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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주치의 May 24. 2019

25. 저는 제 딸들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Epi.07. 자녀, 양육, 후회, 자괴감, 조증, 우울증

그녀에게는 어떤  있었던 것일까?


4년 전,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짜증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이웃들과 사소한 일에도 자주 시비를 붙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은 이 나라의 교육부 장관이라고 이야기하고 자신이 하버드 대학 경영학과를 나왔다는 과대망상을 보였다. 그녀는 하루 내내 마치 모터 달린 것처럼 활동하며 수많은 나라 정책을 계획하고 이를 알려야 한다며 대통령에게 연락하는 방법을 찾아보느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하루 씨는 자신을 만류하는 가족들에게 흥분하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자신을 무시하는 가족들을 떠나 하루 씨는 집을 나갔고 실종 신고 후에 겨우 그녀를 찾아낸 곳은 경찰서였다. 그녀는 식당에서 주인과 시비가 붙어서 다툼을 벌였고 주인에 의해 경찰에 신고된 것이다. 가족들은 그녀를 더는 위험하게 둘 수 없다는 생각으로 대학병원 정신과 진료를 받도록 했다. 그리고 그녀는 양극성 장애 조증 에피소드를 진단받고  번째 입원 치료를 시작했. 조증 상태에서 그녀는 마치 배너 박사가 헐크를 전혀 통제할  없듯이 그녀 또한 조증 상태인 그녀를 스스로 통제할 방법은 . 조증 상태에서 그녀의 동은 녀의 의지가 아니다.


2개월 여 간의 입원기간 동안 꾸준한 약물  면담치료 후 그녀는 호전되어 외래치료로 전환하였다. 주치의는 투약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차례 강조했지만 바쁜 육아는 하루 를 다시 지치게 만들었고 어느샌가 투약을 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1년 후 다시 이전과 같은 조증 증세를 보였고 자신을 집에 두려는 가족들 몰래 집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시작된 두 번째 입원 치료. 그녀는 그렇게 대학병원 폐쇄병동에서 2개월 간의 입원 치료를 받았다. 조증 증세가 호전되자 이번에는 그녀에게 우울 증세가 찾아왔다. 그녀는 자신이 조증 시기에 했던 말과 행동들이 다 생각이 났다. 하루 씨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교육부 장관인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며 화를 내고, 자신이 대학 입시 제도를 수정하는 안을 작업하는 동안 집에서 떠드는 두 딸에게 물건을 던지고 욕설을 내뱉었던 모습. 자신을 교육부 장관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그깟 회사원 주제에 뭘 알겠냐고 비아냥거리고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큰소리친다며 무시했던 자신의 언행들이 모두 생각났다. 하루 씨는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이 떠오르면 한없이 우울하고 괴로웠다.


그녀는 우울증세로 인해 점점 의욕이 저하되어 갔고 그나마 남은 힘으로 정신없이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다시 병원에 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1년 후 다시 그녀는 조증 증세가 재발하였다. 잦은 투약 중단과 재발의 반복은 점차적인 약물의 증량으로 이어졌고 3번째 입원 치료는 이전과 달리 3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충분 기간 입원 치료를 받은 그녀는 다시 안정을 되찾고 퇴원했다. 다행히 조증이 호전되어 퇴원한 후에 우울증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양극성 장애는 결국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하며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조증에서 우울증으로 진행할 때에 단순 우울증보다 자살 위험은 더 높다. 그렇기 때문에 조증에서 호전되는 시기에도 방심은 금물이다. 당시 하루 씨도 조증에서 내려온 후 우울증으로 진행하는지 경과를 관찰하기 위해 2주 정도 입원 치료를 더 했었다고 한다.


하루 씨는 퇴원 후 두 딸을 돌보며 잘 지내는 듯했다. 하지만 남편은 잦은 야근으로 인해 하루 씨를 돕기가 힘들었고 첫째와는 달리 둘째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따돌림당하는 일로 하루 씨는 다시 심적인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잦은 발병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줘서 둘째 딸이 심리적인 불안정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누구보다 괴로웠다. 어느 순간부터 하루 씨는 딸들 앞에서 정신과 약을 먹는 모습까지도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하루 씨는 자신이 약을 복용하지 않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둘째 딸도 자신처럼 더 힘을 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결국 그녀는 미신과도 같은 기대를 하며 치료진과 상의하지 않은  투약 중단을 결정하고 2개월이 지났다. 남편은 워낙 회사일로 인해 바빴던 이유로 아내가 투약을 중단한 지 알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결정은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내 진료실을 찾기 1개월 전 그녀는 다시 교육부 장관으로서 업무를 보기 위해 집을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Dr: "하루 씨. 오늘은 기분이 어떠세요? “     


하루: “네. 전보다는 괜찮은 것 같아요. 뭔가 꿈을 꾼 것처럼 제가 했던 일들이 떠오르네요. 선생님.”     


Dr: "그래요. 하루 씨가 제 진료실을 찾은 지도 1개월이 되었네요. 그때는 조증 증세가 심한 상태로 찾아주셔서 하루 씨의 안전한 치료를 위해 입원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   

  

하루: “네. 선생님. 너무 잘 이해해요. 입원 당시에 선생님께 어디 대학 출신이냐고 묻고 서울대 의대가 아니면 내 치료를 맡을 자격이 없다고 했던 제 모습이 지금도 생각나서 부끄럽네요. 선생님이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죄송합니다.”     


Dr: "하루 씨.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하루 씨에게서 조증 시기에 본인 의도로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정신과적 증상이고 정신과적 질환입니다. 병이기 때문에 약물치료를 하면 나아지는 겁니다. 어느 하나도 본인의 의도나 의지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증 시기에 했던 자신의 모습이나 증상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마세요. 그럼 오히려 더 우울증으로 진행할 수 있어요."


