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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주치의 May 12. 2019

23. 그저 아버지가 보고 싶었습니다.

Epi.06. 어버이날, 아버지, 아들, 그리움, 사별, 슬픔,

Episode. 06


5월의 어느 봄날 오후. 벚꽃은 어느덧 다 저버렸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그래서 그 벚꽃나무가 초라하게 느껴질 줄 알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여전히 그 나무를 바라보는 내 눈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그 날의 풍경이 떠올랐다.


그렇게 화려했던 그 날의 아름다움이 그저 그것이 생명을 다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만은 아니듯이 어떤 사람에 대한 감정 또한 그 사람이 사라진다 해서 사라지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떠나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누군가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40세 남성 진수 씨. 그는 아무런 소견서도 없이 진료실을 찾았다. 생산직 노동자인 그는 근무복을 입고 있었고 검게 그을린 피부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그는... 지쳐 보였다.


진수: “선생님. 그냥  가다가 들어왔어요. 마음이 답답해서요.


Dr: “네. 그래요. 알겠습니다. 편히 쉬세요. 그러고 나서 말씀하셔도 됩니다.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는 말 한마디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슬퍼 보였다. 아무 말도 않는 그에게서 절제된 슬픔이 느껴졌다. 


Dr: "커피 한잔 드릴까요?"


진수: ". 커피도 주세요?"


Dr: "같이 한잔 하시죠."


그는 커피 한잔을 전해 받으며 쑥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그는 한 모금 마신 후에 양손으로 커피잔을 잡고서 온기를 느끼는 듯했다. 그는 마치 추위에 지친 어떤  잠시나마 낡은 건물 안에 들어가 난롯불에 차디  손을 녹이는 듯했다.  한잔에 전해지는 따스함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그는  손으로 천천히 커피를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는 잠시  나지막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진수: “다 괜찮은 줄 알았어요. 시간도 많이 흘렀고 이제는 모두 다 괜찮게만 생각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저도 일을 해야 되고요. 자식들도 있고 저는 무너지면 안 되거든요. 그런데 오늘 일하다가 갑자기 울컥했어요. 일은 해야 되니까 눈은 뜨고 있는데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고요.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저 노래가 들려서 들으면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되어버렸어요. 가슴너무 답답해서 일을 멈추고 밖으로 나왔어요..."


진수 씨는 말을 더는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고개를 떨군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가끔 나는 소리를 내지 않고 우는 분들을 보면 그 모습이 아주 큰 소리를 내며 우는 이들보다도 더 슬퍼 보일 때가 있다. 오늘 진수 씨도 소리 내어 울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슬퍼 보였다. 고개를 숙인  그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진수: “저는 아버지가 안 계세요. 1년 전에 병세가 악화돼서 돌아가셨어요. 매일 같이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어요. 지갑 속에 아버지 사진을 넣어두고 매일 아침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아버지를 보며 인사를 하죠. 저 이제 일 시작한다고요. 아버지도 즐거운 시간 보내시라고요. 그럼 기분이 좋아요. 제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을 아버지가 보시는 것 같아서 더 열심히 살고 싶어 지고요. 부지런한 건 아버지가 제게 주신 가장 큰 유산이니까요. 아버지는 말수가 많은 분은 아니셨지만 항상 바쁘게 일을 하면서 저희 가족을 먹여 살리시느라 힘들었어요. 거의 놀지도 못하고 매일 같이 일하고 또 일하고 또 일하셨죠. 대형트럭에 매일같이 짐을 고서 수 시간 씩 운전하며 다니셨고 저희가 다 자는 새벽에서야 겨우 들어와서 잠을 주무셨어요. 저는 아버지랑 같이 있는 시간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특히 아버지와 함께 가는 목욕탕을 좋아했습니다. 항상 바쁜 아버지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목욕탕이었거든요. 그리고 목욕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는 아버지는 항상 항아리 모양의 바나나우유를 사주셨죠. 그냥 아버지가 정말 좋았어요. 그냥 커다란 곰 같은 아버지가 푹신하고 좋았습니다. 선생님. 저는 아버지가 나이가 드셔도 항상 그곳에 계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도 그냥 열심히 살았어요. 제가 할 일 하면서요. 성공하고 나서 많은 걸 해드려야지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3년 전 아버지는 남들은 잘 걸리지도 않는다는 췌장암에 걸리셨어요. 저는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시는 분이 그런 병에 걸리셨다는 걸 받아들이기도 힘들었고요. 하지만 2년 간의 긴 투병 기간 동안에도 아버지는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정말 힘든 치료과정을 다 받았어요. 정말 너무 힘들었을 텐데 그렇게 한마디 불만 없이 치료를 받으시더라고요. 다른 가족들은 다들 희망적으로 봤지만 저는 친구가 의사여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저한테 허락된 아버지와의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요. 그래서 저는 주중에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했지만 주말에는 항상 아버지를 병간호하며 지냈어요. 그마저도 너무 시간이 짧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해보세요. 1년밖에 살지 못하신다면... 1년은 52주 정도고... 그럼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밤이 저한테는 52일밖에 허락되지 않은 거잖아요. 아버지를 간호하며 아버지 얼굴을 만지고 볼도 비비고 사랑한다고 말도 끊임없이 했어요. 제가 아버지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하는 날이 온다는 것이 두려울수록 더 많이 사랑한다고 했어요. 아버지는 웃으면서 같이 나도 널 사랑한다고 해주셨고요. 그렇게 정말 후회가 없을 수는 없지만 아버지와 제게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좋은 기억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아버지는 결국 병세가 나빠져서 1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역시나 아무리 후회 없이 사랑한다고 말씀드렸지만 후회가 가득해요. 선생님. 아버지한테 해주고 싶은 말도 많고 해주고 싶은 선물도 많은데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요. 선생님. 그냥 혼자 위로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날 보고 있겠지? 나 열심히 사는 거 보고 있겠지? 사랑한다고 혼잣말해도 들으실 수 있겠지? 그냥 매일매일 그렇게 힘을 내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간 날 때마다 아버지한테 지금도 찾아가서 음식도 올리고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지내요. 평소에는 열심히 일도 하고 아내와 자식들과도 시간을 보내고 혼자 남으신 어머니도 제가 잘 살펴드리고요. 그렇게 저는 아버지를 보낸 아픔을 잘 이겨내고 제가 잘 지내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오늘 그게 아니더라고요. 선생님.”


