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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Aug 05. 2024

혼밥 그게 뭐라고

나는 내향형 인간이다.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도 못하고 잘 친해지지 못한다. 이런 성격 때문에 회사를 다닐 때 가장 큰 고민은 점심 식사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친한 동료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밥을 먹으러 가는데 나는 그룹이 없었다. 직장 생활 20년 차가 넘은 후에 주변을 돌아보니 내 또래 남자 직원들은 대부분 팀장이었다. 팀장인 그들은 일반 직원인 나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고 나도 그들이 불편했다. 비슷한 또래의 여자 동료들은 하나둘씩 회사를 떠나더니 어느덧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팀장이 아닌 직원들은 대부분 30대라서 나이가 많은 나를 어려워했다.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못하니 대부분 점심을 혼자 먹어야 했다. 사실 점심을 혼자 먹는 것은 별 문제가 없었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점심시간을 여유 있게 쓸 수 있어서 혼밥이 더 좋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회사 근처 식당은 빤하기 때문에 혼자 점심을 먹고 있으면 항상 회사 사람들을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왜 밥을 혼자 먹느냐며 걱정을 한 다발 늘어놓고 갔다. 마치 내가 문제가 있어서 밥을 혼자 먹는 것처럼, 옆에 있던 손님들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걱정을 늘어놓고 지나가는 동료들 때문에 밥을 먹다가 체하기 일쑤였다.


내일부터 나와 점심을 먹을 것도 아니면서 그들은 왜 그렇게 쓸데없는 오지랖을 피우는 걸까? 그리고 왜 굳이 조용히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나를 아는 하고 지나가는 걸까?

고맙지도 그리고 반갑지도 않은 오지랖 때문에 매일 점심시간이 두려워졌다. 어디에 가서 먹으면 회사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을지, 혼밥을 하기 좋은 식당이 어디인지 찾고 또 찾아보았지만 점심시간에 갈 수 있는 식당은 한정되어 있었고 어디를 가도 항상 그들과 마주쳤다.


결국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싫어서 편의점에서 점심을 대충 때우기로 했다. 그러나 방법에는 부작용이 있었다. 오전 내내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라도 제대로 먹어야 기운을 차리고 다시 일을 하는데 편의점에서는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어려웠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구겨 넣고 사무실에 올라갈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2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는데 같이 밥 먹을 사람 하나 없는 내가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날들이 쌓여가니 우울감도 쌓여갔다. 안 그래도 회사 가는 것이 싫은데 점심 때문에 회사를 가기가 더 싫어졌다. 주변 회사에 다니는 지인들과 점심 약속도 잡아보고 친구들과 점심 약속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봐야 한 달에 서너 번 정도였고 대부분 점심시간에는 고독을 씹으며 보내야 다. 그렇게 힘들게 버티다가 결국 퇴사를 했다. 퇴사를 결정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었지만 점심에 대한 스트레스도 영향을 끼쳤다.

점심을 같이 먹을 동료가 없다는 것은 회사에서 소통을 하거나 진솔한 대화를 할 상대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느덧 나는 팀장 진급을 하지 못한 골칫거리 나이 많은 여직원이 되어 있었고 매니저 그룹에도, 직원 그룹에도 낄 수가 없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하루의 1/3이 넘는 시간을 외롭게 보내는 것이 힘겨웠다. 홀로 버텨내는 시간들이 너무 버거웠다. 어쩌면 나는 너무 외로워서 은퇴를 결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혼밥 그게 뭐라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인지 싶다. 코로나라는 질병 때문에 최근에는 혼밥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어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식당에 들어가서 혼자라고 말하면 종업원조차 나를 한번 더 쳐다보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직장인들이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평일 점심시간에 혼밥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혼밥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줄 알았더라면 조금만 더 버텨볼 것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유난히도 남에게 관심이 많고 뒷이야기도 많이 돌았던 회사에서 나에 대한 소문은 무엇이었을까? 맨날 혼자 밥을 먹는 나이 많은 직원? 직장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왕따? 나이는 많은데 진급도 못하고 버티는 뻔뻔이?  


어쩌다가 평일 점심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에 식당가에 왔다가 요즘 젊은 사람들의 혼밥 풍경을 보면서 매일 점심을 혼자 먹었던 나의 짠한 시간이 생각나서 끄적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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