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남들 Men of the Bench
안녕하세요! 벤치남들입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축개론 본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원래의 계획과 조금 달라졌지만, 앞으로는 주기적인 칼럼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시간은 풀백/윙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 텐데요. 사실 현대축구에 와서, '이 선수는 풀백이다', '저 선수는 윙백이다'처럼 풀백과 윙백을 구분하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에 같은 범주로 묶었습니다. 대신 이 양 측면 수비수들을 알아보면서 축구에서 이들의 역할은 어떻게 변모해왔는지를 주목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풀백/윙백은 위치상 수비라인에서 좌우 측면에 배치되는 수비수들을 지칭합니다. 주로 상대편 윙어(측면 공격수)들을 전담하며, 공격시 오버래핑(나중에 따로 다룰 내용이긴 합니다만, 여기서는 간단하게 공격 가담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을 통해서 크로스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풀백과 윙백의 차이는 어떤 포메이션을 가져가느냐에 따라 생기는 것인데요. 4백을 기반으로 하는 포메이션에서는 풀백으로, 3백을 기반으로 하는 포메이션에서는 윙백으로 구분합니다. 일반적으로 4백은 두명의 센터백이 중앙 수비라인을 구축하기 때문에 양측면 수비수들이 3백 기반 포메이션일 때에 비해서 조금 더 높은 수비 능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반대로 3백은 3명의 센터백이 중앙 수비라인을 이루기 때문에 양측면 수비수들이 4백 일 때에 비해서 수비 부담이 덜한 편입니다. 뭐, 수비 부담이 덜하다는 건 그만큼 공격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전술 변화의 흐름에 따라 풀백/윙백 할 것없이 공수겸장을 맡을 수 있는 자원들이 필요해졌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풀백/윙백의 구분이 사실상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따라서, 후술 할 내용에서는 풀백/윙백을 '사이드백'이라 묶어서 지칭할 테니 이점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사이드백의 역사는 1930년대 아스날의 허버트 채프먼이 고안한 'WM' 포메이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M자 형태를 이루는 수비수 5명 중 앞쪽의 2명은 경기장 중앙 정도의 위치에 있었기에 하프백으로, 맨 왼쪽과 맨 오른쪽의 수비수를 포함한 3명의 최종 수비수들은 풀백으로 불렸습니다. 양측 풀백은 가운데 풀백과 동일선상, 혹은 그보다도 더 뒤에 위치해서 전체적인 수비라인을 3 백형태로 가져갔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오프사이드 규칙이 개정됨에 따라 상대를 온사이드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비수 3명이 아닌 2명만 필요하게 되었는데요. 결국 하프백 한 명을 중앙수비라인으로 내려 2명의 센터백을 배치하고 양 풀백들은 공격에 가담시키는 4백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4백의 발전으로 인해 측면 수비수인 풀백은 전보다 활발한 전진과 공격 가담을 요구받았습니다. 대부분의 팀에서 가장 빠른 선수가 측면 공격을 맡았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위한 풀백의 빠른 스피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는데요. 뿐만 아니라 공수 전환이 자주, 그리고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체력도 상당히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높은 활동량과 공격력은 물론이고, 4백라인의 한쪽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수비력도 다 갖춰야 하기 때문에 사이드백 자원은 측면 공격수보다 높은 체력과 스피드를 요구하는 희귀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수비수로서의 수비 기술과 몸싸움, 크로스, 높은 축구 지능, 빌드업, 적극성 등등... 이쯤되면 느끼시겠지만 사이드백은 축구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네요.
