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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Oct 18. 2019

일과 휴식의 경계에서

작은 서점에서 일하는 일상 이야기 

나는 낮 12시 출근이라 아침 시간이 꽤 여유로운 편이다. 물론 아침에 늦잠을 자지 않아야만, 아침의 여유를 누리는 게 가능하지만 말이다. 하하. ‘매일 아침 한 시간씩 글을 써야지!’라며 다짐했지만, 지킨 적이 얼마나 되던가(눈물). 매번 9시가 넘어서 일어나니, 출근 전에 글을 완성하기에는 살짝 애매하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라고 한다면, 어쨌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물리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전처럼 직장에 다닌다면 아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을 거다.    

  

요즘은 나의 일상에서 일과 휴식의 경계가 살짝 허물어진 느낌이 든다. 서점에서, 아니 정확하게는 오키로미터에서 일을 시작한 후로, 이전과 다르게 일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고 느낀다. 가령 이런 순간! 주변에서 “요즘 일하는 거 어때?”,“주말에도 일하니까 힘들지 않아?”라고 물어보면, 나도 모르게 이렇게 답하고 있다. “나 요즘 놀 듯이 일하고 있어”라고.      


내가 오키로에서 하는 일은 온라인 주문자에게 가는 손편지를 쓰거나, 택배를 포장하는 일,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아 음료를 만들거나, 책을 계산해주는 일이다. 앗, 제일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하는 일이다. 서로 써온 글을 나눠 읽고, 책을 읽고 좋았던 문장을 따라 써보고 사람들과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이런 일들은 내가 오키로에서 일하기 전부터 이 공간에서 내가 즐겨 해오던 일이다. 즉, 내가 지금까지 즐겨오던 취미가 내가 해야 하는 ‘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돈을 번다는 건, 간절히 원해도 손에 잡히지 않는 ‘꿈’ 같았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야’라는 확신으로 들어간 첫 직장. 그곳에서는 정말 쉬는 날 없이, 밤낮없이, 오로지 일에만 몰두했었다. 분명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어느 순간이 지나자 일에 치이고 마음에 여유가 사라져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땐 정말 휴식이 간절했다. 


‘내 일상을 찾아야겠어!’라는 마음으로 들어간 두 번째 직장. 남들처럼 일주일에 5일을 일하고 주말에 2일을 쉬는, 제법 일과 삶의 균형이 잡힌 스케줄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 경험해보는 주말의 기쁨도 오래가진 않았다. 일하면 할수록 이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차올랐고, 결국 2년을 꾸역꾸역 버텨오다 일을 그만두었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이곳은 나의 세 번째 직장. 내가 자주 가던 공간이자 내 친구들이 일하는 곳이 직장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공간에 있을 때, 일과 놀이, 일과 휴식의 경계를 오가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종종 내가 일하는 건지, 노는 건지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다. 일하다가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유튜브 영상을 촬영하거나, 반가운 단골손님에게 좋아하는 책을 추천해주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 모임에서 재미난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빠져들 때 문득 그런 기분이 든다. ‘이렇게 웃으면서 즐겁게 일을 해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마 이게 정말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한 공간에서 수다와 아이디어의 경계를 오가며 몇 시간씩 떠들고, 퇴근해도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르면 카톡으로 이야기하는 일상이 버거웠을 지도모른다. 종종 손님들이 걱정하곤 한다. 한 장소에 이렇게 오래 있으면 답답하거나 지겹지 않으냐고. 나는 “아직 그렇진 않아요!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즐겁게 일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겠다고. 


이전까지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가능하지 않을까 희망을 품어본다. 일 모드에서 놀이 모드로 자연스럽게 태도를 이리저리 바꿔 일하면 어쩌면 ‘오래도록 즐겁게 일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내가 일하는 이곳은 나의 놀이터이자 휴식처이고 일터니까. 이렇게 나는 일과 휴식의 경계가 없는 삶으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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