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주치의 Apr 15. 2019

18. 나는 나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Epi.05. 용서. 육아. 양육. 강박. 불안. 무서움. 예민. 짜증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생각을 알아야 강박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에 민혁 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커피를 하시며 민혁 씨를 기다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제안을 민혁 씨에게 했고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지는 민혁 씨가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예전 민혁 씨라면 아마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아버지로서의 민혁 씨는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았다.


민혁: “... 참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선생님.”


Dr: “네. 맞아요. 쉽지 않죠. 그렇죠?”


민혁: “... 제 생각에는 선생님은 뭔가 눈치를 채신 것 같네요. 제가 여기서 다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는 걸요...


나만 민혁 씨를 보며 눈치를 챈 건 아니었다. 민혁 씨도 나를 보며 내 생각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민혁 씨가 남들과 다른 것은 아니다. 원래 누구나 마음을 모두 드러내기는 어렵다.  


Dr: “민혁 씨. 여기서 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어요. 다 이야기하는 건 어려워요. 민혁 씨가 어떤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다만 이 곳에서 자신의 내면에 담긴 생각과 감정을 내어놓을수록 집에 돌아가실 때에는 홀가분하지 않을까요?”


민혁: “... 홀가분할까요? 솔직히 선생님이 저를 이해해줄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Dr: "제가 민혁 씨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으세요?"


민혁: "... 네. 저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Dr: "제가 민혁 씨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면 제게 는 것이 많이 어렵겠네요. 민혁 씨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혹시 민혁 씨는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있나요?"


민혁: "... 저를 이해하냐고요?(수 초간 침묵) 저는 제가 용서가 안됩니다."


나는 이해를 물었는데 민혁 씨는 용서 말했다. 그는 지금껏 자신에게 를 묻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용서하지 않았다. 민혁 씨는 자신조차도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에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점점 고립된 것은 아닐까. 그런 이유로 민혁 씨는 아내와도 고민을 나누지 못하고 그저 혼자서 강박행동을 하며 내면의 불안을 처리해왔던 것은 아닐까.


민혁 씨는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아직도 쉽지 않았다. 그저 민혁 씨는 자신만 아는 비밀로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인 민혁 씨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아들을 위해서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기로 했다. 


민혁: “... 선생님. 저는 저 때문에 아들을 잃을 뻔했습니다.”


Dr: “네. 계속 말씀해주세요.”


민혁 씨는 고개를 들고 물끄러미 천장을 한번 본 후 다시 말을 이어간다.


민혁: “... 그때는 아마 아들이 생후 6개월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전날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해서 늦잠을 자고 싶었는데 아내는 친구를 잠시 만나고 마트에 장 보러 다녀오겠다며 저한테 3시간 정도 아이를 보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아들을 낮잠까지 재우고 나갔는데 아내가 나가고 1시간 정도 지나자 아들은 잠에서 깼어요. 잠에서 깨어난 아들은 엄마를 찾으며 울어댔어요. 저는 아들을 달래려고 안고 등도 토닥이고 그랬어요. 20분 정도 달래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오히려 아들은 더 자지러지게 울었어요. 저는 아들이 잘못될까 봐 걱정도 되고 전날 저도 일하느라 밤을 새워서 그런지 너무 감정적으로 힘들었어요. 이런 애를 두고 나간 아내한테 화도 나고, 머리도 터질 것 같고, 미칠 것 같았어요. 결국 저는 화를 참지 못하고 아들을 흔들며 제발 좀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리고 아들 목을 졸라서 울음을 그치게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제가 미친 것 같았어요. 제가 뭘 해도 아들은 달래지지가 않았어요. 제가 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소리를 칠수록 아들은 뒤로 넘어가며 자지러지듯이 울었고요. 아내한테 전화를 했는데 아내가 전화도 안 받더라고요. 분유를 먹이면 괜찮아 질까 해서 분유를 타서 먹여봤어요. 울면서 뒤로 넘어가고 자지러지는데 저도 화를 참지 못하고 아기 입에 분유를 강제로 먹게 하려고 팔에 힘을 주고 그랬어요. 아기는 더 자지러졌고 갑자기 아들이 토를 하는데 기도로 분유가 넘어갔는지 갑자기 아들이 숨을 못 쉬고 꺽꺽거렸어요. 저는 너무 무서웠어요. 진짜 숨쉬기 힘들어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의 모습에 놀라서 아들을 엎드린 채로 미친 듯이 집 옆에 소아과 병원으로 뛰어갔어요. 소아과에서 산소만 달고서 다시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어요. 응급실에 가서도 여러 명의 선생님들이 달라붙어서 응급처치를 하고, 바로 소아중환자실로 옮겨서 한동안 집중치료를 받았어요. 아들이 중환자실에서 수많은 줄에 연결되어서 고통받는 것을 보고 있는데 저는 죽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은 저를 위로하지만 저는 알잖아요. 제가 짜증 나서 아들 목을 조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자지러지듯이 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아들 입에 분유를 억지로 먹이며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걸 말이죠. 아내는 자신이 전화를 못 받아서 다 이런 일이 생겼다고 자기를 탓하라고 저를 위로했지만 저는 아내한테 제가 했던 생각과 제가 했던 짓을 말하지 못했어요. 그냥 아들이 잘못되면 저는 자살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을 뿐이에요. 당시 조금만 늦었어도 아들은 죽었을 수 있다는 담당 선생님 말에 저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웠어요. 제가 아빠라는 것이 제 아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통스러웠죠. 아들에게 별다른 후유증 없이 퇴원했지만 저는 아들을 보면 당시 숨 못 쉬던 아들 얼굴이 떠올라서 괴로웠어요. 그리고 아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무서웠어요.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그리고 아내가 복직을 하며 아들을 어린이집에 맡겼는데 그때부터 저는 더 불안했어요. 어린이집 선생님이 우리 아들을 때리진 않을지, 사고가 나진 않을지, 밥 먹다가 뒤로 넘어가진 않을지... 그때마다 제가 회사를 떠나서 아들을 보러 갈 수도 없고 어찌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무서워 죽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저는 뭔가 제가 깔끔하게 정돈을 하면 아들에게 아무런 일도 안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냥 그렇게 한번 했는데 아들이 별 탈 없이 어린이집을 다녀왔죠. 사실 크게 의미 없는 것을 알지만 만약 깔끔하게 배열하거나 정돈하지 않았다가 아들이 사고를 당하게 되면 저는 죄책감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어요. 그러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 아닌 거 아는데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선생님께서 아까 말씀하신 이야기를 듣고 이해가 되더라고요. 제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말이죠. 그리고 하나, 둘, 셋을 세고 행동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고요. 사실 선생님께 말한 것 외에도 저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흰색만 밟고 건너지 않으면 또 아들한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고, 볼펜을 쓰려고 누를 때에도 세 번 딸각거려야 아들한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 것 같고 그래요, 그냥 뭐가 하나씩 꽂히면 그대로 해야 돼요. 안 하면 불안해요. 선생님. 그렇게 아들이 다칠까 봐 걱정하며 살아왔는데...”


내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민혁 씨는 마치 가두어 놓은 강물을 방류하듯 내면에 가두어 놓았던 감정들을 무더기로 쏟아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바닥만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아직은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기다리며 민혁 씨를 바라보고 있다. 민혁 씨는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는 말없이 민혁 씨에게 티슈를 건넸다.


민혁: “... 그런데 그런 저 때문에 아들은 또 아프네요. 선생님.


to be continued...

매거진의 이전글 17. 내 책상이 불편한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