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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윤 Aug 24. 2022

이물질의 시간

달과별과꿈과시와술과책,그리고너와나와빛.


외롭게 부유하는 단어들을 애써 붙잡고 조촐한 밤의 깊이로 들어가자


매우 시적이고 사적인 시간에 깊음으로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 다른 것 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토록 서로 닮은 것 일까.


노래를 해야 하고 시를 써야 하고 색을 그려야만 하는 사람들 간의 같음과 다름

그 높고 낮은 기분의 음역대를 우리는 다 견뎌보아서


내가 저 멀리 높을 때 그리고 내가 저 아래로 깊을때에도

나는 당신을 그리고 그 당신들도 나를 헤아리고 만다.


매정하고 무정하지만 뜨겁고 깊은 사람들


예술인의 밤, 가장 시적인 순간


나는 거기로 간다




우리는 안녕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도무지 섞이지 못하는 관계 안에서 우리는 유일한 접점만을 남기고 자신의 음역대를 살자


그들이 열심히 장사를 하다가 마음의 양식 혹은 예술 나부랭이처럼

그런 쓸모없지만 고가의 우아한 장신구가 필요할 때 나를 찾아오면 그만이고


우리가 그런 쓸모없지만 영원하고 우아한 예술이라는 물기에서 헤엄을 치다가 현실적으로 당신들의 기술이 필요한 시간에 땅바닥으로 돌아와 속세를 가득 머금은 종이 조각으로 값을 치르고 당신을 조금 이용하면 그뿐


그렇게 잠시 목적을 두고 만난 우리는 그 순간 서로에게 유일하고 감사한 존재가 될 테지

그러나 우리는 오래 섞이면 섞일수록 해로웠다.


독처럼, 나쁘게, 해로웠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목적하는 순간에 잠깐이나마 진한 만남을 갖고

다시 당신들은 땅바닥에 그리고 우리는 물기 깊숙한 곳에서 서로의 영역을 살면 좋겠다고


이 밤 누군가의 행위.

미세한 소리의 높고 낮음의 조합이 음악이 된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수백억의 선들이 이리로 저리로 서로를 가로질러 한 폭의 그림이 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단어들을 집어 들어 예쁘게 나열하여 시를 만들고 그런 문장들로 글을 짓는다


이 영역에 내가 산다


다른 영역에 갔다 나는 불에 데이는것 같은 아픔과 공포와 환멸을 경험하고는 울어야만 했다.

별 수가 없었다. 건조한 이곳에서 물기가 필요해 우는 수밖에는

슬퍼 우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데인 곳에 떨어진 눈물방울의 소금기가 고통을 가중한다

그 화력을 이겨 내지 못하고 소멸된 눈물방울이 애처로이 가엽다

슬퍼 떨어지지도 못한 내 몸의 수분이 소멸될 때 되려 나를 고까워한다




밤이 찾아오면 드디어 나는 깊어지고 짙어진다.


스틸레토 힐을 가방에 넣은 채 플랫을 신고 신호등을 가로지르거나 출근 시간에 쫓겨 삐뚤게 걸린 넥타이를 고쳐매며 화려한 남의 빌딩을 자신의 터라고 착각하며 뛰어들어가는 사람들의 한숨과 소음에서 벗어난 오롯한 우리들의 시간

그 깊이 있는 시간에 빤짝이고 생기가 일어나는 사람들에게는

힘이 있고 자아가 있고 이고가 있고 '나'가 있다

그것은 오롯한 것


너와 나는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좋았다


우리가 그들과 한데 섞여 뭉치려는 순간 알았다


우리 때문에 그들도 부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내 영역으로 몸을 돌려 훽 뛰쳐간다


우리는 힘을 주어 뭉치려 하지 않아도, 가까워만 져도 철썩 붙어 버린다,

마치 자석처럼


그들에게 필요한 반딩은 무얼까,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나는 그런 것이 될 수 없었다


