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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주치의 May 01. 2019

22. 부부 애착은 그 자체로 치유효과가 있습니다.

Epi.05. 부부. 애착. 강박, 불안, 초조, 긴장, 육아, 가정

민혁 씨는 아내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치료를 시작했다. 우선은 민혁 씨는 지금까지도 너무 생생한 불안을 유발하는 당시 과거 경험을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민혁 씨는 지금도 현재가 아닌 과거의 경험을 반복하며 살고 있었고 과거 불안이 현재에도 지속되어 더욱 강박증세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처리하는 치료 방법은 우선 EMDR이었다.


"현재의 고통은 과거에 기반한다."


EMDR이란 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이라는 정신과적 비약물치료 기법으로써 Shapiro 박사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는 현재의 고통은 과거에 기반한다는 전제로 시작된 치료법으로 세계 보건기구인 WHO는 EMDR을 A급 외상치료로써 권고하고 있다. 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부정적인 생활사건을 다루는 데에도 활용된다. Shapiro 박사는 치료 개발 당시 양측성 안구운동이 갖고 있는 각성 감소 효과 그리고 급속 안구운동과 불안 사이에는 상호 억제적임을 발견하였다. 당시 이를 통해 “괴로웠던 기억이 더는 괴롭지 않게 되었다.”라고 보고하였다.


"급속 안구운동과 불안은 상호억제적이다."                                            "양측성 안구운동은 과각성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어떤 경험이든 개인이 갖고 있는 적응적 정보 처리 방식을 따라서 처리가 이뤄진다. 경험이 성공적으로 처리되면 그 경험은 적응적으로 저장되고 통합된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활 경험으로 인한 과각성, 불안 상태가 되면 정보 처리에 문제가 생겨서 기억이 적절히 처리되지 않고 통합되지 않은 채로 저장된다. 이후에는 현재 상황에서 주어지는 자극이 과거 부정적인 경험과 연결되면서 그 둘 사이의 유사점으로 인해 마치 과거와 똑같은 상황인 것처럼 현재에 대해 반응할 수 있는 것이다.


민혁 씨는 현재 자신이 맘 속으로 카운팅을 하거나 집착적으로 책상을 정리하는 강박행동을 하지 않게 되면 과거 자신이 아들을 아프게 했던 상황에서 느꼈던 초조, 긴장, 불안 증세를 현재 상황에서 매번 경험했던 것이다. 적절히 처리되지 않은 과거의 부정적 경험에서 만들어진 부적절한 결론이 현재를 해석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민혁 씨는 EMDR 치료를 통해 당시 기억을 재처리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그는 이에 동의했다.




이후 수 차례 EMDR 치료를 시행하였고 민혁 씨는 당시 부정적인 경험을 떠올렸을 때 이전처럼 과거 상황을 연상하는 것만으로도 불안, 초조, 긴장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는 민혁 씨의 기억에서 과거 경험을 사라지게 만든 것은 아니다. 단지 과거 경험이 현재가 아니라 과거로써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민혁 씨는 다시 치료실에서 적절한 정보처리 과정을 거친 후 과거 경험을 자신의 기억 체계에 통합시킨 것이다.


또한 민혁 씨는 EMDR 치료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지를 탐구하고, 왜곡된 인지 방식을 개선시켜 긍정적 인지가 가능하게 되었다. 처음 그는 당시 과거 경험을 연상하며 자신에 대해 “나는 무능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키울  없는 사람이다.”로 인지했다. 당시 과거 경험이 민혁 씨를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자신이 아이를 아프게 할 것이라는 부정적 인지를 갖도록 한 것이었다. 하지만 민혁 씨는 EMDR 치료를 통해 과거 부정적인 경험을 재처리한 결과 과거에는 자신이 아이를 잘 돌보지 못했지만 현재에는 "지금 나는 아이를  키울  있는 사람이다."라고 인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 나아가 "현재 나는 아빠로서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긍정적 인지가 가능하게 되었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인지는 민혁 씨가 갖고 있던 내면의 부정적 사고, 즉 자신으로 인해 아이가 아플 것이라는 생각을 개선시켰고 그로 인한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서 반복했던 강박행동도 더는 그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렇게 약물치료 및 EMDR 치료를 통해 민혁 씨는 고통 속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다.


어느덧 민혁 씨의 아내가 다녀간 후 3개월 정도 시간이 흘렀다. 나는 치료 결과를 설명하고 치료실 밖에서의 민혁 씨의 모습에 대해 듣고자 나는 다시 민혁 씨에게 아내와 동반하여 내원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는 오늘 아내와 함께 진료실을 찾았다.


Dr: “오늘은 사실 민혁 씨의 치료 경과에 대해 제가 아내분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치료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뵙자고 했습니다. (이미 민혁 씨에게는 치료 경과를 가족에게 설명해도 된다는 동의를 얻은 상태였다.) 민혁 씨는 저와 여러 차례 치료 시간을 가지면서 본인의 주관적인 불안 정도는 상당 부분 호전되었고요. 삶에 대한 만족도도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말씀하세요. 집에서 아내분이 보시기에는 어떠세요?”


