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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세일즈 = 원더우먼 or 슈퍼맨

22년 차 프리세일즈의 단상

by 아르페지오
출처: The Many Skills of Presales By Romain Vivier

나는 외국계 IT 회사에서 이십 년 넘게 프리세일즈 엔지니어로 일했다. 오랫동안 프리세일즈를 했지만 다른 이들에게 나의 직업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항상 어려웠다.


친구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볼 때, 부모님이 자식의 직업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실 때, 그리고 주변에서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때면 나의 직업에 대해 얼버무리곤 했다. 대체 뭐라고 해야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봤지만 프리세일즈라는 직업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프리세일즈라는 직군이 외국 회사에만 존재하는 직군이기도 하고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진 직업은 아니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프리세일즈에 대한 글을 하나 읽고 나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를 일깨워 준 글은 '프리세일즈에게 필요한 기술(The Many Skills of Presales)'이라는 글이었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나의 직업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왜 그리 어려웠는지 알게 되었다.


[원문] The Many Skills of Presales

https://digitalthought.me/articles/presales/presales-skills.html


프리세일즈라는 직업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매우 복합적이고 복잡한 직업이다. 프리세일즈 엔지니어는 발표자(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사람)이며 때로는 어드바이저가 되어야 하고 고객의 의견을 잘 경청하는 리스너여야 한다. 동시에 다양한 방면에 대해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전략가여야 다. 상황에 따라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이십 년 차 프리세일즈인 나조차도 나의 직업에 대해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글을 읽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뭘 하는 직업인지도 모르고 우연히 하게 된 프리세일즈 분야에서 그동안 내가 했던 일들이 이런 일이었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다. 이십여 년이 넘게 프리세일즈를 해왔지만 이 일이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던 이유 또한 알게 되었다.


프리세일즈는 강연(프레젠테이션)을 많이 한다. 업무에서 강연 비중이 꽤 높아서 청중 앞에 서는 것이 두렵다면 프리세일즈는 적성에 맞지 않을 것 같다. 이십여 년의 프리 세일즈 근무 기간 동안 했던 강연들만 세어봐도 수백 번은 넘을 것이다. 청중의 수는 그때그때 달라서 때로는 2~3명, 많게는 몇 천명 앞에서 강연을 하기도 하는데 강연은 언제나 어렵다. 강연에는 많은 변수가 있고 그 변수의 많은 부분이 청중과 환경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 때문인지 때로는 철저하게 준비한 강연이 최악의 강연이 되기도 하고 준비를 제대로 못했다고 생각한 강연이 좋은 강연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종종 업계에서 강연을 겨우 몇 번 해봤다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그러나 강연은 오로지 청중을 위한 것이고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100명 앞에서 실수를 하면 100명의 청중이 강연자의 실수를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비슷한 내용을 발표해야 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반복해서 연습하고 준비한다. 남들은 프리세일즈를 이십 년 넘게 했으니 발표 따위는 눈 감고도 하겠다고 하지만 청중 앞에서의 강연은 절대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다. 22년 차가 넘은 프리세일즈이지만 강연 준비를 할 때는 매번 스트레스를 받고 쫓기는 기분까지 든다. 그러나 청중과자신에게 모두 흡족한 강연을 마치고 나서 느끼는 기쁨은 그 어떤 것보다도 크다.


프리세일즈는 경청(리스닝)을 잘해야 한다. 경청은 좋은 발표자가 되기 위한 요건이기도 한데 경청을 잘 못하는 강연자들은 상호작용을 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청중이 내 강연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내가 말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지 등의 반응을 잘 살피면서 유연하게 강연을 이끌어 나가지 못한다. 결국 강연자 혼자서 떠들고 청중들은 기억조차 못 하는 최악의 강연을 하게 된다.


이렇게 많은 기술과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인지 발표를 잘하는 프리세일즈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십 년이 넘게 IT 업계에서 일하면서 발표 잘하는 동료들을 그다지 많이 보지 못했다. 채용을 할 때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던 것도 같은 이유이다. 내가 읽었던 글도 프리세일즈 매니저가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어려움들을 정리한 것이 아닐까 싶다.


프리세일즈는 고객으로부터 혹은 회사 내의 다른 조직으로부터 다양한 지원 요청을 받는다. 이러한 지원 요청은 단순한 질문인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리가 이러이러한 프로젝트를 하려고 하는데 아키텍처에 대해 조언해 달라 등의 매우 구체적이고 복합적인 요청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질문에 대해 답을 제공하려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공부해야 하고 회사 내의 다른 팀과 협업을 잘해야 한다. 다른 팀과 관계가 좋으면 대화만으로도 쉽게 풀리는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에 나는 평소에 항상 공부를 하려고 노력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다른 회사의 콘퍼런스에 참석해서 타 업계, 혹은 경쟁사의 동향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려 한다.


이렇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직업이라 그런지 프리세일즈라는 직업에 대해 다양하게 해석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리고 사실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게 프리세일즈 업무를 정의하기도 한다. 때문에 프리세일즈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하고 개발자로 일하다가 우연히 프리세일즈라는 직군에 들어왔고 이십 년 넘게 프리세일즈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프리세일즈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나는 프리세일즈라는 나의 직업을 사랑한다.

때로는 어드바이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전략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발표자가 되기도 하며 다양한 분야의 고객들을 만나서 수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프리세일즈라는 직업은 참 매력적인 직업이다.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프리세일즈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되고 도전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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