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살 독립일지 2

엄마의 딸 2

by 아르페지오

어제저녁에 엄마랑 말다툼을 하고 갈 곳이 없어서 집 앞 소공원을 뱅뱅 돌다가 집에 들어왔다.


말다툼의 시작은 나의 퇴사 계획이었다. 25년 동안 쉼 없이 일한 나는 퇴사를 계획하고 있다. 저녁을 먹다가 퇴사 이야기가 나왔고 나를 응원하고 있는 남편은 가만히 있었는데 엄마가 그 나이에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것은 축복이라며 감사한 줄 알고 다니라고 하셨다. 거기까지만 하셨더라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일자리가 없어진 네 동생을 생각하고 참고 다니라고 한 마디를 더 보태셨다.


25년 동안 가족을 부양했는데, 뼈 빠지게 일하면서도 정작 월급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아버지 병원비를 대고 친정 생활비를 댔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런 희생을 강요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딸이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하면 얼마나 힘들길래 그러는지 먼저 물어보는 게 순서가 아닐까.


나는 너무 지쳤다. 장염에 걸려 연거푸 토하면서도 휴가를 낼 수 없어 출근을 해야 했고 아픈 몸을 이끌고 겨우 집에 돌아와서 쓰러진 날들이 숱하게 많았다. 108배를 하고도 분노를 삭일 수 없어서 가슴을 치면서 출근했던 날도 수없이 많았다. 그렇게 힘겹게 기억되는 25년인데 이런 나의 노고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참고 다니라고 하는데 너무 화가 나서 몇 마디를 쏘아대고는 집을 나섰다.


본인은 한 번도 일을 해보신 적 없고 돈을 벌어보신 적이 없어서 직장 생활의 고달픔에 공감하시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경험하지 못한 세계이지만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엄마는 항상 그랬다. 본인의 말만 옳고 남들은 다 틀렸다는 식으로 말씀하시곤 해서 듣기 싫을 때가 많았다. 항상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엄마를 닮게 될까 봐 무섭다. 어떻게 본인이 겪어보지도 않은 일들을 저렇게 쉽게 독단하실까?


나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고 힘들게 일하다 몸 여기저기 탈이 났는데도 직장은 계속 다녀야 한다니 그동안 내가 짊어졌던 것들에 분노가 치민다.

사진은 25년 내내 수없이 봐야 했던 동트는 새벽녘 사무실 풍경이다. 엄마의 만류도 불구하고 나는 퇴사를 할 것이고 아마도 같이 살고 있는 우리는 더 부딪치게 될 것이다. 엄마가 변할리는 없으니 내가 변해야 이 난관을 해처 나갈 수 있을 텐데 아직은 답이 보이지 않는다.





이전 01화반백살 독립일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