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팡지게 나홀로 독박육아 12년째 두아이를 빡시게 키운지라 (우리아이들에 한해서)왠만한 육아의 난위도를 넘나들며 스킬구사를 할 줄 안다고 생각했으나 역시나 육아는 그리 녹록하지 않다. 익숙해질만 하니 아이들이 커버리고 다시 육아의 레벨이 어나더 레벨로 넘어가게 생겼다.
어제 저녁에 같이 오케스트라 수업을 다니는 친구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둘이 번갈아가면서 오케스트라픽업 일정을 감당하고 있다.) 어제는 그 친구가 픽업을 가줬고 오는 길에 아이들이 차에서 좀 다툼이 있었던 모양이다. 뒤에 앉았던 아들이 가지고 있던 핫팩으로 앞에 앉은 친구의 자리를 툭툭 찼다고 한다. 이유없이 그럴일이 없기에 왜그러냐고 그랬는데 아들이 별 말이 없이 이유도 없이 아니, 이유가 생각나지 않지만 그 친구가 뭔가 원인제공을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면서 그랬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사과도 했지만 찜찜하기 그지 없는 사과인지 아닌지 모를 사과를 하고 헤어지고 올라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 친구는 집에도착해서까지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과까지는 받고 싶지 않지만 이모인 내가 알게되면 좋겠다고 그래서 혼났으면 좋겠다고 했다.(ㅋㅋㅋ 귀엽다.) 우선 내가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뭔가를 판단하긴 어렵다 생각해서 아들을 먼저 불렀다.
나: 아들... 오늘 오면서 무슨일 있었어? 물어보니 역시나아무일 없었다고 한다.(왜 아들들은 아무일 없다고 할까? 그냥 불편한일 있었다면 있었다고 말하면 좋을텐데 ...)
아들: 아니... 아무일 없었어. (근데 이미 엄마가 뭔가 통화후에 물어본걸 생각하면서 말을 얼버무림)
나: 정말 아무일 없었어? 오면서 00이랑 좀 안좋았다고 하던데?
아들: 음... 어. 그렇긴 한데 별일 아니야. 그리고 나는 큰일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나: 아들, 큰일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뭔가 불편한 일이 있었냐고 묻는거야. 그리고 그게 큰일인지 아닌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느끼는거니까 불편한 상황이 뭐였냐고.
아들: 그냥 살짝...
나: 왜 무슨 일이 있었어? 엄마한테 설명해줘
아들: 그냥 운전석 시트 좀 쳤어.
나: 왜?
아들: 말하기 싫어. 내가 그거에 화난 이유를 말하는 것도 싫고 매번 결과도 똑같은 것도 싫어.
나: 왜 말하기 싫어? 엄마가 이모한테 듣기로는 너가 아무이유없이 시트를 쳐서 oo이가 불편하게 느끼고 울었다던데
아들: (말안하려다 억울함 복받쳐서 겨우 이야기함)원래 오면서 듣고 싶은 음악을 하나씩 돌아가면서 듣기로 했는데 내 차례가 되서 oo이가 핸드폰을 꺼버렸어.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 차례에 근데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야.
나: 근데 왜 말로 하지 않았어?
아들: 그냥 oo이가 안틀어줄것 뻔하니까 매번 그런식으로 한다고!! 그래서 나는 말하기도 싫어. 그리고 나만 혼나. 매번 나만 혼나는 것도 화나.
나: 아들.... 말하는 건 너무 중요해. 그걸 지금 너같은 방식으로 표출하면 (과장해서 말하면) 일방적인 폭력이 되는거지만 네가 말로 먼저 이야기하면 원인이 무엇인지 상대방도 알게되고 그쪽에서 먼저 사과하는 상황이 되는거야. 상황을 말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해. 그리고 너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고. 너의 의견을 말하거나 전달하지 않으면 동조의 의미가 되기도 해서 네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고.
아들: (울음폭발) 엄마 나는 말하기 싫어. 바뀌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도 그리고 그 상황에서 말하는 것도 불편하고 그 친구한테가 아닌 이모한테 말하는 상황도 불편하다고....
아들이랑 한참동안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원래부터 말이 많은 아들인데.... 유독 저런 이야기만 말 안하는거 뭐냐? 싶은 마음도 들기도 하지만 아들이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훅들어왔다.
