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1
나는 결혼하면서 잠깐 엄마로부터 독립했지만 엄마가 아이를 키워주시게 되면서 28년 동안 엄마를 모시고 살았다. 아이가 다 큰 이후에는 엄마가 할 일은 없어졌지만 경제 능력이 없는 엄마를 큰딸인 내가 부양해야 해서 계속 모시고 살았다.
엄마와 같이 사는 것은 때론 좋고 때론 힘들었다. 나도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도 나를 사랑하지만 우리 둘은 취향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엄마는 음식을 할 때 집에서 가장 큰 솥이나 냄비부터 꺼내신다. 김치찌개도 한 솥을 끓여서 냉장고에 묵혀 두신다. 십 인분이 넘는 김치찌개는 냉장고에 고이 들어 있다가 동생네 가족이 오거나 갑자기 손님이 올 때 꺼내진다. 언제 누가 들이닥쳐도 엄마는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김치찌개와 각종 음식으로 휘리릭 한 상을 차려 내신다. 그러나 몇 달 동안 냉장고에 있었던 것을 알고 있는 나는 엄마의 음식을 잘 넘기지 못한다.
손주가 군대에 간 이후 엄마, 나, 그리고 우리 남편 이렇게 세 식구가 같이 살고 있지만 요즘도 엄마는 김치찌개를 하면 10인분 정도는 해서 냉장고에 쟁여 놓는다. 남편은 고혈압 때문에 찌개를 먹지 않고 나는 원래 국물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저 김치찌개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아마도 손주가 갑자기 휴가를 나왔을 때 주려고 미리 해 놓으시는 듯하다. 그러나 군대에 간 손주는 몇 달에 한번 올까 말까 하고 할머니의 김치찌개는 냉장고 안에서 상해 간다. 냉장고 안의 김치찌개가 상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면 남편은 찌개를 버려도 되는지 내게 묻는다. 나는 깔끔한 남편과 손이 큰 엄마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음식을 하신 엄마의 정성을 생각하면 차마 버릴 수가 없고 상해 가는 음식을 냉장고에 그냥 두려니 남편 눈치가 보여 쩔쩔매다가 결국 찌개에 곰팡이가 핀 후에야 겨우 정리한다.
엄마는 일회용 플라스틱 통을 모아 놓으신다. 배달 음식에 딸려 온 일회용 플라스틱 통, 반찬가게에서 준 찬합, 심지어 음료수 병까지... 온갖 일회용품으로 꽉 찬 다용도실을 보면서 대체 엄마가 그 통을 어디에 쓰는 건지 고민에 빠진다. 언젠가 필요하다며 쌓아 놓은 일회용품 때문에 안 그래도 좁은 다용도실은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매일 세탁을 하러 다용도실에 갈 때마다 짜증이 나서 싹 정리해서 수납장에 넣어 두었더니 다음 날 플라스틱 통이 다시 잔뜩 쌓아져 있었다. 소중한 플라스틱 통들이 없어져서 친구분에게 받아왔다고 한다. 치워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매일 짜증을 누르며 기도한다. 로또에 당첨되어서 아주 넓은 집을 사서 엄마와 나의 공간이 분리되었으면 좋겠다고.
엄마는 옷과 신발을 버리지 못한다. 아니 모든 물건을 다 버리지 못한다. 십 년 넘게 살던 집을 수리하면서 서재 방의 한 면을 모두 붙박이 장으로 만들어서 엄마에게 내어 드렸다. 엄마 옷과 신발은 엄마 방의 붙박이 장을 다 채웠기 때문이다. 엄마의 옷과 신발은 서재 방의 여섯 칸의 붙박이 장을 다 채우고도 넘쳐서 베란다 수납장까지 쌓여있다. 어느 날 우리 부부가 외출한 사이에 엄마 혼자서 베란다 수납장에서 물건을 꺼내려고 하시다가 넘어지셨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베란다에 넘어져 있는 엄마를 보고 기겁을 했다. 손자가 고3 때도 높은 서랍에 있는 짐을 꺼내시려다가 고관절이 부러진 적이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으셨지만 쌓아놓은 물건을 꺼내다가 넘어지는 일이 반복되니 걱정이 된다.
은퇴를 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성격과 취향이 다른 엄마와 내가 자꾸만 부딪친다. 부엌살림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던 내가 부엌에 있는 것들을 치우고 버리면 엄마는 짜증을 낸다. 그러나 나는 코팅이 전부 벗겨진 프라이팬에서 만든 음식을 먹고 싶지 않다. 오랜 세월에 음식이 눌어붙어서 깨끗이 닦이지 않는 냄비도 싫다. 성인이 된 우리 아들이 예전에 사용하던 유아용 수저도 필요 없다. 그리고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엄마 때문에 부엌 수납장이 무너져 내릴까 봐 두렵다.
며칠 전에는 김장용 대야를 버렸더니 김치를 하려고 했는데 왜 버렸냐고 버럭 하셨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김치를 하셨던 것이 오 년도 더 지났는데 대야를 버리자마자 김치를 하시겠다니. 김장용 대야 때문에 덩치가 큰 남편은 다용도실에 들어가지 못해 빨래를 바닥에 놓아야 했다. 몇 년을 참다가 버렸는데 갑자기 하지도 않던 김장을 하시겠다니 가슴이 턱 막힌다.
오늘도 어떤 것은 내가 참고 어떤 것은 엄마가 참으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서로 다른 세대가 한 집에 모여 사는 것은 어렵다. 나는 우리 엄마가 좋은데 엄마의 취향은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와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취향을 존중하며 한 집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그것이 요즘 나의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