하루: “선생님. 저는 왜 자꾸 발병하는 거죠? 다 나은 것 같은데 왜 재발하죠?”     


Dr: "양극성 장애는 오랜 기간 지속적인 관리를 받아야 하는 질환입니다. 약물 치료를 해서 좋아졌다고 해서 양극성 장애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당뇨나 고혈압처럼 증세가 안정적이어도 지속적인 약물치료가 필요하고 주기적인 정신과 외래치료가 필요합니다. 항상 약물치료를 치료진과 상의하지 않은 채로 본인 자의로 중단하고 조증 증세가 재발하는 것이 반복되었잖아요. 약물치료만 유지되었어도 이렇게 재발하지 않을 겁니다. 그걸 항상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루 씨. 그럼 괜찮아요. 꾸준히 내원해서 진료도 받으시고요. “     


하루: “네. 선생님.”     


하루 씨는 1개월 전 심한 조증 상태로 내원하여 자신 또는 타인에게 위협이 되는 행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어 폐쇄병동에 입원되었다. 그리고 정신과적 약물치료를 다시 시작하고 3주 정도 지난 후 상당 부분 조증 증세는 호전되었고 1주일 간 약물 유지한 결과 현재는 병전 상태와 거의 동일한 기분 및 정동 상태를 보였다. 하지만 하루 씨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 “선생님. 저는 딸들 옆에 있고 싶어요. 그런데 딸들에게 제가 필요한 시기에 저는 아이들에게서 떠나 있었어요.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요. 저는 정말 딸들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 다시는 떠나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     


저는 더는 아이들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


하루 씨는 그간 참았던 눈물을 더는 참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마치 전쟁 속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처럼 그녀는 세상 가장 억울하고 슬픈 얼굴로 울고 있었다. 양극성 장애를 겪는 여성의 울부짖음. 딸들의 곁을 자꾸 떠나게 만드는 병을 앓고 있는 하루 씨. 그녀가 의도한 것은 없다. 단지 병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하루: “선생님. 왜 저는 자꾸 집을 나가죠? 꼭 둘째 아이 생일 때마다 저는 집에 없었어요. 둘째 아이가 5살 때부터 저는 한 번도 둘째 딸의 생일상을 차려주지 못했어요. 너무 억울해요. 저는 정말 아이한테 잘하고 싶었어요. 왜 하필 안 그래도 힘든 아이한테 저는 항상 더 깊은 슬픔을 줬을까요. 생각해보세요. 생일 때마다 엄마가 없었던 거예요. 자기가 기억나순간부터는 한 번도 엄마가 생일을 축하해 준 적이 없었던 거라고요. 그런 딸이 학교에서 적응도 잘 못하고 위축되어서는 다른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하고 있어요. 제가 항상 그 아이 옆을 지켜줄 수 있었다면 그 아이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요. 선생님.”

     

Dr: "그래요. 작은 딸의 생일뿐만 아니라 작은 딸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매 순간마다 그 자리를 지키고 싶은 하루 씨의 마음이 저도 공감이 되네요. “     


하루: “제가 이제라도 아이들의 옆을 지키면서 잘 생활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 저는 진짜 확신이 필요해요. 아이들 옆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불안하고 두려울 것 같아요. 또 다시 제가 딸들 옆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두려워요.”     


하루 씨는 확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신이 재발하지 않고 두 딸의 든든한 엄마로서의 위치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것이 간절해 보였다. 그런데 나도 확신이 필요했다. 하루 씨와 나는 서로에게 확신을 갖고 싶어 했다.

     

Dr: "하루 씨는 이제부터 딸들 곁을 떠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습니다. 단, 지속적으로 외래치료를 받아야 하고요. 치료진과 상의되지 않은 투약 중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두 가지를 약속할 수 있다면 저도 하루 씨에게 약속할 수 있습니다. 약속하시나요? “     


하루: “네. 약속할 수 있어요. 선생님. 그렇게 꾸준히 외래치료받고 약물을 복용하면 두 딸 그리고 남편과 함께 제 자리를 지키면서 지낼 수 있다면 꼭 약속은 지킬게요.”     


그녀는 지난 4년 간 둘째 딸의 생일을 챙겨준 적이 없다. 딸들에게 중요한 시기에 엄마라는 사람은 항상 명예욕에 불타서 육아는 뒷전이었다. 힘들게 일하고 온 남편은 항상 두 딸들을 챙기기 바빴다. 그리고 남편에게 쥐꼬리만 한 월급을 벌어온다며 비아냥거렸고 정작 자신은 남편의 수입에 맞지 않는 과소비를 하기도 했다. 하루 씨를 보는 사람들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녀를 아내 그리고 엄마로서의 의무나 책임 따위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를 가정에 대한 책임이나 소중함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나 그렇듯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투약이 중단되 시기는 항상 육아와 집안일에 몸과 마음이 지친 시기였다. 평소 그녀는 두 딸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기를 누구보다 원하고, 남편이 힘든 가운데서도 열심히 가정을 위해 헌신함고마워하며 살아왔다. 자신의 부적절했던 행동에 한없이 위축되고 부끄러워하는 그녀였지만 두 딸과 함께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제공하자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그녀였다. 그저 그녀는 양극성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일 뿐이었다.


보이는 것만이 사실은 아니다. 그녀 역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단지 두 딸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말에 해맑게 웃는 하루 가 오히려 더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대부분의 부모에게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하루: "그런데 선생님. 혹시 남편이랑 최근에 면담하신 적이 있나요?"


Dr: "최근에요? 최근에는 면담한  없어요. 무슨  있으신가요?"


하루: "... 남편이  전화를  받아요. 선생님."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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