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격 왜 이리 오른거니.
부동산 가격이 많이도 올랐다.
30개월 전 나는 2.5억 원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나는 집을 살지 혹은 전세를 들어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1억 원 정도 대출을 더 보태면 집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아내에게 의기양양하게 이야기했었다. 부동산은 분명 고꾸라질 거라고. 나는 온갖 그럴싸한 이유를 이야기했다. 인구구조가 어떻고, 가계 대출금 규모가 어떠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금리가 있었다. 당시 나는 미국 기준금리가 올라갈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런데 지금 미국 기준금리가 바닥으로 처박히고 있다. 다시 올라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기간 부동산 가격은 로켓처럼 솟아올랐다.
금리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연초까지만 해도 미국 기준금리가 이렇게 바닥으로 처박힐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경제 주체 대부분이 금리가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은행들은 예금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바탕으로 경영계획을 수립했다. 금리가 낮은 시기에 은행들은 예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금리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되는 경우다. 금리가 낮을 때 저원가성 예금을 많이 가져다 놓아야 금리 상승기에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은행들의 사업전략은 결국 하나의 문장 "닥치고 예금 가지고 와"로 귀결되었다. 모든 은행이 예금을 늘리기 위한 사투를 벌였다. 그런데 그 결과가 지금과 같다. 금리는 역대 최저치를 매번 갱신하고 있다. 돈도 되지 않을 예금을 늘리기 위해 지난 한 해 뻘짓을 많이도 했다.
은행뿐만 아니다. 변동금리 대출을 사용하던 기업의 상당수가 금리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들 중 많은 수가 변동금리 대출을 고정금리로 전환하는 작업을 했었다. 파생상품 취급부서는 쏟아져 들어오는 IRS(Interest Rate Swap) 주문으로 행복한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상당수 기업이 IRS로 대출을 고정금리로 전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리가 바닥으로 처박히기 시작했다. 금리 스왑을 기안한 재무부서 책임자들은 이자 납부 기일이 될 때마다 사장실에 호출되어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사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깊고도 슬픈 한숨을 쉬곤 했다.
대한민국 정부라고 달랐을까? 정부는 언제나 금리가 올라가는 것에 대해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여왔다. 1천조가 넘는 주택담보 대출의 대부분이 변동금리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금리가 올라갈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자 정부는 '고정금리 적격대출'이라는 것을 만들어 주택담보대출이 고정금리로 취급되도록 유도하였다. 정부가 이런 상품을 공급한 가장 큰 이유는 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높아 보였고 이 경우 변동금리로 대출을 받은 차주들이 단체로 위기에 처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과 몇 개월 전 서민형 안심 전환대출이라는 것이 출시되었다. 이 상품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취약계층의 변동금리 대출을 고정금리로 바꾸어 주는 것이었다. 정부는 과감하게 베팅했다. 20조 원이 넘는 공급규모였다. 정부가 상당한 재무부담과 시장교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상품을 공급한 것은 금리인상이 바로 그 순간에도 눈앞에 닥친 위험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적격대출과 안심 전환대출 모두가 결국은 금리 인상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가 가계대출 구조를 고정금리 위주로 체질 변환을 시도한 사례들이다. 취지는 매우 좋았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기준 금리가 내려갔고 그 덕에 주택담보 대출 금리가 역대 최저치를 갱신해버린 것이다. 정부의 권장대로 고정금리로 대출을 받았던 사람들은 변동대출 금리가 1%씩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미국 기준 금리 인하를 예상한 경제주체는 거의 없었다. 은행도 기업도 정부도 금리인하를 예상하지 못했다. 대다수의 시장 주체가 금리 인하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인하는 예상치 못한 일격이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미 금리 역전으로 골머리를 썩던 한국은행에는 희소식이었다. 한국은행의 총재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한국 기준금리를 내리겠다고 망치를 떵떵 내리쳤다.
