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 May 05. 2020

나만의 짧은 힐링

어린이 만화 영화 활용법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도, 지위가 높은 사람도, 외모가 출중한 사람도 아니다. 언제나 잔잔한 호수와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이 젤로 부럽다. 이는 아마도 내가 늘 불안정하고 기분 변화가 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가 오면 비 냄새가 싫고 날이 맑으면 쨍한 햇빛에 불안해진다. 물이 들어있는 컵을 보면 곧 쏟아질 것 같고, 계단을 보면 굴러 떨어질 것 같고. 오토바이나 차를 보면 내가 치이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몸서리쳐진다.  


그래서 나는 불안이 나를 덮쳐 못 견딜 때마다 어린이 만화영화를 본다. 만화 속 세상은 우선 깨끗하고(적어도 세균이나 벌레까지 세세하게 묘사한 만화영화는 없다), 캐릭터들의 성격도 단순 명료하다. 어떠한 갈등도 오래 지속되는 법이 없으며, 잘못된 일은 반드시 바로 잡힌다. 그리고 다음 회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상황은 리셋된다(심지어 나이도 먹지 않는다). 그런 세계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그들의 일부가 되어 싶다는 강한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런 밝고 깨끗한 세계에서 예측 가능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악은 반드시 응징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하루하루 나이도 먹지 않고 살아간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늘 상상한다. 


한때는 은하철도 999 철이처럼 인조인간도 되고 싶었다. 만화에서 왜 철이가 인조인간이 되고 싶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내가 인조인간이 되고 싶은 이유는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 갖고 싶어서이다. 이유 없는 불안과 초조, 괜히 싫은 마음, 지나친 긴장, 강박 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지금보다 훨씬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어린이 만화 영화 속에는 나에게 안정을 주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깨끗함, 명료함, 예측가능성, 안티 에이징(절대 나이 들지 않는 캐릭터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혼자 어린이 만화 영화를 보며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어찌 좀 우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불안을 잠시나마 잠재우는 데에 의외로 효과적이다. 우선 생각보다 스토리가 재미있고, 화면도 예쁘며, 우정, 가족 등 잊고 있었던 중요한 가치들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모두가 잠든 시간, 어린이 만화영화와 함께하는 짧은 시간이 막장 드라마의 충격적인 스토리나 짜증 나는 뉴스 보도에 지친 내 심신을 잠시나마 어루만져주는 좋은 힐링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 거북이처럼 한걸음 한걸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