지수: “정말 다행이네요. 집에서도 남편은 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여요. 이전에는 항상 긴장하고 초조해 보였고 아이가 조금만 다쳐도 되게 어쩔 줄 몰라하고 그랬거든요. 별 것도 아닌데 자꾸 아이한테 조심하라고 하고 그랬어요. 이유를 잘 몰랐는데 결국 아이가 다치면 자기 때문인 것처럼 느껴져서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드니까 남편이 이해도 되면서 안쓰럽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남편이 먼저 한 번씩 예전에 아이가 중환자실 있을 때 자기감정이 어땠는지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래요. 치료 전에는 제가 아이가 입원했을 때 이야기를 하면 듣기 싫어하고 그랬어요. 그리고 아이가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한테 맞고 온 이야기를 해도 막 듣기 싫어하고 짜증도 내고 그래서 아이 관련해서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본인이 아이한테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 걱정은 없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한테 편하게 다가가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한 번씩 남편에게 이제는 행동이나 이야기를 하기 전에 하나, 둘, 셋 세지 않아도 괜찮냐고 하면 남편은 불안하지 않다고 하고 그래요. 남편은 지금도 책상이나 탁자 같은 곳에 깔끔하게 정리하는 걸 좋아하긴 해요. 그런데 이전과 다른 것은 좀 흐트러져 있어도 예전처럼 강박적으로 다시 정리하고 그러진 않아요. 정말 편해진 것 같아요. 아이도 아빠가 잘 웃어주니까 좋다고 해요.


민혁 씨를 바라보며 웃는 지수 씨. 그리고 민혁 씨는 이야기를 꺼냈다. 마치 부모에게 학교에서 받은 상장을 내미는 아이같이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며 현재의 자신에 대해서 설명했다.   


"지금은 과거 경험이 현재와 분리된 느낌이 들어요."


민혁: “과거 경험을 재처리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제가 과거에 저 때문에 아이가 아팠다고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거 경험을 현재까지 끌고 와서 내가 현재에도 아이를 아프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살았던 걸 알았어요. 그런데 그때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과거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그걸 믿기가 힘들었어요. 그런데 과거 경험을 다시 처리하고 난 후에는 당시를 떠올려도 이전처럼 긴장되거나 불안하지 않고요. 과거와 현재가 어느 정도는 분리된 느낌이 들어요. 현재 제가 아이를 아프게 할 일은 없으니까요. 과거 기억에서 생겨나는 불안이나 초조함이 사라지니까 다시 현재를 살아가는 느낌이 들어요. 선생님. 아이가 다칠 수도 있죠. 그런데 저 때문에 다칠 리는 없어요. 그렇게 생각이 되는 것이 치료받기 전과 후의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요.”


Dr: “그래요. 좋습니다. 두 분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민혁 씨가 그간 고생을 많이 했어요. 민혁 씨는 EMDR 치료를 하면서 과거 경험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당시를 생생하게 떠올리면서 불안, 초조, 긴장 증세가 치료 초기에는 더 올라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굳건하게 치료를 마치고 이렇게 좋아질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민혁: “두 말할 것 없이 아내의 지지였습니다. 병원에서 선생님과 함께 하는 시간도 분명 제게 너무 큰 도움이었지만 집에 있는 동안에는 아내가 제 치료자였습니다. 항상 제게 용기를 주고 힘들어하는 저를 아들에게 이야기할 때에도 항상 아빠가 너를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해줬어요. 그럼 아들도 제게 와서 힘내라고 안아주고요. 아내는 제게 매일같이 자랑스럽다고 말을 해줬거든요. 물론 저 힘내라고 그런 건 알면서도 그런 아내의 말들이 강박이라는 것에 도전하는 저를 일으켜주는 말이었어요. 선생님에게도 감사하고 아내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부부 애착은 그 자체로 치유효과가 있다


민혁 씨가 말하는 동안 부부는 손을 꼭 잡은 채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한 부부의 애착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과거와는 달리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에 부부 사이에는 어느 관계보다도 서로에게 강한 애착을 형성되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전에는 조부모, 부모, 형제, 자녀, 그리고 부부간의 네트워크가 다양하게 형성되었다면 최근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때보다 부부의 강한 애착은 현재에서는 중요한 시대적인 요구인 것이다. 그리고 민혁 씨 부부는 강한 애착이 정신과적 치료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치료효과가 있었음을 직접 보여주고 있었다.  


Dr: “네. 민혁 씨 말씀대로 든든한 아내의 정서적인 지지 그리고 부부의 강한 애착이 민혁 씨가 불안을 극복하고 강박을 떨쳐내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EMDR 치료를 1시간 정도 보통 한 세션을 하고 나면 민혁 씨는 전과 다른 피로를 느꼈을 것입니다. 기억을 처리하고 통합하는 과정에서 민혁 씨가 직접 참여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민혁 씨는 괜찮았을 겁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 가서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을 테니까요. 아내와 아들의 지지적이고 공감적인 모습은 민혁 씨를 다시 충전해서 일으켜 세웠을 것이고 민혁 씨는 다시 힘을 냈을 겁니다. 앞으로도 민혁 씨에 대해 주기적인 외래치료를 할 것입니다. 정기적으로 증세가 호전된 상태로 유지되는 지를 봐야 하거든요. 소량의 약물치료도 유지할 것입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민혁 씨는 더 마음속 불안에서 자유로워 지고요. 부부는 더 편안한 가정을 꾸려나가시게 될 것입니다. 그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


민혁 씨는 지금도 한 달에 한번 정도 진료실을 찾는다. 올 때마다 나는 한 번씩 그의 앞에 펜을 헝클어 놓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럼 민혁 씨는 하나도 안 불안하니까 그만 하라고 할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 그래도 나는 계속 장난을 치고 싶다.  앞에 펜을 펼치는 장난에도 편안하게 웃는 그의 미소를 보는 것이 너무 좋았 때문이다. 자신을 오랜 기간 옮아매던 쇠사슬을 끊어내고 편안하게 웃는 민혁 씨의 모습은 내게 주어진 자랑스러운 상장과도 같았.


"이제 자유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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