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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15. 2018

기레기라는 계급장을 뗀 알몸의 나에 대한 단상

#단상

    기레기.
    기자+쓰레기.
    기자를 비난할 때 쓰는 신조어다.
    나는 이 말에 대해서는 언론계가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를 포함해 지상파, 종편, 보수지, 혹은 진보지까지 주류 언론의 책무를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한국 언론이 있는가. NO.
    그래서 그 비난을 달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기레기라는 말을 내뱉는 이면에는 '기자'라는 직업이 가진 기득권 내지 특권에 대한 질타가 내재해 있다.
    사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에게 세상사람들은 기레기와 같은 날 선 비난을 하진 않는다. 즉, 기자란 여러 혜택을 받는 존재라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셈이다.
    실생활.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 속으론 기레기라 욕할지 몰라도 면전에서는 상당한 대우를 해준다.
    일명 '와치독'. 경비견이라는 뜻의 이 말은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 지도층 또는 가진자에 대한 비판의 권리를 가진 존재인 언론을 가리킨다.
    아무리 나이 어린 막내 기자라도 한 출입처를 맡으면 기관장과 속칭 맞다이를 뜰 수 있는 위치가 된다.
    이런 쒼나는 상황에 한껏 취하다 보면 기자라는 계급장이 본체인 나를 집어삼키는 주화입마 상태에 빠지게 된다.(김용슨생님을 추억하며 무협용어를 써봅니다)
    이런 기자를 우리는 흔히 구악. 또는 요즘 말로 기레기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기자는 어딜 가나 환대는 아니지만, 최소한 무시를 당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기고만장하게 되고 여기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게 된다.
    내 경우는 기자라는 직업을 처음부터 택하지 않고, 이직하는 '행운'을 겪었다. 그래서 그나마 뜨문뜨문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한데 실제로 곧바로 기자가 됐거나 연차가 높을 수록 이런 구악 기질이 잘 발현된다.(모두가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이 그렇다는 것)
    물론 분명히 내가 출입했던 출입처에서는 나에 대해 '재수 없네', '어린 콩만 한 것이', '매뉴얼 찾기 전에 니가 한번 해봐라' 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사과를 받을 생각이 없는 상대에게 사과해서는 안 되지만 혹 그런 분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하다는 뜻을 전하고 싶다.
    다시 돌아와서 기자는 어찌 됐든 이러저러한 '대접'을 받는 존재다.
    비단 기자만 그럴까?
    내가 출입한 여러 출입처에서 나는 수도 없이 을에 대한 갑의 횡포, 병에 대한 을의 패악질, 정에 대한 병의 병신짓, 무에 대한 정의 정줄 놓은 행동을 목도했다. 우리 앞에서는 쩔쩔매던 사람도 피감 기관, 하도급, 밴더, 부하직원, 입찰업체 등에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것을 봤다.
    강약중강약.(강자에게 약하고, 조금이라도 강한 사람에게는 찍도 못 쓴다는 뜻)
    우리 사회의 권력관계 안에 자생하는 이 비극적인 악습은 뼛속 깊이 박혀 캐낼 길이 없어 보인다.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있지만, 기자로서 여러 현장과 사법기관, 집행기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을 돌아보며 깨달은 보편적 물리법칙과도 같은 현상이다.
    열심히 전북경찰청을 휘젓고 다니며 기고만장하던 주니어 기자 시절 칠렐레 팔렐레 하던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문득 생각해 봤다.
    나한테 기자라는 계급장이 없다면? 그래도 저분들이 나한테 이렇게 대할까?
    이 고민을 시작하면서 선과 악의 구분까지는 아녀도, 경우 있음과 싸가지 없음의 경계는 분명해졌다.
    이 물음은 선후배 사이에도 고대로 적용된다. 내가 선배가 아니었어도 저 후배가 나한테 이리 대할까?
    나는 최근 페북에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 어제는 성덕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맛보고 주니어 기자 시절 마냥 잠시 칠렐레 팔레레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아, 내가 기자라는 계급장이 없어도 저분들이 이렇게나 박수를 보내고 좋아해 주실까?
    사실은 기자가 젠 체하지 않고 실없고 도른 소리를 하니 조금 더 신기해하거나 관심을 받은 걸 거다.
    실제로 우리 페친 중에는 나보다 훠~~얼씬 재밌으신(도른도른한) 분들이 계신다.
    살면서 한 번씩 계급장을 떼어보자. 나는 쥐뿔도 없는데 뭘 떼? 아니다. 있다. 잘 생각해보고 계급장을 떼어보자. 실제로 직장을 때려치우라는 말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떼어보자.
    계급장을 떼고도 지금의 행동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가 반문해보자.
    항시 답은 멀리 있지 않다. 경우 있는, 싸가지 있는 사람이 되자. 계급장을 내려놓아도 상대방이 지금과 같이 나를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돼 보자.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게 기자생활을 하면서 글재주도 없던 내가 그나마 살아남았던 유일한 생존 비결이었던 것 같다.
    여러분 우리 최초의 원시 시절로 돌아가 알몸이 돼 봅시다. 계급장 떼고 도른척해 봅시다. 쓰다보니 너모 야해서 더는 못 쓰겠네요.
    온수매트야 너도 이제 커버를 좀 빨 때가 됐다. 이리와 내가 벗겨 줄게. 아잉 부끄러워하지 말고. 크득크득.
#단상 #일병김진방 #계급장사회나가면암소용없다 #육군대장도전역하면동네아재 #계급장을벗고~처음만났던너~ #월간김진방

++여러분 저를 더 막대해 주세요. 저 사실 엄청 어리버리합니다. 응. 진짜라구요. 셀럽 같은 거 안 되도 좋으니 그냥 지금처럼 막 말 걸어주세요. 항상 경우 바른 사람이 되겠읍니다.
++이 세상의 조은 기자는 죽은 기자 밖에 읎다. -홍보실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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