무언가 바뀌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말하기싫어졌다는 것이 조금 슬프기도 했다. 물론 바뀔 수 없는 것들이 있지만 그런 발언조차 하지 않고 싶다는 것은 아이가 자신의 목소리가 어떤 힘도 낼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견고한 사회에서 자신의 작은 목소리가 먹히지 않고 얼마나 힘없는 아우성인지... 사회를 벌써 알아버린 것 처럼 느껴졌다. 물론 한두번의 작은 목소리가 그냥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 같은 순간도 있지만 이곳 저곳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여러번 계속되면 메아리가 쳐지고 공명이 만들어진다는 것. 그런 사회도 있다는 것을 아직 내가 알려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아직 본격적인 사춘기는 아니지만 아들의 감성과 감정의 변화가 조금씩 드라마틱해지는 것을 느낀다. 아이에게 너의 생각을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아들: 엄마, 지금도 oo이 엄마는 oo이 대신 엄마한테 일러바치잖아. 엄마는 나한테 매번 이야기 하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은 대신 해주거나 편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잖아. 왜 그 oo이는 엄마가 대신말해주는데? 나는 왜 맨날 내가 이야기 해야하는데?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또 그 말의 의미도 알것같았다. 아이가 홀로 그런 순간들을 마주했을때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용기가 필요하고, 그 용기를 내는 것이 힘겹다는 걸 느꼈다. 자신을 보호해줄 보호막이나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어릴 때부터 너무 독립적으로 키우고 싶었던 나의 바램이었을까. 유독 그런 환경에서 아이가 스스로 할때까지 기다리거나 뭔가를 대신 해주지 않았다. 결국은 아이가 선택해야 하는 일이고 그런 연습이 없이는 혼자 절대 경험하거나 이겨나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는데 아이에게는 버거웠던 걸까?
나: 아들, 너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해. 왜냐면 그래야 상대방도 알고 많은 사람들이 너의 의견을 선택할 수 있는거야. 상대방이 무조건 너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너의 생각 정도는 확인할 수 있고 또 너의 의견을 들어주는 확률도 높아져. 엄마도 지금 너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너를 그냥 혼내기만 했을꺼야.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는 육아! 즉 너를 키우는 가장 큰 목표가 너의 독립이야. 엄마가 없이도 살아가는 순간들이 조만간 와. 그때에 너는 정말 많은 것들을 결정하고 선택해야하는 순간들이 오는데 그때 너가 너의 의견을 말하고 의견을 조율하지 않으면 너는 너가 원하는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대로 살게 되고, 그 억울함과 화남은 온전히 너에게만 남아있게 되. 너가 커서 살다보면 너가 선택해서 해도 힘든일이 많은데 선택하지 않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타인의 선택으로 하게된다면 어떤 상황이 되겠니?
그리고 양육방식에 따라서 부모의 선택은 다 달라. oo이는 엄마딸이 아니라서 엄마의 양육방식을 적용할 수 없고, 이모의 양육방식을 엄마가 적용할 수도 없어. 그걸 일괄되게 누구랑 비교해서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여러번 다양한 예시를 들어 설명하다보니 아이도 어느정도는 이해를 하는 느낌이고, 마음도 많이 가라앉은 것 같다. 그래도 억울함은 얼굴가득이다.
나: 아들 살다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 특히나 어떤 조직에 가도 나랑 안맞는 사람들은 꼭 있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지낼 수는 없고, 학교도 사회도 마찬가지야. 특히나 이렇게 작은 도시와 공동체에서는 더더욱 그래. 때론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지만 서로 도와서 살아야하고 이해하는 것도 배우는 거야. 엄마 회사다닐때는 완전 미친놈도 많았어!!!
다행히 미친놈도 많았다는 말에 아들이 빵터져버렸다. 그렇게 아들의 한 서린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아들이 자란다. 벌써 아이가 겪는 사회인 학교에서 여러번 무력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의견을 이야기 하는 것이 묵살되기도 하고 이미 결정되어서 말할 필요가 없어진 선택들... 아들이 이런 무력감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메아리도 치고 공명도 있고, 같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할까?
어릴 때 육아는 몸이 힘들었다면 사춘기의 육아는 정신이 힘들다는 선배들 말이 생각난다. 나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아이와 상의하며 세계관을 만들어나가는 수밖에 없겠지... 또 한편으로는 아이가 자라면서 겪을 좌절감에 가슴 한켠이 시리기도 하다.
그 동안은 부모의 권위로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들도 이제는 하나 둘 문제제기가 시작될 것 같은 공포감도 있다. 그렇게 또 아이는 자라고 나의 육아 스킬도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인 듯 하다. 사춘기 선배들의 조언이 절실히 필요할 시점이다... ㅎㅎㅎ 도와줍쇼~~
2024.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