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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주치의 Apr 25. 2019

21. 부부 애착은 매우 중요한 안전 기지입니다.

Epi.05. 부부, 동행, 강박, 사과, 육아, 불안, 애착

나는 민혁 씨를 가정으로 돌려보낸 후 지난 일주일 동안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간을 보냈다. 민혁 씨는 아내와 아들에게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는 걸까? 아마도 민혁 씨가 친구였다면 전화해서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봤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 동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에는 민혁 씨가 스스로 나아가야 할 이기 때문에 나는 그저 한주 한주 기다리며 지켜봐야 했다. 만약 오늘 민혁 씨가 내게 차마 아내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해도 괜찮다. 이미 그는 더 이상 강박에 순응하지 않고 도전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진료실에 들어오는 민혁 씨의 뒤로 뜻밖의 동행자가 있었다.

 

가장 큰 휴식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민혁 씨의 아내인 지민 씨였다. 문을 열고서 들어오는 부부는 손을 잡고서 웃고 있었다. 민혁 씨는 아내를 자신의 옆 자리에 먼저 앉히고 자신은 내 앞에 앉았다. 전보다 강박증이 나았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지금 즐거워 보였다.


Dr: “오늘은 아내 분과 함께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좋네요. 두 분 같이 걸어오시는 모습이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동행하신 이유는?”


민혁: “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나서 그날 저녁에 아내에게 술 한잔 하고 싶다고 했어요. 집에서 아내와 저는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제 마음속에 있는 짐들을 아내에게 내려놨어요. 제가 당시에 힘들어도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거였는데 순간적으로 아이한테 짜증도 났고 나쁜 생각도 했고 분유를 급하게 먹이다가 아들이 잘못된 거였다고. 아내한테 미안하다고 했어요. 아무리 피곤하고 짜증이 나도 그래서는 안 되는 건데 제가 잘못한 거라고요. 그리고 아내는 제가 지금까지 그렇게 힘들어할 줄 몰랐다고 위로해줬고요. 아들한테도 아빠가   봤어야 했는데 미숙해서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어요. 아들은 무슨 말인지 멀뚱하게 저를 바라봤지만 이내 괜찮다고 했어요. 그리고 아빠가 정 미안하면 내일  사 오라고 하더군요. (웃음) 그냥 좋았어요. 마음도 전보다 편안했고요. . 그리고 아내는 오늘 같이 오고 싶다고 해서 왔어요.”


가끔은 내가 아이를 안아주는 건지 아이가 날 안아주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만큼 아이는 날 따뜻하게 안아준다.


Dr: ". 잘하셨어요. 아내분과 아들에게 마음 짐을 내려놓았네요. 정말 잘하셨습니다. 아내분께서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어떠셨나요?"


지민: “사실 그때 그 일은 저희에게 아직도 생각하면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운 기억이에요. 집중치료를 받는 아이 모습은 정말 힘들어 보였거든요. 사실 남편은 그렇게 말했지만 저 역시 그때는 육아에서 잠시 도망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일이 벌어진  넋이 나간채로 울고 있는 남편과 치료받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그때를 떠올리면 저도 다 알고 있었어요. 남편이 새벽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너무 잠시라도 육아에서 헤어 나오고 싶었어요. 남편이 아직 혼자서도 아이를 돌볼 만큼 아이와 친해진 것도 아닌 걸 알았고요. 분명 제가 볼일을 보는 3시간 동안 아이가 잠에서 깨면 제가 없을 때 자자지러질 듯 울고 남편이 곤란할 걸 저도 알았어요. 그런데 그때는 저도 너무 나가고 싶었어요. 남편이 평일에 내내 늦게까지 일하고 주말마저 제가 잠시라도 혼자 바람을 쐬지 못하면 또 저는 일주일 동안 아이만 바라보고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그냥 나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나가 있는 사이 그 일이 터진 것을 알고 병원으로 뛰어오는데 저도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온몸에 땀이 절여 있는 남편과 여러 선생님들에게 처치를 받고 있는 아들… 제가 3시간 나간 사이 그렇게 모든 일이 터져버렸잖아요. 남편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있었기에 어떻게든 저는 남편을 위로했어요. 남편은 제게 미안하다고 하지만 저는 남편이 그때 기억으로 불안이 심해졌고 아들이 다칠까 봐 불안해하며 스스로를 그렇게 강박시켜버렸다는 것이 더 슬퍼요. 남편을 도와주세요. 선생님.”


그의 잘못도, 당신 잘못도,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육아는 원래 그렇습니다.

Dr: “네. 그래요. 점점 더 좋아지실 겁니다. 아내 분도 남편의 그런 강박적인 행동이 이해가 되시나요?”


지민: “네. 원래도 좀 불안은 있는 사람이긴 했어요. 일을 해도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걱정하고 잠도 잘 못 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아들이 아프고 난 뒤에는 정말 강박적이라는 말이 딱 맞을 만큼 정리하고 부자연스럽게 말하는 거예요. 마치 로봇처럼 보일만큼 딱딱한 느낌? 뭔가 편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닌 느낌? 그래요. 남편이 그러더군요. 마리오네트 인형 같이 살고 있다고요. 마리오네트 인형은 다른 사람이 조종하는 거지만 자신은 자신 내면에 불안한 자신이 성인인 자신의 행동을 조종하고 있다고요. 이제는 남편이 왜 그렇게 부자연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 알 것 같아요. 그때 남편은 중환자실에 있는 아들을 보며 정말 넋이 나갔어요. 저도 미치겠는데 진짜 남편이 미치거나 자살할까 봐 제가 남편을 다독이고 위로할 정도였으니까요. 선생님이 좀 도와주세요. 남편 마음속에 있는 그 기억을 어떻게 해볼 수 없을까요?”


Dr: “그래요. 애초에 민혁 씨에게 아내 분과 이야기를 나누라고 했던 부분은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가족의 안정적인 지지와 공감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내과적인 것에 비유하면 환자 분에 대한 치료를 의사, 간호사도 하지만 가족분들의 따뜻한 보호와 챙김이 있으면 더 치료효과가 높잖아요. 그래서 제가 민혁 씨를 통해서 아내 분께 도움을 청한 겁니다.”


민혁 씨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부부관계라는 것은 안전 기지와도 같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상처와 시련을 겪는다. 그 상처와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과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흔히 말하는 자존감, 회복탄력성 등이 있다. 그리고 기혼 성인인 경우라면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안정적인 부부 애착이 형성되어 있는가 하는 이다. 안정적인 부부 애착은 구성원 각자에게 안전 기지로써의 휴식과 편안함을 제공한다. 각각 개인의 삶에서 상처 받고 다치고 깨져도 부부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서 배우자로 인해 충분한 공감과 지지, 사랑, 위로를 받으며 회복할 수 있다면 그는 다시 마치 전쟁터와도 같은 삶의 현장에 나가서 싸울 힘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안전 기지로써의 부부 애착이 그에게 제공되지 않는다면 그는 회복하지 못한 채로 아니면 더 상처 받은 채로 전쟁터에 나서는 군인과도 같은 것이다. 그만큼 이것은 중요하고 중요하다. 그리고 오늘 면담을 통해 나는 민혁 씨에게 든든한 동행자가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튼튼한 안전 기지가 형성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치료자가 민혁 씨의 치료 전면에 나설 차례가 된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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