅이 찾아보게 될 것이다. 재미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경험이 결국 당신을 지켜줄 것이다.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두 번째 제안이다. 나는 당신이 분산투자하기를 바란다. 분산투자는 수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효과적인 투자전략이다. 보편적이며 타당한 진리라고 할 수 있다. 당신에게 천부적 재능이 있지 않은 이상 분산투자는 몰빵 투자에 비해 위험 효용이란 측면에서 무조건 더 우월하다. 수학적인 설명이 없이도 이번에 코스닥 사태를 통해 주변에서 많이 보았을 것이다. 시장이 좋을 때는 온갖 가오를 잡으면서 하늘 아래 내가 가장 잘났다고 기고만장하던 사람들의 상당 수가 시장이 고작 23% 빠졌다고 피를 토하며 볼썽 사나운 모습을 연출하는 광경을 말이다.
한국 주식시장은 작다. 작고 위태롭고 과거 수익률도 좋지 않다. 전 지구적 금융시장의 관점에서 본 한국의 주식시장은 코딱지만 한 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시장에서 그것도 그중 일부 자산군이나 종목에만 인생을 걸고 목을 메야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심지어 해외 시장에 효율적이고 쉽게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이 순간에 말이다. 인생은 짧다. 그리고 세상에는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 넘치고 넘친다. 그래서 특정 국가의 특정 시장 내 특정 종목에 몰빵 투자해놓고 매일 매시 매초를 그 종목만 쳐다보며 조마조마해하는 것은 어떤 기준에서 판단하더라도 미친 짓이다. 설사 그 투자가 운이 좋아 성공한다 할지라도 그가 소진하고 있는 것은 삶 그 자체일 테니 말이다. 마음 편하게 광범위한 시장에 분산투자를 해놓고 금융시장 같은 것보다 더 즐겁고 중요한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것이다.
나는 당신이 그렇게 삶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B형이다. 나는 관심 없는 주제에 관심이 없고 흥미 없는 것들에 흥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이 게을러 빠진 재테크-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놓고 쳐다보지도 않다가 아주 가끔 우연한 계기에 한 번씩 쳐다보는 재테크를 좋아한다. 영어로는 이런 투자를 Couch Potato Investment라고 한다. 소파에서 TV를 보며 감자칩을 먹는 만큼 쉬운 투자방법이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런 투자방식은 허구한 날 들들 볶아대며 부지런하기 짝이 없는 투자들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 드디어 잘난척쟁이 보글 아저씨가 만든 인덱스 펀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이다.
두둥!
본 포스팅은 B형 은행원이 브런치에 등재한 글입니다. 구독과 라이킷이 힘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