그 망치에서 마법의 가루가 쏟아져 나와 전 국토에 뿌려졌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All that math -
재무 수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채권의 가격결정 방식을 공부하면서 볼록성(Convexity)이라는 개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채권의 가격과 금리의 관계는 직선적이지 않다. 이들의 관계는 언제나 약간의 볼록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이 볼록성이다. 금리에 따른 채권의 가격 변화를 계산하는 것은 컴퓨터가 할 일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볼록성이 채권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다. 볼록성으로 인해 채권은 금리가 낮은 환경일수록 금리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볼록성은 채권의 만기가 길어질수록 더 커진다. 즉 시중금리가 낮고 채권의 만기가 길어질수록 채권의 가격은 금리에 미칠 듯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채권의 가격 결정 모형은 부동산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금리가 부동산 임대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가정을 해보자. 금리와 부동산 가격의 상관관계는 채권의 그것과 동일해진다. 물론 볼록성도 동일하게 존재한다. 저금리 환경에서 부동산의 가격은 금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아니 대부분의 채권보다 부동산 가격은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왜냐하면 대체로 3~10년의 만기가 존재하는 채권과는 다르게 부동산에 만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사실 만기가 무한대인 채권과 동일하다. 게다가 여기에는 사이드 이펙트가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 통상 물가는 오르게 마련이다. 물가가 오르면 임대료도 함께 오르게 되지 않을까? 그러므로 사상 최저/최장의 저금리 환경과 예상치 못한 금리 추가 인하, 물가인상 가능성이 모두 결합하였을 때 발행하는 현상은 빠밤~ 바로 보시는 바와 같다.
부동산 가격 대폭발이다.
주식과 부동산 수익률 비교
지난 한 해 부동산 가격이 오른 이유는 명확하다. 이 짧은 기간 인구구조와 주거행태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 리는 없다. 전국적 규모의 부동산 개발 호재가 발생했던 것이 아니며 부동산 공급량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경기가 좋아진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진 것도 아니다. 부동산 시장 전망은 최근 부동산 가격 변동의 후속 요인에 불과하다. 정부 정책은 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 앞서 열거한 모든 요소들은 이전과 비교하여 변화가 없었거나 영향력이 제한적인 것이다. 그러나 기준금리는 그렇지 않다. 직접적이고 강력하다. 기준금리가 역사상 최저점에 근접한 지점에서 예상치 못하게 추가로 인하된 것은 부동산 가격 상승에 직접적이고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준금리 인하가 정말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친 것일까? 이것을 확인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주식, 채권, 부동산의 수익률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만약 지난 한 해 자산 가격이 상승한 것이 부동산뿐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제한적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신성한 힘이 존재하며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의 부동산을 무지하게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동산 불패 신화가 절대 허구의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훨씬 편할 것이다. 생각 같은 거 할 필요 없이 돈이 생길 때마다 부동산을 사면 돼테니까.
그러나 지난 한 해 가격이 오른 것은 아파트뿐만이 아니다. 모든 자산의 가격이 올랐다. 미국 주식이 올랐고 일본 주식이 올랐고 한국 주식과 채권도 올랐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는 모든 자산 가격에 강항 영향을 미쳤다. 오르지 않은 것은 결국 내가 보유하고 있는 예금과 전세보증금의 가치뿐인 것이다. 약간의 위로가 있다면 월급이 좀 올랐고 개인형 IRP 수익률이 16%를 넘었다는 정도일까?
그렇다고 할지라도 속이 쓰린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부동산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금융자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국 예상하지 못한 중요한 뉴스와 기준 금리 변동뿐이다. 그런데 부동산에서 흔히 회자되는 인구변동, 가계부채, 경제성장률, 주거행태, 주택 공급량, 개발호재 같은 요소는 이제 너무 진부해져 버린 사실들이다.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며 예상할 수 없었던 뉴스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러나 기준금리는 그렇지 않다. 기준금리는 끊임없이 움직이다. 게다가 기준금리는 지금과 같은 저금리 상황에서 부동산에 더 민감하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까 기준금리 움직임을 예상할 수 있다면 부동산 가격을 예상하는 것은 문제도 아닌 것이다.
