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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시옹 Jan 08. 2020

전쟁의 전운과, 1차 대전의 교훈을 잊어버린 세대

역사 이래로 예고되었던 예상되었던 전쟁은 없었다, 우연이 있었을 뿐

솔레이마니 참수 작전 이후 점점 더 고조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이란과의 핵 감축 합의는 사실 상 물 건너간 듯하고 이란이 미국의 이라크 공군기지를 미사일 타격하면서 쐐기를 박았습니다.

그냥 단순한 공군기지가 아닙니다. 우리로 따지면 오산 공군 기지가 북한의 미사일 공습에 의해 공격받은 것입니다. 이걸 짜고 치는 거네 마네 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요?


이란이나 미국이나 각 국가 정상들은 모두 전면전으로 확대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역사적으로 고위급들이 전쟁을 원한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고위급들이 이러다 말겠지 하고 시작한 무력분쟁이 커지고 커져 나중에 그들이 제어할 수 없게 되면서 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미 군주들은 자신이 다스리는 국가를 제대로 제어할 수 없었고, 오히려 군주들의 어설픈 조치 때문에 내부에서의 모순과 문제점은 더욱 커졌다.


지금 미국이나 이란을 위시로 한 중동 국가 등 자기 나라의 국민의 생각과 여론을 제대로 조정해주고 소위 감정을 누그러트려 줄 리더는 사실 상 전무합니다.

대규모 이민자의 유입으로 기존의 유럽 원주민과 이민자의 감정적 대립과 분출의 부재

원리주의 이슬람은 더 폭력적으로 잔혹해지는 데 반해 반대 세력은 그걸 숨기거나 미화하기에 바쁨

그러한 미화와 은 엄폐로 기존의 원주민들의 불만이 분노로 바뀌고 있지만 그걸 해소해 줄 창구가 부재

자동화로 인한 정규직의 감소로 인한 삶의 기반을 지탱해주고 이성을 유지시켜줄 경제적 사회적 기반의 붕괴

전 세계가 연결돼있어 역설적으로 전 세계인의 분노가 인터넷을 통해 표출되면서 전 세계로 퍼지는 분노의 전염

기술의 발달과 전 세계적 개발 열풍이 기술에 대한 환상을 강화시키며 마치 무력 분쟁이나 감정적 대립은 더 이상 현대 사회에서 커질 수 없는 일이라며 단정 짓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고 생각을 멈춰 버리는 현대인들과 그걸 부추기는 매체들

자본의 유입이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모든 문제는 자본과 돈이 투입되면 알아서 해결되리라 생각하는 사고를 부추기는 풍조

개개인의 분노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해 대응하기보다는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그냥 덮어 버리고 그 개인들이 마치 정신장애를 가진 환자처럼 몰아가는 정부와 언론 매체들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들이 이상한 것이라며 생각을 포기해 버리는 정치권과 그러한 구성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세력


이미 전쟁이 시작되고도 남을 이유를 열거하자고 하면 수 없이 많습니다.

1차 대전 이전에 사람들이 전쟁이 일어날 걸 알았을 까요? 그들은 아마 1차 세계 대전이 중 후반기에 들어설 무렵에 이게 진짜 큰 전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세계 대전이 크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쟁이 빈번해지고 많아지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면 그게 바로 세계 대전입니다. 분쟁 전과 전쟁의 유일한 차이는 국가 간의 선전포고가 있었냐 없었냐입니다. 분쟁 전이나 전쟁의 양상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말은 분쟁 전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자유와 삶 그리고 풍족함을 파괴하기에는 전쟁이나 분쟁이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발언으로 사실 상 중동 지역의 사람들의 감정을 고조시켰을 것입니다.

