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비아 YMCA
오늘은 엄마의 일기로 시작해본다.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소정이가 픽업을 요청한 숙소에서 픽업을 안 나왔다. 인터넷에 남겼는데 답을 못 받아서 안 그래도 걱정했는데 역시나 픽업 요청도 수락이 안된 것 같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골라야 했다. 소정이가 알아봤던 중에 YMCA가 있었다. 유스호스텔이니 국제적이고 믿을 만한 곳이라는 생각에 우선 그곳으로 이동하자고 했다.
그곳에 도착해서 상태가 안 좋으면 다시 숙소를 구해보기로 했다. 택시를 탔다. 시내에서 가깝다고 했는데 러시아워라서 1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직선으로는 15분인 거리라는데 신호등도 없고 중앙선도 없이 알아서 운전을 하는 택시 기사들이 신기하다. 심지어 이렇게 밀리는 차 사이를 다니면서 옷과 생활용품, 먹거리를 파는 장사꾼들도 있다.
소정이는 아직 숙소가 세팅되지 않은 것이 내심 불안한 것 같다. 갔다가 없으면 다른 숙소로 옮길 계획인데 너무 러시아워가 심해서 시간이 지체되었다. 겨우 도착했다. 주변엔 큰 병원과 학교가 있었다. YMCA는 큰 기숙사 같았다. 비어있는 방은 있다고 한다. 다행이다. 이미 늦은 밤이 되어버려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학생 기숙사로 방마다 번호가 붙여있고 화장실은 남녀로 구분되어 있었다. 우리 방은 3층이다. 다행히 우리가 들어간 방에는 우리 둘 뿐이다. 이틀을 예약했다. 이틀 후엔 사파리 투어를 떠나야 해서 장소를 이동한다. 취사는 아예 안되고 1층에 레스토랑이 있었다.
오늘은 전기 수급에 문제가 있어서 전기가 안 들어온다고 한다. 저녁시간이 되어서 1층의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소정이는 여전히 체한 것이 내려가지 않아서 금식을 했다. 전기만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저녁에 씻으러 가니 물도 안 나왔다. 심지어 화장실 물도 안 나왔다. 대충 물티슈로 닦고 식수로 헹구었다.
소정이는 밖에 일본 의대생 NGO와 만나서 정보를 교환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비행기를 타고 와서 그런지 너무 피곤해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
새벽에도 여전히 화장실 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침에 속이 안 좋은 소정이를 위해서 누룽지라도 끓여주면 좋으련만 취사시설이 없어서 불가능했다. 주변에 특이하게 과일 도시락 파는 곳이 줄지어 있다. 나는 과일 도시락을, 소정이는 바나나같이 속에 부담이 가지 않는 걸로 사서 먹었다.
아침에도 여전히 물이 졸졸졸 흐른다. 이게 고친 건지 원래 안 나오는지 슬슬 헷갈린다.
비행기 티켓이랑 사파리 예약으로 하루 종일 밖에서 돌아다니고 이곳의 고급 백화점인 야야 센터도 갔다 왔다. 간단한 장을 봐서 다시 숙소로 왔다. 1층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해야 하는데 오늘도 또 불이 나갔단다. 레스토랑은 촛불이 켜져 있다. 우리는 후레시를 켜서 고추장과 김을 찾아서 1층으로 내려갔다. 닭고기 스튜와 밥, 그리고 고추장과 김을 반찬삼아 촛불 아래에서 식사를 했다.
다행히 레스토랑에 연결된 곳에서는 물이 나와서 손을 씻고 숙소로 올라갔다. 아까 장 보면서 구입했던 멸치 종류와 맥주를 세팅하고 숙소에서 소정이랑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한잔했다. 오늘도 여전히 전기불이 없다. 내가 졸졸 흐르는 물에 세수하고 발만 씻고 왔는데, 소정이가 이용하려니 또 물이 안 나온다. 물티슈로 닦고 양치는 먹는 물로 해결했다.
화장실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좌변기는 고정이 안되어 나뒹굴고 대변은 옆에 쌓여 있었다. 아래는 새끼 바퀴벌레가 위에는 어미 바퀴 벌레가 기어 다닌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기분이다. 이 세상에 살면서 만난 가장 최악의 숙소인 것 같다. 번듯한 외관과는 달리 전혀 관리가 되지 않는 숙소였다.
소정이도 괴로운 듯하다. 너무 어두워서 짐 정리나 일기 쓰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불도, 전기도, 물도 안 나오는 곳에 우리가 있다니 이러한 열악한 환경 때문인지 유독 오늘은 집이 그립다.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다.
엄마의 일기를 읽으니 이날의 숙소의 상황이 생생히 떠올랐다. 사실 나 역시도 이 숙소는 인생에 남을 만큼 괴로운 숙소 중에 하나였다. 복도의 울림소리에 밤새 잠을 못 잘 정도였고, 전기는 매번 나갔고, 물은 씻는 도중에 끊겨버렸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헤드렌턴이 우리의 전기불 역할을 했다.
케냐로 이동하면서 숙소를 제대로 세팅 못한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사실 답변이 올 줄 알고 메일을 기다렸던 것이 화근이었다. 수족냉증이 있어서 핫 샤워를 해야 잘 수 있는 엄마가 지내기엔 너무나 열악한 숙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틀을 견뎌준 엄마가 고맙다. 지금 생각하면 현지 수학여행객이나 NGO 학생 단체들을 받는 기숙사형 숙소였나 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엄마랑은 이 날 밤의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날 숙소에서 헤드렌턴을 켜놓고 맥주 한잔을 나눠 마시면서 이야기할 낭만이 어디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나 보니 낭만이 된 그날 우리는 엄마의 은퇴계획을 세우기도 했고, 내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한 에피소드도 나누었다.
둘이 만장일치로 이런 숙소는 돈을 줘도 못 있을 곳이라는 결론을 내었다. 이런 결론에도 불구하고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 엄마랑 이야기하던 그 기억들은 갈수록 또렷해진다. 엄마랑 함께 갔던 어떤 고급 호텔의 기억보다 더 생생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