현대 축구전술의 흐름에 따라, 사이드백이 가장 중요한 포지션 중 하나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뛰어난 사이드백의 필요성은 1990년대 중반부터 대두되었고, 실제 1990년 이후 월드컵 우승국들은 모두 최고의 사이드백들을 보유한 팀이었습니다(지금의 역할과는 상이할 수 있겠지만요). 98년 프랑스의 튀랑과 리자라쥐, 2002년 브라질의 카푸와 카를로스, 2006년 이탈리아의 잠브로타와 그로소, 2010년 스페인의 라모스와 카프데빌라 등등 당대 최고의 사이드백들이 활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측면 공격수들이 페널티 박스로 들어오며 플레이하는 '인사이드 포워드' 역할이 각광받으면서 직선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는 클래식 윙어 유형의 선수들이 뒤쳐지는 경우가 생겼는데요. 이런 선수들이 사이드백으로 전향해 재기에 성공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세비야의 헤수스 나바스, 유벤투스의 후안 콰드라도 등이 바로 그 예시인데요. 이와 같은 경우, 그들의 빠른발과 원래부터 좋았던 공격 능력을 기반으로 포지션 변경을 한 것이기 때문에 수비력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그것을 왕성한 활동량과 압박을 통한 협력수비로 상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요.
앞서 이야기한 인사이드 포워드의 등장은 새로운 형태의 사이드백도 등장시켰는데요. 현대 축구 전술의 트렌드로 자리잡기 시작한 이 유형의 사이드백은 자신이 키 플레이어로 볼 배급과 공격 전개를 주도하며 경기를 풀어나갑니다. 전통적인 사이드백의 공격 가담 방식은 재빠른 속도와 간결한 드리블, 그리고 날카로운 크로스로 측면을 무너뜨리는 것이었지만, 2010년대 이후에는 인사이드 포워드처럼(역할은 다르지만) 중앙으로 파고들거나 미드필더를 도와 후방 빌드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중앙 지향적 플레이(인버티드 풀백)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는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 상황에서 사이드백의 움직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요. 측면 공격수가 넓게 벌린 공간으로 중앙 미드필더들이 침투하면, 사이드백들이 그 빈 공간으로 움직이며 중원 싸움에 힘을 실어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현대 축구에서 사이드백은 공격작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팀에 제대로 된 사이드백이 없으면 측면에서 빌드업이 불가능해집니다. 따라서, 걸출한 양 사이드백을 갖춘 팀이 좌중우 3개의 방면을 통해 활발하게 빌드업을 진행할 때, 사이드백이 빈약한 팀은 항상 빌드업이 중앙으로 몰리며 공격 전개가 답답해지게 되는 것이죠.
전방 압박이 중요한 전술적 요소로 자리잡고, 이에 따라 선수들에게 다양한 역할을 부여하는 현대 축구에서는 기본기가 부족하고 공격력이 없는 사이드백은 전술의 유연/다양성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도태됩니다. 이렇게 다양한 능력이 필요로 하는 자리이다 보니,수비 능력이 보통 이상인 중앙 미드필더들이나 다재다능한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사이드백으로 포지션 변경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리버풀의 제임스 밀너나 아스날의 메이슬랜드-나일스 같은 경우가 그 예시이죠. 반대로, 사이드백에서의 좋은 빌드업 능력을 바탕으로 미드필더에서 뛰는 선수도 종종 있는데요. 바이에른 뮌헨의 다비드 알라바와 요주아 키미히가 멀티플레이어의 자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다양한 전술적 시도에 따라 사이드백들이 3백 포메이션에서 윙백이 아닌 좌우 측면 센터백(스토퍼)에 기용되기도 하는데요. 물론 기본적으로 강력한 수비력과 안정적인 빌드업도 필요로 하고, 제공권도 어느 정도 이상은 보여줄 수 있는 선수들이 이런 역할을 맡습니다. 예를 들자면 첼시의 아스필리쿠에타, 아스날 시절의 나초 몬레알, 맨체스터 시티의 카일 워커 등이 있겠네요. 이들은 경기 진행 상황에 따라 사이드백 고유의 돌파력을 이용하여 오버래핑을 시도하기도 하고, 감독에 따라서는 해당 선수를 풀백/윙백/센터백을 오가는 하이브리드 역할로 기용해 다양한 전술적 변화를 가져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최근의 사이드백 인기(?)에도 불구하고, 사이드백은 150년이 넘는 프로 축구의 역사에서 전술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가장 늦게 주목받은 포지션임은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입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지안루카 비알리는 "풀백은 측면 공격수가 될만한 기술력이 없는 선수, 센터백이 될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한 선수가 하는 포지션"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제이미 캐러거 역시 "윙어나 센터백으로서 실패한 선수들이 많이 풀백으로 서게 된다. 