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번역가 K가 사는 법
불초 제자인 내가 이 책을 샘에게 선물 받은지도 어언 3개월이 됐다.
안타깝게도 인쇄본이 아니라 전자책으로 보다 보니 이북리더가 없는 내가 책을 읽기가 좀체 쉽지 않았다.
더구나 요새 노안이 슬슬 오려고 하는지 핸드폰 화면도 잘 안 보이고, 근래에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책을 더디 읽게 됐다.
서평의 이런 도입부가 책을 늦게 읽은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일단 제자로서 예를 갖추기 위해 주저리주저리 변명으로 서평을 시작해 본다.
이 책은 나의 대학 스승님이신 김택규 샘의 책이다.
번역에 대한 애정과 츤츤함이 누구보다 강한 샘은 이 책에 평소 번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잘 버무려 넣으셨다.
나야 샘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대부분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이 책으로 샘의 생각을 처음 접하는 번역가 지망생이나 일반 독자들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에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이 책을 읽어보면 번역가는 정말 쉬운 직업이 아니다.
나도 매일 중국 자료를 보고 기사를 쓰면서 번역에 대한 간접 체험을 하고 있지만, 전문 번역가에 비할 바가 아니다.
특히나 고전부터 웹소설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중국어 번역은 정말 난해하기 그지없다.
책에는 번역가, 그중에서도 중국어 번역가의 어려움에 대한 소회가 잘 담겨 있다.
이 책에 대해 서평을 쓰고자 했을 때 누구나 느끼는 번역가의 일에 대한 감상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우리 샘의 책이니까 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샘은 정말 츤데레의 표본이시다.
학교 다닐 때도 강의와 학생들을 정말 애정 하시면서 안 그런 척을 무척 하셨다.
특유의 그 시크함.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학생이 나타나면 물심양면으로 지지해주고 도움을 주셨다.
책에도 잠깐 나오지만, 본인의 번역서를 대차게 비판한 한 학생을 집요하게 싸이월드까지 뒤져서 연락처를 알아낸 뒤 '사도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에피소드야말로 샘을 정말 잘 드러내는 부분이다.
사실 대학생 때 나는 굉장히 사회에 불만이 많고, 건방지고, 불량한 학생이었다.
뭐든 샘들이 하는 말은 삐딱하게 듣고, 수업시간에 반항의 멘트를 서슴없이 날렸다.
샘은 그런 내가 귀여우셨던지 꽤 관심을 쏟아주셨다.
졸업 후에도 가끔 연락하고 지낼 때도, 또 책을 쓰겠다고 찾아갔을 때도 애정 어리고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봐주면서 조언을 주셨다.
나는 샘의 이런 성격이 번역가와 찰떡궁합이 됐다고 생각한다.
책에도 나오지만 번역가는 상당히 고독한 직업이다.
홀로 모든 것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번역도 번역이지만, 멘탈을 잘 잡지 않으면 그 바닥에서 살아남기란 정말 어렵다.
또 그런 고독한 중에 번역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이 직업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시크하면서도 일에 대한 열정이 필요하단 이야기다.
더욱이 가장으로서 가정을 돌봐야 하는 샘에게는 더더욱 냉철한 자기 관리와 성실하고 꾸준한 '노동'이 요구됐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책을 덮으면서 '정말 실수로라도 번역가가 되지 않길 잘했다'라는 생각과 함께 '샘은 학생 때나 지금이나 정말 존경스럽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초기 노안과 작은 핸드폰 화면에서도 술술 읽히는 샘의 문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내가 이미 여러 번 '자랑'한 것처럼 샘의 문장에는 산문임에도 리드미컬한 음률이 실려 있다.
평생 문학을 사랑하신 샘답게 번역서지만 자신만의 문체가 살아 있는 것이다.
활자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나는 번역서의 번역이 거슬리면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고, 기대했던 책이라도 끝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소설 '책물고기'를 비롯해 이중톈 강연 시리즈, 양자오 선생의 고전 읽기 시리즈 등 샘이 번역한 책은 단 한 번도 끝을 보지 않은 때가 없다.
난독증이 있는 나조차 한숨에 술술 읽어버릴 정도이니 번역의 참맛을 알고 싶거든 이 책을 펼쳐보면 된다.
아. 그리고 이 책의 본연의 목적을 생각해서 이 한마디를 꼭 남겨야겠다.
번역가를 지망하는 사람이라면 번역가의 완전체인 샘의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서평 #번역가K가사는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