이 말은 반대로 만약 저 국민감정을 누그러트릴 만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지도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감정에 지도자와 국민 모두 감정에 휩싸여 전 세계적인 전쟁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반대로 만약 누군가가 실수로 클릭이나 버튼으로 어떠한 사소한 무기를 실수로 발사해버리는 순간 그 무기가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피격 사건처럼 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동화가 절정에 달한 지금, 어떠한 알고리즘적 오류로 인한 무기의 잘못된 투발이 단 한 건이라도 일어날 경우 돌이키지 못할 대 전쟁의 시대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자동화의 역설은 그 자동화를 만들어낸 인간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시스템을 구성했기에 반대로 오류가 일어나 어떠한 특정 부분을 잘못 건드리게 되면 모두 비슷하게 설계된 자동화 시스템이 연쇄적으로 작동해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빠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수로 상대방을 때려도 상대방이 신경 쓰지 않거나 용서해 주는 것은 상대방이 우리에게 쌓인 감정의 앙금이나 분노가 용서해 줄 수 있거나 신경 쓰지 않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현 상황에서 당하고 당한 중동 사람들이 서방 세계를 용서해 줄 수 있을까요? 이민자들의 유입에 삶을 잃어버린 유럽 사람들이 이슬람 이민자들을 용서해줄 수 있을까요?


상대방 기지에 미사일을 퍼붓고 사람이 죽고 수많은 이야기를 가진 개개인이 무기에 의해 죽어가는데 그걸 정치적인 전략이니 외교적 술수라니 몰아가는 것은 인간은 궁극적으로 감정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망각한 발언입니다. 또 그런 식으로 따지면 2차 세계 대전은 독일과 러시아 영국이 짜고 친 전쟁 베트남 전쟁은 미국과 월남 정부가 짜고 친 전쟁이라는 말이 되는데


그 두 전쟁의 결말이 어떠했는지는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돈을 갖다 줘도 아무리 발전해도 분쟁과 죽음 그리고 고통 속에 생겨난 사람의 처절한 감정은 절대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독일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홀로코스트 수용자 묘비 앞에 총리가 직접 가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입니다. 그 감정을 공개적으로 평화적으로 그 피해자와 가해자 또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엉킨 감정을 해소시켜 주지 않으면 그 문제는 언제고 다시 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전후의 교훈을 알았던 세대들이 2020년을 맞이하며 하나씩 역사책으로 사라지면서 그때 전쟁의 참상이 알려주었던 교훈이 잊혔습니다. 각국 리더들은 인간으로서 감정을 다독이고 해소해 주기보다는 전략적인 술수에 매몰돼 본질을 잊어버렸습니다. 기술과 돈에 취해 인간의 궁극을 잃어버리고 100여 년 전에 있었던 참상이 주었던 교훈을 잊어버렸습니다.

만약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혹은 중동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면 핵 합의니 뭐니 하니 그러한 전략적인 것 이전에 중동 국가를 직접 방문해 테러와 전쟁 희생자 묘비 앞에서 직접 추모하고 사과하고 그러한 복합적인 고난과 처절함에 직면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위로하고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을 먼저 했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테러 세력을 정리하고 평화를 정립하려 했을 것입니다.




드론이 개개인을 노리는 폭격 무기가 되지 않으려면

SNS가 전 세계인을 징집하고 선동하는 수단이 되지 않으려면

AI가 더 빠르게 사람을 분류해내 사람을 초고속으로 실시간으로 살상시키는 무기가 되지 않게 하려면

맞춤형 스마트 공장이 맞춤형으로 빠르게 살상 목적에 맞는 적합한 무기를 만들어내는 무기 공장이 되지 않게 하려면

친환경 에너지원이 실시간으로 자원의 제약 없이 기동 하는 기동 무기의 동력원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이전의 교훈을 기억하고 우리의 본질을 직접 위로하고 전쟁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개개인 존재의 소중함과 그 사람 자체의 소중함과 가치를 대화를 통해 직접적 대면을 통해 마주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수많은 이야기와 가치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폭격을 통한 죽음에 점점 둔감해지는 사회이지만 우리는 좀 더 개개인 그 자체의 죽음을 비통해하며 그것에 경각심을 가지고 더 적극적인 자세로 대처해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100여 년 전에 일어났던 우리의 실수를 또 한 번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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