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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Jul 18. 2024

아들 키우는 재미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아들을 키운다는 것은 쓰릴이 넘치는 일상의 연속이다.


아들의 어린 시절에는 무언가가 부서지고 망가지는 일들이 일상이었다. 여자 형제만 있는 집에서 조용한 유년 시절을 보낸 엄마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낯설고 힘들었다. 집안의 무언가가 깨지거나 부서지지 않으면 가끔은 아들의 팔이 혹은 다리가 부러졌으니 차라리 물건이나 가구가 부서지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이내믹한 일상에 적응하려 노력했다. 남자아이들은 몸으로 부딪치면서 크는 거라고 하지만 새가슴인 엄마는 노심초사하며 아들을 키웠다. 다행히 시간이 흘러 흘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질풍노도의 사춘기도 지나니 사건 사고도 잠잠해졌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벌렁벌렁하던 엄마의 심장도 다시 평안을 찾았다.


그러나 평화는 아주 잠깐이었다. 아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엄마를 즐겁 해 주기 시작했다. 생기부 작성을 위해 제출내야 할 서류를 깜박하거나 미술학원 문턱도 안 넘어 본 놈이 입시 1년 전에 덜컥 미대를 지원하겠다고 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로 엄마를 재밌게 해 주었다. 가슴 쓸어내리기를 스무 번쯤 했을까. 롤러코스터 같던 고등학교 3년의 시간이 지난 후 아들은 대학에 진학하였고 엄마의 일상은 다시 평온을 찾았다.


세월이 흘러 조그마하던 아들은 이제 성인이 되었고 취직도 했다. 그리고 아들은 여전히 가끔씩 엄마를 즐겁게 해 준다. 아마도 갱년기를 겪고 있는 엄마가 우울증에 빠질까 봐 쉴 틈 없이 이벤트를 준비하는가 보다.


어제저녁, 아들이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며 공항버스를 예약했으니 정류장에 내려달라고 했다. 오전 9시 버스를 예약했으니 10분 전에 정류장에 내려달라고 하길래 오전 8시 반부터 현관 앞에서 아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들은 도통 출발할 생각을 안 하고 태평하게 집을 싸고 있었다. 짐은 여행 가기 하루 전에 싸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대체 왜 출발해야 할 시간에 짐을 싸고 있는 건지 화가 치밀었지휴가를 떠나는 아들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튀어나오려는 욕을 꾹 참았다. 버스를 놓칠까 봐 안절부절못하면서 영겁 같은 15분이 지났고 8시 45분이 돼서야 겨우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엄마의 소심한 복수가 시작되었다.


집을 나서자마자 꽉 막힌 도로를 보고 아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우리 집에서 공항버스 정류장은 평소에는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러나 오전 9시는 등교 시간이라 차가 많이 막힌다. 길이 막히는 시간이니 8시 30분에 출발하자고 미리 말했는데 아들이 장을 부린 것이다. 꽉 막힌 도로에서 신호를 2번이나 받고도 좌회전을 하지 못하자 아들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사실 버스를 놓쳐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겠다 싶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9시 정각에 정류장에 도착했고 아들은 전력 질주를 해서 가까스로 버스에 탑승했다. 


오늘도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고 재밌는 이벤트를 해주는 아들을 보면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던 아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것이만족해야 하는 것인지, 이제 성인이 되었고 취직도 했으니 더 이상 이런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아들 키우는 재미는 끝이 없는가 보다. 심신의 평온을 되찾기 위해 얼른 독립시켜서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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