당신의 손을 잡고서 걸었던 그 길이 그립습니다. 아버지.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사람처럼 말을 이어갔다.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몇 초간의 침묵도 없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들어주는 것에 충실하고 싶었다.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싶어서, 내가 주는 위로를 받고 싶어서 온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의 앞에서 울고 싶었고 누군가가 들어주길 원하는 분이었다.


진수: “저희 공장은 일할 때 라디오를 틀어줘요. 시간도 잘 가고 그렇거든요. 그렇게 오늘도 아버지 사진을 보고 일을 시작했는데 10시 정도였는데 어떤 노래가 나왔는데 듣는 내내 아버지 생각이 나서 눈물이 쏟아졌어요. 눈물이 앞을 가려서 도저히 일을 못하겠고 아버지가 떠나신 후에 제가 슬픔을 이겨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요. 제 마음속에 쌓인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원통함이 다 터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어요.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제 차에 들어가서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소리를 질렀던 것 같아요. 미친 듯이 말이죠. 왜 벌써 데려갔냐고. 왜 내가 성공해서 여행도 같이 가고 맛있는 것도 다 사드릴 텐데 왜 1년도 못 기다리냐고. 왜 내 아빠를... 그렇게 평생 일만 하고 놀지도 못한 사람을 데리고 가냐고... 대체 신이 정말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정말 흉악범죄자 놈들은 감방에서 죽지도 않고 잘 사는데... 신이 있다면 대체 하는 일이 뭐냐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만큼 제가 진정이 안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또 한편으로 그 분노를, 원통함을 느끼고 싶었어요. 너무 고통스러운데 고통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있더라고요. 마치 상처 난 곳에 자꾸 손톱으로 긁으면서 피를 내는 것처럼 더 아프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까 그 노래를 가사로 찾았는데 양화대교라는 노래였어요. 차 안에 혼자 앉아서 계속 노래를 들으면서 제 마음속 상처를 계속 긁었어요. 더 긁어보고 싶었어요. 거기서 실컷 눈물도 흘리고 화도 내고 주먹으로 핸들도 치고... 저도 알아요.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서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려면 힘들면 힘들다고 화나면 화를 내야 된다는 거는 저도 알아요. 그런데 하늘에서도 아버지가 저를 보고 계신다고 믿고 싶었고 그래서 잘 지내고 싶었던 것 같고요. 그냥... 그래도 어쨌든 저는 성인이잖아요.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빠고 아들이잖아요. 제가 해야 하는 일이 있고 그것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있어야죠. 제가 정말 와르르하고 무너지면 안 되잖아요."


그는 입이 마르는지 어느새 그의 잔은 비어있었다. 나는 그저 다시 그의 잔에 커피를 채워줬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내게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그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커피를 다시  마셨다. 깨끗이 비워진 그의 커피잔은 그가 내게 보이고픈 감사의 표시 같았다.


Dr: "커피 잘 마셨습니다. 선생님. 일하러 다시 들어가 봐야   같네요. 어쩌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회사에는 잠시 바람 쐬고 오겠다고 했는데 큰일 났네요. 그래도 속이 좀 후련하네요. 내일부터 다시 저는 평소처럼 잘할 것 같은데 한 번씩 커피 얻어먹고 싶을 때 또 올게요. 선생님.(씨익) 그냥 이야기하고 싶어서 왔어요. 약이나 그런 건 필요 없어요. 잘 지내고 있거든요. 진짜. 그저 오늘 하루 망가졌을 뿐이에요. 선생님.”


그저 망가졌을 뿐이다... 그래. 그는 그저 오늘 하루 망가졌을 뿐이다.


그는 손으로 가슴을 털면서 그저 하루 자신이 망가졌다고 이야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이 잠시는 망가져도 된다고 생각하  같았.


진수 씨는 아버지에 대한 원통함을 억압하며 지냈지만 오늘 잠시나마 자신 또한 아버지가 아닌 누군가의 어린 아들이었던 그때로 돌아가 아버지를 추억했고 아버지를 느꼈던 시간이었다.


진수: “선생님.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너무 제 이야기만 했네요. 가기 전에 혹시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나는 사실 진수 씨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닌 그가 듣고 싶은 말을 건네주고 었다.


Dr: “힘들 때엔 언제든지 오세요. 저는 항상 이 곳에서 진수 씨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것만 기억해주시면 됩니다.”


진수 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진료실을 나갔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그의 표정에서 나는 그가 만족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수 씨는 별도의 예약을 잡고 가진 않았다. 나 역시 별도의 예약을 잡아드리진 않았다. 그저 말하고 싶을 때 다시 올 것을 우리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저 우리는 그렇게 다음을 기약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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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많이 보고싶습니다. 어디서든 행복하세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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