내가 빠진 그들의 끈기가 아련했다


그것이 되려 보기 좋았다


서로의 골이 다르다는 것, 농구공이 축구골대에 들어가 봤자이고

축구공이 농구대를 넘어봤자 쓸모가 없듯 나는 내 골대를 찾아간다

의미 없고 쓸모없는 헛발질과 손목 스냅의 낭비가 없도록

어이없게 농구 코트에 떨구어져 있던 축구공이 잔디밭으로, 제 영역을 찾아가는 것이다


외롭고 서럽고 속상한 너와 나


우리는 재질이 같지 못해 헤어지는 것,

가끔의 접점에서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

그것 말고는 서로에게 이유가 없다


나는 밤에 생기를 갖는 이들에게로 내 달린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이유가 없다


우리는 함께 음악의 볼륨을 높인다

밤과 꿈과 시가 있는 예술인의 시간.


매우 시적이고 사적인 밤에 깊이로 함께 다이브 한다




어쩔 수 없이 돈이란 걸 벌기 위해 조직 생활을 할 때 내가 속한 조직과 협력사였던 큰 기업의 매니저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았던 날 나는 내가 매우 잘못된 곳에 불시착하게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피라고 착각하는 붉은 미오글로빈이 흐르는 프리미엄 고기를 썰어 입안에 넣고 오물 거리며 연신 넘버와 돈과 골과 팀 따위를 발음했습니다. 그들은 같은 말을 반복했으나 나는 아무리 듣고 들어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 황망하던 밤. 그것이 혹시 나의 모국어가 아닌 제2 외국어이기에 그랬던 걸까 하고 세종대왕님의 발명품인 나의 모국어로 언어를 고쳐봤자 소용없다는 것에 나는 붕괴하듯 휘청였습니다. 나는 어떤 논리적인 국어 선생님이 그들의 대화를 내게 이해시키려 해 봐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포기했습니다.

어쨌거나 열심히 인간을 설득해서 그들의 지갑을 열어젖혀 우리 (그곳에 내가 포함된 것인지 아닌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의 골을 달성하자며 으쌰 으쌰 신이 난 그들의 골 이란 내게 어떤 득점의 기쁨도 주지 못할 듯 보였고 우리를 묶어 팀이라고 부를 때 재질이 다른 내가 섞이는 바람에 이 조직은 약간의 찰기를 잃고 물기가 마른 밀가루 반죽의 균열처럼 자꾸만 어그러지고 부서지며 벌어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이물질이었습니다. 종이 다르고 재질이 달라 튀고 도드라지는 싹.

나는 스스로 패어지길 원했습니다. 내가, 이물질이 섞인 팀은 흉물스럽게 부스러 지기 마련 이니까요.

나는 이물질인 체로 고작 고까운 푼돈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아 함께 고기를 썰고 와인을 홀짝거리는 내 모습이 너무 가식적이어서 스스로를 매우 역겹고 환멸스럽다 여겼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차라리 환멸스러운 체로 그들이 피라고 착각하는 미오글로빈이 흥건한 고기를 씹는 입술 위에 음흉한 비웃음을 몰래 올려붙이는 일은 그 지겨운 자리에서 되려 약간의 희열을 느끼는 찰나 이기도 했으니까요. 그것은 은밀한 기꺼움이 되어 주었습니다. 나는 그 덩어리 속에서 피라는 이름을 가장하고 붉게 흐르는 미오글로빈이 된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붉게 위장을 한채 완벽히 그들을 속이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같은 인간 군상은 우리 스스로가 이물질인 것이 되려 자랑스러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골이나 넘버 따위와는 무관해도 너무 무관한 사람이었습니다. 남의 지갑을 열어 우리(거기 내가 속했다면)라는 무리 안의 우두머리를 먹여 살리는 일에 힘을 보탤 마음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나는 그런 것에 내가 먹고 마신 것들로 발생하는 '나의' 에너지의 1도 사용하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으로 그득한 예술가 나부랭이 이니까요. 다시 한번 말 하지만 나는 이런 사람들과 (오해 마십시오. 그들은 사회적으로 모두가 꽤나 대단하며 능력있는 사람들 입니다) 이런 목표에 내 열정과 노력을 나눌 마음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내게는 무척 매우 유해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이물질인 내가 박혀 있는 것이 과히 좋지는 않겠지요. 전쟁터에서 백기를 끌어안고 싸우기 싫다며 뭉개고 앉아 노래나 흥얼거리는 평화주의자는 총질 칼질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는 그저 쓸모없을 뿐 이니까요.

