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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Nov 07. 2022

영화를 빙자한 못난 체질


오랜만에 방문한 그 영화관은 공사 중이었다. 지하 1층의 상영관으로 엘리베이터로도, 에스컬레이터로도 갈 수 없어 잠시 당황해하고 있었는데, 한 번도 지나가 본 적 없는 로비 끝에 덩그러니 출입문이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여러 번 오갔던 극장이었는데도 처음 보는 곳에 문이 있었다. 길가에서 백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입구라. 환기하기에는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열린 문 앞에 패딩을 입은 직원이 발권된 티켓을 확인했다. 한겨울엔 얼마나 추울까? 직장에서 난로를 챙겨줄까? 의구심을 갖는 사이 환한 말투로 그가 안내한다. 늘 그렇듯 직원의 밝고 기계적인 미소는 기억나지만, 얼굴은 기억나질 않는다. 문득, 당신도 그랬을까? 기억에서 흐릿해져 되찾아야만 어렴풋이 떠올랐던 첫 만남의 잔상 속에서도 우린 영화관이었다.


암전으로 걸어들어가니 아직 한 두 명 밖에 없는, 서늘한 영화관이 빈손으로 맞이한다. 오른 편에 앉아 왼쪽으로 시선을 던지는 것이 익숙한 나는 언제나처럼 중앙 열의 오른편 통로 좌석에 앉는다. 오늘도 빨간 좌석에 앉으면서 좁고 붉은 소파가 얼핏 떠올랐다. 스크린도 켜지지 않은 암전의 공허 속에서 ‘난 또 뭐하고 있는 거지’ 허탈함을 느낀다. 막막한 암흑을 바라보면서 지났을 영화를 그려본다. 다시 그 얼굴을 좇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눈꼴 시리게 개탄스럽다. 목소리만 들어도 눈 감을 거면서 무얼 보겠다고 이 자리에 앉았을까.


영화가 시작돼도 끝내 영화는 진행되지 않는다. 서사가 무너진다. 당신의 눈빛만 쫓아다닌다, 당신의 눈길이 닿은 곳을 슬쩍 곁눈질하다가도 이내 당신의 콧등에 시선이 맺힌다. 귀가, 아프다. 당신의 목소리가 달려든다, 엄청난 소음으로. 넓은 화면이 가득 당신으로 메워진다. 그쯤이면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충동이 인다. 서사가 끝나지 않은 애매한 틈새에서 난 일어나고 싶다.


지난 시간 속에 가장 그리운 순간으로 플래시백 하면 아쉽게도 당신과 함께 장면이 펼쳐지진 않는다. 되려  이전에 아무것도 아니던 우리가,  모호함이 주던 무한한 생명력을 잃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내가  관계를 망쳤다는 자괴감보다 상상 속에 놓일 우리라는  거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무너졌다. 얼마나 못나고 이기적인 마음일까? 지난겨울은  자신이 얼마나 흉한 사람인가에 대한 자책으로 가득했다. 다시 계절이 돌아왔지만,  무엇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모든 것을 건너버린 과거들 덕분에 지금  눈앞에 어떠한 영화도 영화로울 수가 없다.


그 어떤 코미디에도 침전하는 마음을 감내하고, 당신의 이름이 화면에 뜰 때까지 주저앉아 있다. 곳곳에서 삐져나오는 웃음소리에도 난 흔들리는 눈동자만 살피고, 지난 순간과 오버랩되는 모든 과정에 겸허히 항복한다. 영화관을 무겁게 나서면서 다시 체념한다.


 ‘이 짓을 평생 할 것이다.’


당신이라는 영화를 몇 번이고 그리고 마주 보면서, 난 이 짓을 또 할 거다. 기어코 영화를 사랑할 것이고, 난 평생. 지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이었는데 걸어 나온 바깥은 어느새 봄이 도착했다. 살랑이는 벚꽃이 노래를 싣고 온다. 보이지 않던 네 향까지 아른거린다. 멜로가 체질인 나에게 당신이 멀어질 리 없다만, 그렇다고 해서 가까워질 연유도 없어 오늘도 다시 모호한 거리를 되찾는다. 난 다시 시작점에서, 기어코 시작할 수 없는 출발점에서 나아가지 않는다.


세상에 가벼운 고백 없고,
내가 싫다고 해서 상대방 마음에
책임이 없는 건 아니에요.
어쨌든 그 마음이 움직인 이유는
당신이니까.

아직도 힘들까요?

그럼요, 이루지 못한 건 평생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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