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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수집가 Jun 08. 2024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놀랄 정도로 조금밖에 없었다

<살림지옥 해방일지> 이나가키 에미코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놀랄 정도로 조금밖에 없었다. 그것만으로 ‘아름다운 생활’이 완성되었다. 그러면 더 이상 필요한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있을 리 없다
‘이것으로 충분한 기분’ 이다.
그것은 내가 반세기를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하는 마음이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없다. 마침내 나는 인생을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인생이 정리되면 방은 이미 정리되어 있다.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놀랄정도로 조금 밖에 없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싶다. 글로 읽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정말로 그러하다는 것을 내 몸으로 직접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놀랄정도로 조금밖에 없는 사람의 삶은 아름다운 생활로 완성된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그런 아름다운 생활 속에서 매일 매일을 가뿐하게 소중하게 행복하게 가볍게 온전히 모두 100%완전히 실현하여 살고 싶다. 불필요한 잡동사니가 없는 집안에서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 파악한 상태에서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사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필요하면 1시간만에 모든 짐을 싸서 홀가분하게 이사할 수 있는 상태로 매일을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인생이 정리되면 방은 이미 정리되어 있다. 이 말은 어떤 말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내 인생에 중요한 것, 절대 없어서는 안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방은 딱 그것만 존재한다. 그러나 내 인생에 중요한 것, 절대 없어서는 안될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의 방은 이것저것 쓸데없는 것들로 가득하여 인생도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것들로 어지럽다. 나는 내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 절대 없어서는 안될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정리하여 '아름다운 생활'을 꾸려나가고 싶다. 매일 매 순간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오늘 하루라는 선물에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더 이상 필요한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는 '이것으로 충분한 기분'으로 감사하며 살고 싶다.




이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생활인가! 아무것도 없는 방, 낡은 가구, 장식없는 하얀 의상. 그것은 마치 유명한 다도 선생 센노 리큐가 추구했던 다실처럼 쓸데없는 것이 전혀 없는 공간이었다. 밖에서 살랑살랑 자연의 바람이 불어오는 듯, 거기서 나무의 초록 잎이 보이고 새소리가 조용히 들러오는 듯, 고요한 적막감과 풍요로으로 가득한 공간, 그것은 더할 나위없이 화려한 왕비의 방보다 훨씬 좋았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등을 꼿꼿하게 펴고바른 자세로 조용히 앉아 있는 왕비는 화려했던 궁궐에 있을 때보다 훨씬 빛났다.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에서는 고귀한 정신과 온화함이 조용히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런 왕비 앞에는 모든 가능성이 사방팔방으로 열려 있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권력이니 돈이니 하는 옹색한 탐욕의 세계를 가뿐히 뛰어넘는 인생의 모든 가능성이.


→ 이나가키 에미코가 한국 드라마 사극을 보다가 자신의 이상적인 미니멀 라이프의 이미지를 발견하는 이야기는 재미있다. 저자는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할 때 자신만의 이상적인 이미지, 꿈꾸는 삶을 상상해보라고 말한다.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삶의 모습을 이미지로 떠올림으로써 진짜 내가 원하는 미니멀라이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내가 꿈꾸는 아름다운 생활은 이런 것이다. 옷장에는 정말 아끼는 옷 딱 8벌만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 2벌씩 그래서 8벌.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는다. 옷은 나에게 그저 나를 감싸는 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반짝 거리는 눈으로 건강하고 발랄하게 그 옷을 입고 걷는다. 내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비싸고 화려하며 유행에 맞는 옷을 입은 순간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향유하는 순간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걷고, 그 속에서 살아있음을 진하게 느끼며 사진과 글로 그 순간을 기록한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요가를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힌다. 아름다운 것을 창조한다. 아름다운 예술(음악,미술)을 음미한다. 나의 아름다운 모습은 아름다운 자연 속을 걸을 때, 여행할 때,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며, 창조할 때이다. 예쁘게 나를 치장하고, 매일 비싸고 화려한 고급음식을 먹으며, 으리으리한 가구들로 꽉찬 넓은 집에 사는 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욕망도 없다.

가장 좋아하는 단 한벌뿐인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에코백이나 베낭을 가볍고 들러메고 아름다운 길과 자연의 좋아하는 풍경 속을 걷는다. 가볍고 경쾌하게. 그런 삶에 많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 인생의 모든 가능성이 사방팔방으로 열려있다. 돈과 탐욕, 물건과 소유욕을 가뿐히 뛰어넘어 나와 인생이 가진 본연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험하며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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