나는 그 저녁 시간 내내 어서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음악을 듣고 아무거나 시집이나 소설 따위를 들고 읽고 싶은 충동 밖에는 없었습니다. 온통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이 더러운 오물을 덮어쓰고 앉아있는 듯한 찜찜한 기분을 개운하게 씻어 내릴 방법 같았으므로 나는 그 시간만을 갈망했습니다.

밤은 깊어 가는데도 그들은 전혀 낭만과는 가까워지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따듯한 식기에 담긴 좋은 와인과 음식을 먹으면서도 돈과 넘버와 골 따위, 타인의 지갑을 열어 거기 들어있는 그들의 경제 활동의 결과물을 착취하는데 혈안이 된 그 행위를 고급지게 비지니스라 칭하는 그들은 그렇게 밤이 깊어 가는데도 시나 음악 따위 그런 낭만과는 무관하며 이상한 이방인의 말들만 쏟아 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밤이 깊었는데. 강물 위에 비친 쏟아지는 불빛들이 별처럼 아름다웠지만 아무도 창문 밖의 그 아름다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흐르는 강 위로 들리던 음악은 차라리 소음에 가까운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저런 쓸모없는 말 대신에 음악을 듣고 싶었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지금, 이런 아름다운 늦여름 밤에 저런 말 밖에는 할 수 없는 것 일까? 의악스러울 뿐입니다. 창밖에는 달과 별이 떠 있고 이 공간 안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으며 술과 초와 열기가 있는 밤인데도 그들은 내가 보기에는 소매치기나 사기꾼과 하등 별 다를 것 없는 수법을 열거하는 일로 낭만 따위는 쉽게 깔고 뭉개 버리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앉아 가식 웃음을 짓는 나 스스로가 또 한 번 환멸스러웠습니다. 그 환멸이 주는 희열, 그러니까 그것이야 말로 꽤나 음흉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요. 피처럼 붉은 미오글로빈 처럼.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 그 환멸과 경멸의 밤을 견딘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약간의 와인과 한여름밤의 열기와 여러 잡다함에 취해 저런 일기를 끄적였습니다. 마침표도 제대로 찍지 않고 맞춤법도 무시하며 그날 밤 나는 무언가에 취했거나 무언가에 휘청이는 기분으로 밀려 나오는 것을 써 내려갔습니다. 쓰지 않고는 오물을 밀어 낼 방법을 찾지 못해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배설물 같은 글자들을 밀어냅니다. 모두가 고기와 와인과 비지니스 따위에 배가 불러 잠들었을 그 밤에 나는, 나만은 쓰고 있는 것이 한편 나를 절망하게 했다(왜 나는 남들 같지 못할까) 한편 나를 희망하게 했다(그래 난 남들과는 다르다) 하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이물질이 되어 이질감을 견디거나 혹은 즐기는 사람들의 시간.

시와 낭만 따위가 밀도 있게 축적된 집의 밤은 나를 단번에 시적인 예술인으로 신분을 바꿔 줍니다.

밤, 어딘가에서 멜로디를 만들고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허구의 망령들을 활자로 옮기며 밤과 술과 달과 시 따위에 취한채 고립되어 드디어 진실된 소통을 하는 지구상의 이물질들.

넘버와 돈과 골과 타인의 지갑을 열어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일을 비지니스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와인과 고기로 부른 배와 더불어 하루의 고단함을 이기지 못해 잠든 시간. 무언가에 굶주린 시인이 깨어나는 시간.


그 순간 이물질은 특별함이 되어 밤을 누립니다.


모두가 잠든 밤.

그렇게 매우 시적인 시간 속 촉촉한 물기 안 깊은 곳 으로 우리(이물질들)는 함께 다이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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