어릴 때 게리 네빌로 성장하고 싶어 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혹자는 "걸출한 사이드백들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았는데 빛을 못 본 포지션이라고 하는 거야?"라고 얘기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AC밀란의 레전드 말디니, FC바르셀로나 시절의 알베스, 리버풀의 로버트슨/아놀드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의 마르셀루 등과 같이 뛰어난 공격력과 수비력을 자랑하는 사이드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다른 포지션의 선수들과 비교해봤을 때에는 말이 달라지는데요. 앞서 말했던 것처럼, 빠른 스피드나 역동적인 움직임들은 대부분 신체능력을 기반으로 합니다. 평균적으로 인간의 신체적 능력이 정점을 찍는 시기가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라 이야기하는데요. 사이드백들은 신체 능력이 서서히 떨어지는 '에이징 커브(aging-curve)'가 오게 되면 더 빠르고 더 역동적인 젊은 유망주들에게 대항할 무기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센터백이나 골키퍼 그리고 스트라이커 등의 타 포지션들은 30대 중후반이 되어서도 신체적 능력을 제외한 부분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고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에 비교해보면, 왜 사이드백이 주목을 덜 받았고, 인기(선수들에게든, 대중들에게든)가 없었었는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는 가실 것입니다.
실제로 16-17 시즌 리그 내 최고 수준의 사이드백 플레이를 보여준 리버풀의 제임스 밀너조차도 풀타임으로 풀백은 뛰지 못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한 아스날 시절 마티유 플라미니도 사이드백으로서의 잠재력이 충만했었는데요. 하지만 미드필더로 뛰고 싶은 자신의 야망을 바탕으로 AC밀란에 FA(free-agent ; 자유계약)로 입단했었습니다. 그 곳에서도 레전드 잔루카 잠브로타가 그의 사이드백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지만 사이드백 대신 미드필더를 고집하다가 다시 FA로 아스날에 복귀하는 재밌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었습니다. 다른 예시로는, 소위 병장(?)축구로 비판받던 알렉스 옥슬레이드 체임벌린 역시 아스날에서 사이드백으로 준수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미드필더로 뛰고 싶어서 리버풀로 이적했었죠.
그래도 최근에 들어서는, 공격수처럼 높은 몸값과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보다는 확실히 나은 위상으로 대우받고 있기는 합니다. 이는 큰 이적료 상승을 통해 체감할 수 있는데요. 앞서 얘기했던 전술적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뛰어난 공수겸장의 풀백은 거의 준척급 공격수 이상의 몸값을 자랑합니다. 17-18 시즌 직전, 여름 이적시장에서 PL 구단이 사이드백 영입에만 2억 1천만 파운드(£210m)를 투자했는데요. 이는 역사상 가장 비싼 사이드백 11명 중 5명의 선수가 17-18 PL 여름 이적시장에서 탄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물론, 그 직전 시즌에 무리뉴의 첼시가 3백을 기반으로 한 사이드백 전략을 통해 PL 우승을 차지했던 것도 이적시장에서 사이드백의 수요가 많았던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이후에도 맨체스터 시티가 벤자민 망디, 다닐루, 카일 워커, 칸셀루를 영입하는 데에 약 £158m을 지불한 것이나, 토트넘이 세르주 오리에의 영입에 £23m를 지불한 것 등을 보았을 때 사이드백이 얼마나 희소하고, 또 높은 가치를 지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풀백/윙백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초기에는 11명의 선수들 중 제일 능력이 떨어지는 선수 둘을 배치하는 포지션에서, 빌드업을 주도하는 공격의 시발점이 되기까지, 풀백/윙백은 다양한 변화를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오늘 풀백/윙백 편을 끝으로 수비수 챕터는 끝을 맺게 됐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미드필더 챕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written by 문세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