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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Nov 25. 2020

사랑한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야.

네가 나의 모든 것이 아니라서 미안해.

삶은 하나의 마카롱 같은 것이다. 혼자 먹기도 한참이나 감질맛 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삼등분했다. 그 중 한 조각은 아이에게 주었다. 다른 한 조각은 아내의 몫이다. 그리고 남은 한 조각이 있다. 그것은 나의 몫이다. 나는 1/3으로 쪼그라든 시간 속에 글을 쓰거나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하곤 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마카롱 하나로 세 사람이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이는 아빠의 시간에 굶주려 있다. 아내는 남편의 시간에 굶주려 있다. 나는 나의 시간에 굶주려 있다. 우리 집에는 나의 삶에 허기진 세 가족이 살고 있는 것이다. 허기를 느낄때마다 우리는 마카롱 부스러기를 두고 싸우곤 했다.




내가 아이에게 잘라준 1/3의 삶은 모두 놀이를 위해 소진된다. 놀이터에서, 키즈카페에서, 거실에서 아이와 나는 놀이를 한다. 아이와 놀아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아이에게 이제 네 몫의 마카롱을 모두 먹어버렸으므로 놀이를 종료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제 놀이시간이 모두 끝났어.”라고.


1/3의 부스러기 같은 시간이 아이에게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아이는 내게 묻는다. 어째서 나의 마카롱 조각을 모두 자신에게 주지 않는 것이냐고. 왜 항상 자기와 놀아주지 않는 것이냐고. 왜 아빠는 항상 다른 일을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럴 때면 내 몫의 마카롱에 대한 아이의 굶주림을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아이의 온 세계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말해야 한다. 어떤 이메일은 지금 당장 답변하지 않으면 다시 답장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떤 글감은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쓸 수 없다는 것을, 가끔은 미칠 듯이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 그런 날이면 내가 지독한 편두통을 앓는다는 것을, 나 또한 너 만큼이나 나의 삶에 굶주려 있음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미안해. 이건 내 조각이야. 네게 줄 수 없어."라고. 나는 차갑게 말하기 위해 노력한다. 마카롱은 차갑게 먹어야 맛있는 음식이니까.


그러나 나는 아이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다.


“사랑해. 사랑한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야. 네가 나의 모든 것이 아니라서 미안해. 욕망이 없다면 이처럼 아프지는 않았을거야. 좋은 작가이지 못한 순간과 좋은 아빠이지 못한 순간이 중첩되는 공간에 휘청거리는 일상이 있어. 그러나 내 몫의 1/3 속에서 내가 살아있다고 느껴.


나는 네가 너의 삶 모두를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기를 바래. 네가 그 누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와 상관없이 언제나 자신의 몫을  남겨 둘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래. 때때로 네 몫의 삶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한없이 차가워질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래. 그것이 자식이건, 연인이건, 부모이건 상관없이.


내게 이런 말을 할 권리가 있다고 느껴져. 나는 네게 이미 1/3의 마카롱을 주었으니까”라고.




나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노트에 글을 끄적이고 있었다. 아이가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가지고 와 내 옆에 함께 엎드렸다. 나는 글을 썼고, 아이는 그림을 그렸다. 함께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문득 생각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각자 몫의 1/3을 합쳐 2/3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가 합친 2/3 속에서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화를 보는 상상을 했다. 어쩌면 달리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삶이란 1/3으로 부족한, 그러나 2/3으로는 충분한 마카롱 같은 것이 아닐까? 오늘은 어버이날 - 나를 위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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