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잊지 못할 알프스의 온천과 루체른의 밤

by 김산결

칼트바트 온천 (Rigi Kaltbad)


우리는 취리히에서의 짧고 아쉬운 하룻밤을 마무리하고 리기산에 위치한 칼트바트 온천(Rigi Kaltbad)으로 향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스위스에 대해 알아보다가 우연히 온천, 특히 노천탕이 유명하다는 내용을 접했다. 사실 나는 일반적인 온천이나 목욕탕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따뜻한 물이 온몸을 짓누르는 느낌과 그로 인한 무기력함 그리고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 싫었다. 하지만 노천탕이라면 얘기가 180도 달랐다. 몸은 따뜻하게 축 처지는 반면, 새콤한 공기로 머리는 맑아지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렇기 때문에 스위스의 노천탕은 여행 계획을 짤 때 나에게는 최우선 순위 중 하나였다.


그렇게 우리의 동선과 온천의 이용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고른 곳이 바로 칼트바트 온천이었다. 구글에서 찾아본 이 곳의 풍경은 그 누가 보더라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장소였다. 탁 트인 노천탕과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눈 덮인 알프스의 풍경은 머리가 맑아지는 것 이상의 압도감을 줄 것 같았다. 이처럼 큰 기대감을 품고 정한 장소이기에 한편으로는 사진이 과장된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취리히에서 리기산으로 향하는 아침은 보슬보슬 내리는 비로 시작되었다. 칼트바트 온천으로 가려면 리기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타야 했고,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하얀 비구름이 살포시 앉은 산 중턱을 뚫고 칼트바트 온천이 위치한 리기산의 어느 곳으로 도착했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것이 정말 다른 세상으로 온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일반적인 목욕탕이 아니라 온천이었기 때문에 수영복을 입고 입장할 수 있었다. 내부 온천을 거쳐서 사진에서만 보았던 바로 그 노천탕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곳은 사진이 보여준 것 이상이었다. 따뜻한 물이 내 몸을 감싸고 있었고, 때마침 내리는 눈과 기분 좋게 부는 차가운 바람이 알프스를 또렷이 볼 수 있도록 내 머리를 깨어주었다. 그리고 펼쳐지는 하얀 알프스의 풍경은 놀라웠다. 내 방 컴퓨터 앞을 제외하고 이렇게 따뜻하게 알프스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추위를 막기 위하여 눈을 이불로 덮은 듯한 기분이었다. 스위스에서 마주한 알프스의 광경 중 최고를 뽑으라면 단연 이곳이 아닌가 싶다.


이 여행이 끝나고 지금까지도 스위스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하면 나는 이 곳을 먼저 얘기한다. 그만큼 나에게는 인상적인 장소였고, 스위스에서 이 곳을 들리지 않았더라면 후회가 많이 되었을 그런 곳이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온천 시설이었기 때문에, 사진을 남겨놓지는 못했지만 그 날의 감상은 아직까지도 생생히 느껴진다.


칼트바트 온천(Rigi Kaltbad) (출처 : https://www.rigi.ch/en)


루체른의 악몽


리기산에서의 기분 좋은 온천을 끝내고 루체른으로 향했다. 취리히와 마찬가지로 물로 가득한 루체른은 그 자연에 걸맞은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인 카펠교로 유명한 도시이다. 늦은 저녁에 루체른으로 도착했기 때문에 숙소에 체크인을 한 뒤 카펠교의 야경을 가볍게 본 뒤 저녁을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카펠교는 목조 다리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했고 더구나 천장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나의 기분 좋은 발걸음은 그때까지였다.


루체른 다리를 건너자마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나오니 또다시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정말 스위스에서는 맑은 하늘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냥 맞고 가기에는 비가 꽤 많이 내렸고, 안타깝게도 우산은 챙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 당시 비를 피하기 위해서는 내가 입고 있던 코트를 뒤집어쓰는 것만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엄청난 오판이었다. 하지만 그걸 늦게 깨달은 것 또한 문제였다.


비를 피하여 작은 맥주집에 도착했고 친구들과 하루에 있었던 일을 즐겁게 얘기하면서 루체른의 밤을 즐겼다. 시간이 늦어 다시 호텔로 돌아가려던 찰나 계산을 하려다 보니 외투 안주머니에 넣어둔 돈 봉투가 없어졌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자그마치 600유로에 가까운 돈이었다. 분명히 저녁식사 비용을 계산할 때까지만 해도 있었다. 소매치기를 당하기에는 루체른의 밤거리에는 우리밖에 없었고, 소매치기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굳이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돈 봉투였다.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외투를 뒤집어쓰고 뛰던 바로 그때 돈봉투가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너무 늦게 깨달았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다시 가보았지만 떨어져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잡기 위하여 루체른 경찰서도 들렀지만 나에게 남은 건 이방인에 대한 스위스 경찰관의 인상적인 친절함뿐이었다.


결국 돈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덕분에 외국 경찰서도 들러보고 자기 일인 것 마냥 돈을 찾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준 친구들의 우전도 느꼈고 무엇보다도 소매치기보다도 나 자신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6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잃었지만 돌이켜보니 배운 것도 많았다. 물론, 바보짓임은 여전하다. 다행히 그 이후로 여행을 하면서 돈을 잃어버린 적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카펠교와 최후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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