기준금리를 알고 싶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다. 도널드 트럼프에게 전화해서 미국 기준금리 어떻게 될지 물어보면 된다. 혹시 트럼프가 전화를 안 받으면 제롬 파월 FED 의장에게 전화를 해도 된다. 이들이 앞으로 미국 기준금리를 0.5% 정도 더 내릴 생각이라고 한다면 - 지금 당장 부동산으로 달려가 집을 사도록 하자. 한국 중앙은행도 분명 따라서 금리를 내릴 것이고 그러면 부동산 가격이 추가로 10% 정도 더 폭등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0.5%를 올린다고 한다면 부동산 가격이 8% 정도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오늘 저녁에 뭘 먹을지 모르는 것처럼 도널드 트럼트나 제롬 파월도 내년이나 내후년의 기준금리가 어떻게 될지 모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실 기준금리 변동을 1년 단위로 제대로 예측할 수 있다면 부동산 같은걸 살 필요가 없다. 세상에는 파생상품이라는 신나는 시장이 존재한다. 금리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1년에 2,000%~20,000%의 수익을 내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 누구도 기준금리 변동을 정확히 예측하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 바로 올해 초에도 모든 경제주체가 잘못된 금리 전망을 바탕으로 다 함께 얼마나 뻘짓거리들을 했었던가.
금리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동산이 어떻게 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요즘 들어 나보다 일찍 태어났거나, 결혼할 때 엄마 아빠가 골수를 많이 뽑아준 덕분에 나에 앞서 집을 샀던 사람들이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고 자랑하며 내 복장을 긁는 경우가 많아졌다. 당당하게 다가와서 다짜고짜 거주지와 거주형태를 묻고 - 자기보다 떨어진다 싶으면 우월감을 표출한다. 이제 사람들은 이런 것을 예의 바르게 숨기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은 자신이 개발호재나 입지분석을 잘해서 부동산 가격이 오른 것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헛소리다.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다. 운 좋게 미국이 기준금리를 떨어뜨렸고 그래서 부동산 가격이 올랐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누군가 부동산을 통해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별로 불만이 없다. 이들이 내 복장을 긁는 것도 괜찮다. 내가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안락함을 우월함으로 포장하려는 시도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안락한 곳에 누워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스스로를 단련하는 사람들이다.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이 부동산이나 그것을 가지고 복장을 긁으려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신경을 끌 수 있기를 바란다. 어차피 금리는 알 수 없으며 당신이 무슨 짓을 한들 그것에 티끌만 한 영향도 미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예상할 수 없고 영향을 미칠 수도 없는 것을 다루는 유일한 합리적인 반응은 신경을 끄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나는 스타벅스를 좋아할 당신이 검소하게 살기를 바란다."라는 글에서 재테크를 통해서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이야기했었다. 그때 나는 재테크를 하는 이유가 모든 탐욕스러운 이야기들을 거부하고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했다. 이 생각에는 지금도 변화가 없다.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면 다른 사소한 것들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알 수 없는 것, 영향을 미칠 수도 없는 것에 신경 끄고 좋아하는 것을 하기를 바란다. 스스로 강인해지기를 바란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니까.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고, 자신이 가진 가능성에 대한 베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일 때 바라건대 잭팟이 터질 것이다.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러하다. 그래서 삶이 지루하지 않다.
나는 스타벅스를 좋아할 당신이 검소하게 살기를 바란다 중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에
B형 은행원이 쓴 글입니다.
검소한 삶에 관한 이야기들
나는 스타벅스를 좋아할 당신이 검소하게 살기를 바란다.
은행과 예금에 관한 이야기들
파산과 개인회생에 관한 이야기들
펀드에 관한 이야기들
나는 한 번도 펀드로 10억 번 사람을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